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지휘부 "국회의원·초등생, 자진해서 버스 탔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 등 경찰청 항의방문... 김석기 차장, 강제연행 발뺌하다 '혼쭐'

등록 2008.06.26 01:53수정 2008.06.26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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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석기 경찰청 차장(오른쪽 끝)이 26일 새벽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을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시위대 연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석기 경찰청 차장(오른쪽 끝)이 26일 새벽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을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시위대 연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손병관

김석기 경찰청 차장(오른쪽 끝)이 26일 새벽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찰청을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시위대 연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손병관

 

경찰청 간부들이 25일 경찰의 과잉진압을 항의하러 온 통합민주당 의원들에게 사실과 다른 보고를 했다가 혼쭐이 났다.

 

이들은 어청수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의원들에게 “현장에 나간 청장과 연락이 안 된다”고 둘러대는 등 경찰 비상연락망의 허점을 자인(?)하기도 했다.

 

민주당 천정배·정장선·신학용·주승용·전병헌 의원은 이날 저녁 10시20분경 경찰청을 항의방문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초등생 등을 무차별 연행한 행위를 추궁했다.

 

경찰청에서는 김석기 경찰청 차장과 김정식 치안감(정보국장) 등 간부 5~6명이 이들을 맞이했고, 어청수 청장은 ‘현장 지휘’를 핑계로 의원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언론보도를 보니 현역 국회의원과 12살 먹은 초등생까지 경찰버스로 연행했더라.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천정배 의원은 “경찰이 시민들을 포위한 상태에서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했다는데 이럴 수 있냐?”며 “한 달 이상 평화시위가 이어졌는데 어제(24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까 강경진압으로 돌아선 게 아니냐?”고 물었다. 주승용 의원도 “과잉진압으로 시민들을 일부러 흥분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나 경찰 간부들은 처음부터 사실 관계를 부인하는 데 급급했다.

 

김석기 차장은 “시위대 호송을 막던 이 의원이 자진해서 버스에 올라탔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추궁이 계속 이어졌지만 그는 “대통령 말 때문에 국회의원이나 어린 학생을 연행하는 일은 절대 없다”며 “정확한 보고를 받았고,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다.

 

정보계통의 한 간부는 “기습 시위를 벌인 사람들을 격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연행했다. 초등생 연행자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간부는 “어린 학생을 버스에 태운 적이 전혀 없다는 거냐 아니면 버스에 태웠다가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풀어준 거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경찰 간부들이 계속 오리발을 내밀자 민주당 의원들은 <오마이뉴스> 기자의 노트북 컴퓨터를 무선 인터넷에 연결해 이 의원의 연행 모습을 담은 인터넷 동영상을 보여줬다. 동영상을 보니 경찰버스에 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이 의원을 경찰들이 억지로 밀어 넣는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주승용 의원 : 경찰버스에 아이를 태운 사진이 있고, 이 동영상을 봐도 이 의원이 버스에 억지로 탄 게 분명한데, 경찰 간부가 국회의원들 앞에 놓고 뻔한 거짓말을 할 수 있냐?

김석기 차장 : (잠시 당황한 듯) 그 동안 저희가 찍은 (폭력시위) 동영상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전병헌 의원 : 차장님,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왜 화제를 엉뚱한 곳으로 돌립니까?

 

천 의원이 “제대로 보고를 받으셨어야 했다”고 쏘아붙였지만 김 차장은 “나는 분명히 그렇게 보고를 들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주 의원이 “대충 얼버무리려고 하는 데 아까 전에 한 말과 다르다”고 추궁하자 김 차장은 비로소 잘못을 인정했다.

 

“장시간 도로에서 시위대와 대치하다보니 검거자 중에 (그런 사람들이) 포함된 것 같다. 그 부분은 저희들이 잘못됐다. 동영상을 보니 제가 보고받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 차장은 이어 “제가 들은 것과 다른 내용의 보고를 (의원들에게) 드렸다면 제가 책임지겠다”고 답했다. “정확한 보고를 받았고,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애초의 공언과 달리 부하들의 허위보고 가능성에 무게를 둔 답변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식 치안감은 “아마 (연행된) 초등생이 (경찰에게) 욕하고 소리 지르고 했을 것”이라고 경찰들의 행위를 옹호하는 말을 했다. 발끈한 전병헌 의원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설령 그랬다고 해도 어린아이를 경찰버스에 가두는 게 말이 되냐”고 힐난하자 그는 말문을 닫았다.

 

“시위 현장에 나간 경찰청장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경찰 간부들의 답변에도 의원들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받아쳤다.

 

의원들이 "허위 보고하는 간부들을 믿을 수 없으니 어 청장을 불러와라. 못 오면 우리가 청장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지만 경찰 간부들은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연락이 안 된다”(김 차장), “시끄러운 현장에 있으면 연락이 안될 수도 있다”(김 치안감)고 변명했다.

 

전 의원은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 경찰청장과 차장이 연락이 서로 안 되는 게 말이 되냐? 어 청장이 우리를 일부러 피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경찰 간부들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천 의원은 “이정희 의원에 대한 허위보고도 그렇고, 어청수 청장과 연락이 안 닿는다는 얘기도 말이 안 된다”며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천 의원은 “경찰의 통신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허위정보에 기초해서 경찰이 중요한 판단을 하다보면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뒤 다른 의원들과 함께 경찰청을 나섰다.

 

청사를 나서는 민주당 의원들을 지켜보던 한 간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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