딸의 방학보충수업, 이렇게 해결했다

딸아이와 함께 분명한 자기표현 방식과 타협하는 법을 배우다

등록 2008.06.24 09:30수정 2008.06.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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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딸과 엄마 딸아이는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몸과 마음이 부쩍 성숙해보인다. 평소 집에서 성적통지표에 집에서 학교로  할말을 적는 란에 "성적은 상관없습니다. 알아서 공부하는 딸아이가 보기 좋습니다"라고 적는 아빠의 마음을 딸아이는 잘 알고 있다

딸과 엄마 딸아이는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몸과 마음이 부쩍 성숙해보인다. 평소 집에서 성적통지표에 집에서 학교로 할말을 적는 란에 "성적은 상관없습니다. 알아서 공부하는 딸아이가 보기 좋습니다"라고 적는 아빠의 마음을 딸아이는 잘 알고 있다 ⓒ 송상호




“아빠, 진짜 짜증나요.”
“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딸아이(중2)가 투덜거렸다. 날씨가 더워서 그러나 싶어 흔한 일이라 생각하고 넘기려니까 딸아이가 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글쎄, 학교에서 이번 여름 방학동안 보충수업 실시하니까 무조건 나오래요.”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빠가 좀 써주세요.”
“뭘?”

딸아이의 요구와 사연은 이랬다. 자신의 학교에서 학교장의 지시로 이번 여름방학엔 학생 모두가 방학 보충수업을 해야 된다는 것이고, 하지 못할 사연이 있으면 미리 학부모로부터 사연을 적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써 주면 되지?”
“그게 아니고요. 이번에는 여행을 간다거나, 시골을 간다거나, 방학에 다른 걸 하면서 시간 보낸다는 명목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진짜로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딸은 단단히 짜증도 나고 화도 난 듯 보였다. 이번에 경기도 전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험에서 자신의 학교가 성적이 안 좋았기에 학교장의 특별 지시로 그랬다는 둥, 아이들이 모두 싫어 한다는 둥 하면서 나름대로 뿔난 이유를 대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속으로야 ‘그럼, 네 뜻대로 안가면 되지. 뭘 그리 짜증 내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시 생각의 간격을 두고 입을 열었다.


“그럼. 그에 관해서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해보고 저녁에 다시 이야기 하자꾸나.”

이렇게 딸아이와 나는 그 문제를 놓고 하루 종일  생각을 해본 후 저녁에 다시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그래 생각해봤냐?”
“사실, 우리 집은 시골이라 안성시내로 학교 한 번 가기도 힘들고, 방학 동안 그거 해도 효과도 없고, 수업료도 따로 얼마를 내니 돈도 아깝고 그래요. 무엇보다도 방학도 짧은 데 간다는 게 짜증나요.”
“그런데, 너는 그런 이유로 담임선생님께 안 한다는 사연을 써서 보내라지만, 너와 같은 반 아이들도 모두 그럴 텐데…. 그건 생각해봤니? 너 하나 하기 싫다고 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안 간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좀 더 학교 측과 나에게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건 말이죠. 나는 이번 학교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전혀 상의도 없이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돈을 내고 방학 동안 학교에 오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말도 그거였는지 모르겠다. 무조건 방학 동안 학교 가기 싫어서 안 간다는 것은 학생들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생각이니 그것으로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딸아이가 하루 종일 생각해보고 자신의 분명한 명분을 찾아서 나와 타협을 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그것을 노렸다. 딸이 원하는 대로 덥석 ‘방학동안 학교 안 가는 걸 허락한다’고 써 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딸, 내가 써줄 테니까. 내일 담임선생님께 갖다 드려. 그리고 혹시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든지, 학교 안 나오겠다고 했을 적에 학교에서 채벌이나 야단을 가해와도 네가 감당해야 돼. 알았지?”

딸아이는 사뭇 진지해지기도 하고 무게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딸아이에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종류의 일들이 많을 것인데, 잘 생각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라고 일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이렇게 써서 보내도 학교에서 보충수업 나오라고 그러면 친구들도 모두 나가는 거니까 너도 함께 나가면서 고민해보는 시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함께 해주었다. 방학동안 학교를 가게 되더라도 의식을 가지고 가는 게 좋다면서. 하여튼 그렇게 해서 써 준 내용이 다음과 같다.

“담임선생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실시하는 보충수업에 관해서 딸과 함께 하루 종일 생각해본 후 대화를 나누었고, 이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말을 쓰고 싶었으나 군더더기 없이 써서 보냈다. 학교 측과 담임교사의 입장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과격(?)한 표현은 최대한 삼가고, 정중하게 그러나 의사표현은 정확하게 했던 것이다. 사실 딸아이도 안 해 본 것이라 조금은 두려워했고, 나도 안 해본 것이라 살짝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러고 그 다음날이 되었다. 딸이 학교에서 돌아 와서는 미소 지으며 일러 주었다.

“아빠. 선생님께 전해드렸고 보충수업 안 가도 된다고 허락받았어요.”

아무 말 없이 우리 부녀의 결정을 존중해준 딸아이의 담임교사께 정말 고마웠다. 하여튼 그렇게 딸아이와 나는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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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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