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었다고 좋은 사진은 아니다

[사진말 (6) 사진에 말을 걸다 25∼29] 내가 찍어서 마음 들어하는 사진

등록 2008.06.27 15:22수정 2008.06.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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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을? 사진기를 들 때마다, 이 모습을 꼭 찍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생각합니다. 디지털로 찍으면, 그냥 지워도 되지만, 지울 사진을 찍는 일은 시간을 버리고, 그 시간만큼 둘러볼 우리 삶터 모습을 못 보게 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 어떤 사진을? 사진기를 들 때마다, 이 모습을 꼭 찍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생각합니다. 디지털로 찍으면, 그냥 지워도 되지만, 지울 사진을 찍는 일은 시간을 버리고, 그 시간만큼 둘러볼 우리 삶터 모습을 못 보게 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25] 누구나 다 찍는 사진을 왜 찍나? : 누구나 다 그리는 그림을 왜 그리나? 자기 그림을 그려야지. 배운 그림을 따라하지 말고, 못나고 못생기고 모자라더라도 자기 그림을 그려야, 차근차근 자기 모습이 만들어지고 자기 생각도 뚜렷하고 탄탄하게 드러난다. ‘그림’을 ‘글’이나 ‘사진’으로 고쳐서 말해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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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진 우리 집에 깃들어 사는 고양이를 사진으로 찍기도 합니다. 아주 드물게. 새끼 고양이는 ‘놀아 주기’를 바라지, ‘사진 찍어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무서워서 내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함께 놀아 준 다음 사진기를 들면, 발로 휘저어 보기도 하다가 얌전하게 앉아서 찍혀 주곤 합니다. ⓒ 최종규

▲ 고양이 사진 우리 집에 깃들어 사는 고양이를 사진으로 찍기도 합니다. 아주 드물게. 새끼 고양이는 ‘놀아 주기’를 바라지, ‘사진 찍어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무서워서 내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함께 놀아 준 다음 사진기를 들면, 발로 휘저어 보기도 하다가 얌전하게 앉아서 찍혀 주곤 합니다. ⓒ 최종규

 

[26] 잘 찍었다고 좋은 사진은 아니다 : 잘 그렸다고 좋은 그림은 아니다. 더구나 훌륭한 그림이지도 않다. 자기 목소리, 느낌, 생각,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그림이 아니며 휴지조각도 아니라고 느낀다. 휴지조각은 코라도 풀 수 있지. 잘 그리기만 한 그림은 코도 못 푼다. 이런 종이로 코를 풀면 코만 더러워진다. 하긴, 그림뿐이겠느냐. 어설픈 글이나 어수룩한 사진이나 어줍잖은 삶이나 똑같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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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사진 사진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들려줄 이야기를 한결 힘있게 알려주기도 합니다. 내가 보았다고 주절주절 떠드는 백 마디보다, 아무 말이 없이도 한 장 사진으로 보여주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환히 드러나곤 합니다. ‘자동차’는 버젓이 다니는 길이면서 ‘자전거’는 못 다니게 하는 어느 공원 알림판에 자전거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 최종규

▲ 적바림 사진 사진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들려줄 이야기를 한결 힘있게 알려주기도 합니다. 내가 보았다고 주절주절 떠드는 백 마디보다, 아무 말이 없이도 한 장 사진으로 보여주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환히 드러나곤 합니다. ‘자동차’는 버젓이 다니는 길이면서 ‘자전거’는 못 다니게 하는 어느 공원 알림판에 자전거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 최종규

 

[27] 이삿짐에서 나온 사진기 : 지난 2005년에 있던 일. 이삿짐을 풀다가 깜짝 놀란다. 사진기가 두 대나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한 대는 워낙 예전부터 갖고 있던 녀석인데 어디 있는지 안 보여서 사라졌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 대는 아주 잊고 있었다. 미놀타 X-300. 틀림없이 이 사진기는 사진기를 여러 차례 도둑맞고, 없는 살림에 가까스로 다시 마련하던 때 쓰던 녀석이다.

