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정. 창덕궁 후원에는 군왕의 여흥을 위한 정자가 많이 있다.
이정근
군주는 참언(讖言)과 직언을 가려들을 수 있는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데 인조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선대왕들은 세자시절부터 대학연의를 공부했다. 대학연의는 역대 왕들이 탐독한 제왕학 교과서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환란을 겪으며 대학연의를 접할 겨를이 없었다.
원손이 하직 인사를 드리러 희정당을 찾았다. 병석에 누어있던 인조가 자리에 앉으며 원손을 맞이했다.
"할바마마! 다녀오겠습니다.""그래. 몸 성히 잘 다녀 오거라.""병환에 계시는 할바마마를 두고 소손 혼자 아바마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송구할 따름입니다."원손이 큰 절을 올렸다. 석철은 무엇 때문에 자신이 심양에 가는지 모른다. 그저 엄마가 거기에 있고 엄마가 있는 곳에 간다는 것이 좋을 뿐이다. 더욱이 자신이 도착하면 아버지 소현이 한성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할마마마도 강녕히 계십시오."곁에 있던 소원 조씨에게도 큰 절을 올렸다. 석철은 중전이 무엇이고 후궁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할바마마와 늘 같이 있고 내인들이 할마마마라 부르라 하기에 부를 뿐이다.
"잘 다녀오십시오. 원손!"소원이 눈을 내리깔며 화답했다. 이러한 할머니에 의해 석철이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아바마마! 다녀오겠습니다."인평대군이 인조에게 큰 절을 올렸다.
"원손을 모시고 잘 다녀오도록 하라."원손 석철은 다섯 살이고 인평대군은 스무 살 성인이다. 장가도 들었다. 사적으로는 숙질간이지만 종통으로는 원손의 신하가 된다. 원손은 왕위 계승 서열 2위가 되기 때문이다. 명나라 건국초기. 주원장의 아들 의문태자가 병사하자 황태자의 아들 혜제가 황태손에 책봉되어 건문제로 등극했다. 이러한 예법을 따르는 조선은 원손이 아직 책봉되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예우를 법통으로 생각했다.
하직 인사를 마친 원손 일행이 북행길에 올랐다. 말을 탄 숙위군 별감이 앞장서고 원손이 탄 가마가 따랐다. 뒤이어 인평대군의 가마가 따르고 익위사 관원과 내인들은 걸었다. 일행 30여명은 심양을 향하여 길을 재촉했다. 원손이 심양으로 떠난 이튿날. 직강 조한영이 상소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