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 미치게 만든 나라
지금이라도 '간첩'들 치료하라

'6·26 UN 고문희생자 지원의 날'에 부쳐

등록 2008.06.25 19:26수정 2008.06.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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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철 열사 20주기를 맞이한 2007년 1월 14일 오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509호실에 고인의 영정과 국화꽃이 놓여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군사독재가 끝난 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런 소리를 하고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외치고 싶다. 고문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고문이란 것은 결코 일회성일 수가 없다. 지난 시절 민주화의 지난한 여정 속에서 수많은 민주인사와 무고한 시민들이 독재권력의 하수인들에게 끌려가 치욕적인 고문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랬다'는 사실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문을 받았고 그 이후 고문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문으로 인해, 또는 한 번 찍힌 '간첩'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사회에 복귀해서도 거의 식물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고문을 얘기하냐고? 고문은 진행형

고문은 한 번에 그치지만 그 후유증은 평생을 간다. 생각해 보라. 멀쩡한 사람을 밀실에 가두어 놓고 매일 죽음과 같은 고문을 한 달 이상 해대면 그의 정신 상태가 어떨 것인가를. 게다가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바로 치료를 받으면 모르겠는데 형식에 불과한 재판을 거쳐 교도소 독방에서 10년·20년을 썩으면 겉은 멀쩡할지 몰라도 내면은 이미 이 세상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에 나와도 그들을 치료해 주거나 따뜻하게 돌보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짐승처럼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거나 무력하기 짝이 없는 처지를 한탄하며 세월을 보낼 뿐이다.

장애인이나 산업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래도 부족하나마 법률에 의한 보호를 받지만 고문 피해자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도 아무런 보호대책이 없다. 국가의 부당한 폭력행사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니만큼 당장의 생계는 고사하더라도 정신의학적 치료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 내가 '지금도 고문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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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소속 회원들이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국보법 즉각 폐지를 요구하며 대공분실 담벼락 철조망에 보라색 리본을 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나는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무려 60일 동안 고문을 받은 끝에 스스로 간첩임을 인정하는 조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린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런 식이라면 나라도 안기부장을 단 일주일 만에 간첩으로 만들 수 있어. 암, 만들 수 있고 말고!"


이렇게 억울함과 충격 속에 휩싸인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교도소 독방살이를 거치면서 몇 가지 흔한 정신의학적인 증상을 갖게 된다.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증, 고문이 낳은 것

그 첫째가 피해망상 또는 대인기피증이다. 지은 죄도 없이 장기형을 살다보니 누군가의 모략이나 의도에 의해 징역을 살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늘 시달린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누구라도 나에게 의심스런 행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친절하게 굴면 그것을 곧바로 나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가장하는 것으로 의심한다. 나중에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인식하여 대인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로 많은 증상은 과대망상증이다. 일반적으로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범죄사실'은 몇 배 혹은 몇 십 배 증폭된다. 될 수 있는 한 중형을 때리기 위해서이다. 데모 몇 번 한 것, 또는 사회비판적인 글 몇 편을 잡지에 실은 것을 가지고 '골수 공산주의자'나 '열혈 혁명가'로 수사조서에 기재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세상에 공표한다. 피해자는 반론의 방도가 전혀 없는 가운데 이왕 받은 장기형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나는 위대한 혁명가야. 그래, 나는 저 무소불위의 독재자마저 두려워하는 대단한 사상가이지."

허구헌 날 독방에 앉아 하릴없이 공상과 망상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상상 속의 인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 최종심에서 무기형을 받고 나서는 "아, 이렇게 무기형을 받을 줄 알았다면 내가 왜 혁명가의 삶에 투철하지 않았던가!"하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다. 고문과 재판과정에서 이미 비정상의 길로 가는 통로가 훤히 열려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길게 논할 것도 없는 신체적인 후유증이다. 고문피해자 가운데는 오랫동안 혹은 평생에 걸쳐 신체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명(耳鳴)·신경쇠약·신경발작·협심증·근육파열·만성두통·불면증·헛소리·악몽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2008 UN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대회
 때·곳 : 2008년 6월 26일(목) 오전 10시30분
         1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전문가발언 :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이화영(내과 전문의),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고문피해증언 : 송기복(82년 송씨일가 간첩단사건), 황대권(85년 구미유학생사건), 홍성담(89년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 함주명(83년 이근안 고문피해자)

사  회 : 강용주(가정의학과 전문의)

주  최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재)518기념재단, 엠네스티한국지부
나 역시 위에 적은 일반적인 증후군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그러나 감옥에서 야생초를 기르며 상처의 상당 부분을 치유할 수 있었고, 나를 아끼는 수많은 지인들의 격려와 사랑에 힘입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지극히 예외적인 행운아이다. 아직도 수만일지 수십만일지 모를 고문피해자들이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마당에 나만이 홀로 '성공한' 출소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자괴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고문피해자는 운수 사나운 범죄자가 아니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고문피해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UN이 정한 세계인권규범 제5조는 고문의 근절과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유엔가입국가일 뿐만 아니라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현재 고문을 자행하고 있지 않다고 하여 과거의 범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문피해자들은 그 때 이래로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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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씨. ⓒ 김대홍

개탄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국가보안법 관련 피해자들을 국가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된 '운수 사나운' 범죄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별하기 어려운 간첩을 잡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도 다칠 수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암묵적 동의'를 배경으로 저들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피해자들의 고통에 찬 호소마저도 '간첩들의 상투적인 술수'로 몰아대기 일쑤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지난 시절 자행된 광범위한 고문행위를 조사하여 그 피해자들에게 사회적응을 위한 최소한 배려와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치료해주는 치료요양원의 설립이다.

덧붙이는 글 | 황대권 기자는 생태운동가로 <야생초편지>의 저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황대권 기자는 생태운동가로 <야생초편지>의 저자입니다.
#고문반대 #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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