 

필름이 들었나 보니 스물여덟 장 찍고 그대로 있다. 아. 이런. 이렇게 사진기에 필름이 든 채 여러 해 묵었으면 필름도 다 날아갔을 텐데…. 2002년은 아닌 듯하고, 2000년에 크게 한 번 이삿짐을 꾸릴 때 넣었다가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묻어 버린 사진기인 듯하다. 참 놀라우면서 어쩔 줄 모르겠고, 반가우면서 씁쓸하다. 다시 찾으니 놀랍고 반갑지만, 이 사진기를 잃어버린 줄 알고 가슴 태웠을 그때에는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 거의 안 될 듯하지만, 이 묻어 있던 사진기에 들어 있는 필름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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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틀 헌책방 한켠에 놓인 걸상을 찍을 때, 한복판에 놓지 말고 사진 틀에서 왼쪽이나 오른쪽, 또는 오른쪽 위나 왼쪽 아래에 놓으면 한결 느낌이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저도 때때로 그런 이야기에 맞추어 찍곤 합니다. 그러나 한복판에 놓고 찍을 때도 꽤 됩니다. 이 느낌이 이대로 좋아서. ⓒ 최종규

▲ 사진 찍는 틀 헌책방 한켠에 놓인 걸상을 찍을 때, 한복판에 놓지 말고 사진 틀에서 왼쪽이나 오른쪽, 또는 오른쪽 위나 왼쪽 아래에 놓으면 한결 느낌이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저도 때때로 그런 이야기에 맞추어 찍곤 합니다. 그러나 한복판에 놓고 찍을 때도 꽤 됩니다. 이 느낌이 이대로 좋아서. ⓒ 최종규

 

[28] 내가 찍어서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 : 헌책방을 찾아온 사람이나 헌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 놓고 보면 참 좋다. 사람 하나 없이 책방 모습이나 책 모습만 찍어도 참 좋다. 어쩌면, 내가 찍을 모습이란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모습이거나, 사람이 없어야만 하는 모습이 아니겠구나 싶다. 책만 있거나 책방 모습만 담는 사진 또한 아니겠구나 싶다. 내가 즐겨 찾아가는 이곳, 이 헌책방,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모든 모습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가운데 담아낼 때, 비로소 내 사진이 나오는구나 싶다. 억지로 어떤 모습을 생각하거나 기다리면서 찍어 보았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안 나오는구나 싶다. 때로는 사람이 있는 헌책방 사진이 푸근하고, 때로는 사람이 없이 책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 따뜻하겠구나 싶다.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찍는지, 그 무엇을 어떻게 찍는 마음인지가 더없이 마음 기울이며 살펴볼 대목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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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사람 헌책방을 찾아와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주니 고맙고, 헌책방에 찾아와서 슬며시 저한테 사진 모델까지 되어 주니 고맙습니다. ⓒ 최종규

▲ 고마운 사람 헌책방을 찾아와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주니 고맙고, 헌책방에 찾아와서 슬며시 저한테 사진 모델까지 되어 주니 고맙습니다. ⓒ 최종규

 

[29] 잘 찍은 사진이 좋기는 하다 : 잘 찍은 사진이 좋기는 하다만, 이보다는 알맞게 찍은 사진, 때와 곳에 잘 들어맞는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잘 쓴 글보다 알맞게 쓴 글이 더 좋다. 내 삶도 넉넉하게 잘사는 일이 좋다고 볼 수 있겠으나, 내 즐거움을 찾아 재미있게 살아갈 때가 훨씬 낫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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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고 타는 자전거 비오는 날, 자전거모임 사람들하고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저는 뒤에서 자전거를 몰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리는 비에 자전거며 몸이며 사진기며 젖어들었지만,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몸이 흠뻑 젖으면서 돌아다니는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기에 비를 맞히면서 몇 장 남겼습니다. ⓒ 최종규

▲ 비 맞고 타는 자전거 비오는 날, 자전거모임 사람들하고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저는 뒤에서 자전거를 몰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리는 비에 자전거며 몸이며 사진기며 젖어들었지만,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몸이 흠뻑 젖으면서 돌아다니는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기에 비를 맞히면서 몇 장 남겼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27 15:2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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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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