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떡과 뭉게구름이 떠올린 서글픈 추억

하늘에 떠오른 뭉게구름과 친구가 가져온 보리떡이 떠올린 추억

등록 2008.06.25 18:20수정 2008.06.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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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저 구름을 보았으면 무엇을 떠올렸을까? ⓒ 이승철

그 시절에 저 구름을 보았으면 무엇을 떠올렸을까? ⓒ 이승철

 

지금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아련한 동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구름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인데 슬프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뭉게구름이 서울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 한 번 좋구먼, 뒷동산 정자로 나와!"

 

점심 무렵 내가 사는 마을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가까이 살아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전에 만났던 뒷동산 정자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벼운 차림으로 뒷동산을 올랐습니다. 하늘이 참 맑고 고왔습니다. 하늘에는 크고 작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모습도 여간 멋진 풍경이 아니었지요. 정자에 이르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이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같이 보리떡이나 나누며 옛날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웬 보리떡, 그의 앞에는 음료수 병과 함께 비닐봉지 한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가 펼친 비닐 주머니에는 거무튀튀한 보리떡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이거 한 번 먹어봐? 맛이야 없겠지만 옛날 생각하면 혹시 군침이 돌지도 모르지 않겠어? 허허허"

 

보리떡 한 개를 집어 우물거려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맛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입안에서 미끄럽게 맴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정말 맛없지? 그런데 우리 마누라는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이런 음식을 한 번씩 만들어 내놓는다네. 작년에는 아마 밀개떡이었었지."

 

서울 출신인 친구의 부인은 6.25 전쟁 당시 부모님의 등에 업혀 남쪽으로 피난 갔다가 초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고생이 막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삶도 가난하고 힘든 생활이지만 옛날을 생각하며 행복해 한다고 합니다. 해마다 6월이면 개떡이나 보리떡을 해먹어 보는 것도 그 시절 배고프고 고생스러웠던 때를 생각하며 오늘의 행복을 느끼려는 것 같다는 것이 친구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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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 보리떡 ⓒ 이승철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 보리떡 ⓒ 이승철

 

"아내가 이런 걸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설마 그 시절을 어찌 몽땅 잊어버리기야 했겠어? 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만 쳐다봐도 그 시절이 생각나는데."

 

친구가 공원 하늘 위에 둥실 떠있는 뭉게구름을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50여 년 전 그 시절은 6.25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참으로 절박한 시기였지요. 보릿고개라는 춘궁기가 있던 배고픈 시절이었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도시락을 가지고 올 수 없어 물 한 모금으로 점심을 거르는 친구들이 많았답니다. 친구도 아마 그렇게 굶주리며 자랐을 것입니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저 구름은 밥그릇에 수북한 쌀밥처럼 생겼네", "저 구름은 꼭 수수보리떡처럼 생겼고", "저 구름은 꼭 돌아가신 우리 엄마 얼굴 같기도 하고"라며  생각을 했을까요.

 

그러자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다른 친구가 "아니야, 저 구름은 돌아가신 우리 아빠얼굴이야"하며 저마다의 슬픈 눈으로 뭉게구름을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완연하다고 합니다.

 

"그래, 건강하라고, 조금 어렵더라도 옛날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몇 년 전 사업에 실패한 후로 요즘도 상당히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입니다. 그가 보리떡을 준비하여 나와 함께하고 싶었던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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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젖게하는 뭉개구름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이승철

추억에 젖게하는 뭉개구름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이승철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관보 게재를 내일 강행한다면서, 그 사람들 참, 그렇게 밀어붙이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촛불시위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구먼."

 

옛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불쑥 튀어 나왔습니다. 나이든 사람도 시국문제는 결코 가볍게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두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그와 헤어져 저만큼 걸어가는 친구의 어깨가 오늘따라 가벼워 보였습니다. 더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야겠다고 다짐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여전합니다. 장마가 주춤거리는 하늘에 모처럼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과 친구가 가져온 보리떡이 수십 년 전의 옛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25 18:2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뭉게구름 #보리떡 #추억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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