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국립암센터 병실에 누운 아버지는 눈에 눈물이 고이자 말을 잇지 못하고 손등으로 남몰래 눈물을 훔쳐냈다.
김종인(50·경기 파주시 금촌동)씨는 고교생 아들 현수의 간을 이식수술 받고 건강을 회복 중이다. 김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간암 말기'라고 6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것이 지난 3월. 파주시에서 열쇠가게를 운영하는 김씨 가정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지만 단란했다. 김씨의 시한부 간암 소식에 청천벽력을 맞은 식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김씨의 생명을 구할 유일한 방법은 건강한 간을 이식수술 받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간이식수술을 하겠다고 선뜻 나선 현수는 파주시 문산제일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7세 청소년이다.
지난 13일 현수의 건강한 간은 5시간의 수술 끝에 아버지 김종인씨에게 이식됐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김씨는 감염이 우려돼 1인실에서 회복치료 중이다. 김씨의 병실에서 나와 현수의 병실로 찾아갔다.
"간이식 수술을 하려고 결정했을 때 고민하거나 걱정되는 건 없었어?"
"별로 고민 해보지 않았어요."
힘든 수술을 받고 핼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던 현수는 "큰 결정은 아니었다"며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듯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사실 효자는 아니에요. 평소 아버지에게 잘한 것도 별로 없고, 사이가 그리 좋았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못마땅한 점이 많았거든요."
어머니 문예림(48)씨는 "현수가 아버지가 건강하지도 않은데 술을 자주 마시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설명했다. 심리갈등을 많이 겪는 청소년이기에 현수는 그런 자신이 효자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고 믿는 듯했다.
"저는 아버지가 간이식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제 간을 수술하려고 혼자 마음 먹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동생이 먼저, 자기가 이식수술을 받겠다고 검사에 나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한다고…."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효심이 나오며 저리 속이 깊고 침착할까. 여동생 현아(15. 금촌중3)가 이식수술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오빠 현수는 여동생을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남매가 똑같이 효자효녀다.
"동생에게 너는 여자고 어리니까 큰 수술을 하면 안 된다고 말리더라고요."
어머니 문씨는 "그저 아이들이 고맙고 예쁘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현수 아버지가) 요즘 자주 눈물을 흘리고 울어요. 아버지가 아파서 아들에게 저렇게 힘든 일 겪게 했다고."
"수술보다 기말고사가 더 걱정됐어요"
아버지와 다른 병실을 쓰고 있는 현수가 아버지를 보러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수술에 성공해서 기뻐요."
이 말을 하면서 현수는 쑥스러워했다. 마침 병실을 회진 중인 담당의사가 들어와서 김씨에게 "이상은 없냐"고 묻는다. 기운이 없어 가느다란 목소리로 김씨가 대답한다.
"나는 입맛도 좋아져서 잘 먹게 됐는데 현수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아들의 건강한 간이 이식된 덕분에 입맛이 좋아지는 거예요. 아들은 간을 떼어냈으니 회복시간이 필요한 거고."
현수가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했다는 소문은 국립암센터에서도 퍼져 담당 의료진은 물론 이웃 병실 환자까지 찾아와 대견해 한다.
김씨는 아들이 수술 받느라고 6월에 거의 학교를 못 가서 성적에 지장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 한다. 대학입시에 몰두할 시기에 현수가 자신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현수 병실에서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7월에 있을 기말고사가 걱정이에요. 대학입시 내신성적이…. 수술 받기 전에도 수술은 별로 겁나지 않았는데 기말고사가 걱정이 되더라고요."
평소 봉사동아리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모범생인 현수는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도 결석을 많이 해 '시험이 제일 고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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