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메리’

골목에 들어서는 조카 구루마 소리도 구별하던 ‘메리’였는데...

등록 2008.06.26 11:16수정 2008.06.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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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장에 가면 꿩과 다람쥐도 볼 수 있는 닭 전을 꼭 들르고 TV도 <동물의 왕국>을 즐겨봅니다. 동물원 사육사가 못된 게 이상할 정도로 동물 그림만 봐도 호기심부터 발동했으니까요. 

 

TV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삶 속에서 인간의 애틋한 모성애와 가족애를 느끼고 배우며 믿음과 순수한 정이 메말라가는 세태를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이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말하라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제일 먼저 꼽을 것입니다. 특히 애완용보다 마루 밑에서 눈을 꾸벅거리는 누렁이가 더 좋더라고요.

 

취미가 다양해지고 경제가 좋아지면서 왜국에서 들어온 예쁘고 영리한 개들이 많더군요. 그래도 가장 친한 친구였고 죽어서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까지 치러주었던 ‘메리’만 못한 것 같습니다.

 

a  ‘메리’의 40대 후손쯤으로 보이는 ‘진돌이’가 고향의 형님 댁을 지키고 있습니다...

‘메리’의 40대 후손쯤으로 보이는 ‘진돌이’가 고향의 형님 댁을 지키고 있습니다... ⓒ 조종안

‘메리’의 40대 후손쯤으로 보이는 ‘진돌이’가 고향의 형님 댁을 지키고 있습니다... ⓒ 조종안

 

‘메리’와의 만남

 

개와의 처음 인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장바구니에 하얗고 예쁜 강아지 한 마리를 담아 오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과상자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깔아 마루 밑에 거처할 곳을 만들어주었더니,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님이 암컷이니 이름이 예뻐야 한다며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온 것도 아니고 가까운 친구가 잘 기르라고 준 것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고 예뻐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당시 집에서는 잉꼬 한 쌍과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는데, 식구가 하나 더 늘면서 제 생활 패턴도 바뀌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답게 입을 맞추며 지저귀는 잉꼬를 찾는 것부터 하루를 시작했고, 밤에 숙제를 끝내면 고양이와 놀다 함께 잠자리에 들곤 했거든요.

 

그런데 메리가 들어오고부터는 방과 후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메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책가방을 던지기가 무섭게 마루 밑에서 낑낑대는, 불쌍한 메리를 찾았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메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방학 내내 '메리'와 병원에 다니다

 

석 달이나 지났을까요, 메리가 쫑쫑거리며 따라다닐 만큼 성장한 어느 날 갑자기 변고가 생겼습니다. 잘 자라던 메리의 뒷다리 쪽 사타구니에 부스럼이 생기더니 며칠 지나니까 어린아이 피부처럼 연한 배 전체로 번지더라고요. 가축병원 의사는 홍역이라고 했는데, 확실한 병명은 지금도 모릅니다.

 

다행스럽게도 여름방학 기간이라서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질녘쯤이면 저와 병원에 다녔는데, 약을 바르고 주사를 맞으며 바라보는 메리의 눈빛은 너무나 안쓰러웠고 저를 의지하는 마음이 눈가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골목에서 재미있게 노는데 어머니가 메리와 병원에 가라고 하셨을 때. 처음엔 무척 짜증이 났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다니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끊을 수 없는 깊은 정이 들기 시작했지요. 상가 간판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따라다니던 메리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배급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던 시절이었으니,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아프면 자연적으로 치료되기만 기다렸지 가축병원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가축병원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니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기 어려웠던 시절에 한 달이 넘게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고, 완치가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메리는 선택을 받고 태어난 강아지였던 것 같습니다.

 

메리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느라 그 해 여름방학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아쉬움 속에 마쳤습니다.

 

참으로 영리했던 '메리'

 

메리는 참으로 영리했는데요. 상처가 완치될 때쯤엔 많이 성장해있었습니다. 집에 오는 손님에게 함부로 짖지 않았고, 짖다가도 식구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멈췄습니다. 식구들은 물론 시집간 누님들에게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때 동네에는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나무로 만든 구루마가 몇 대 있었는데, 셋째 누님도 동네 시장으로 장을 보러올 때면 조카를 태운 구루마를 밀고 왔습니다. 메리는 동네 구루마와 조카가 탄 구루마 소리를 구별했습니다. 특히 평상에 앉아 있는 식구들보다, 먼저 소리를 알아듣고 줄이 끊어져라, 날뛰며 쫓아나가지 못해 안달이었거든요. 그렇게 예쁜 짓만 골라 하니 식구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메리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식구가 모두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아, 개 도둑에게 끌려간 것으로 인정하고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보름쯤 지났을까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생각지 않던 메리가 비를 맞으며 돌아와 온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뒹굴고 몸을 비벼댔습니다. 메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릅니다. 집을 나간 메리 때문에 온 가족이 가슴 아파했던 추억은 4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형제들이 모이면 화제에 오를 정도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는 식구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켰지만 눈독을 들이는 도둑에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까, 도둑이 던져준 약을 먹고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 후로는 개를 기르지 않고 있습니다.

 

메리가 거리를 구경하며 저를 따라다니던 모습과,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러 다녔던 들녘에 묻어주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울면서 절을 하던 장면은 인화가 잘 된 흑백사진처럼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이 가까워지니까 '메리'의 예쁜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2008.06.26 11:16ⓒ 2008 OhmyNews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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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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