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도 뭔가 다른 뉴스게릴라들

2008 시민기자대회 참관기

등록 2008.06.30 09:18수정 2008.06.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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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을 밝힌 모닥불과 촛불 오연호 대표가 토요일 저녁 서울에서 벌어진 격렬한 촛불시위 광경을 설명하고 있다. ⓒ 우광환

▲ 마지막 밤을 밝힌 모닥불과 촛불 오연호 대표가 토요일 저녁 서울에서 벌어진 격렬한 촛불시위 광경을 설명하고 있다. ⓒ 우광환

 

6월 27일부터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2008 시민기자대회'가 열리던 2박 3일간도 서울의 광화문과 종로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는 끊이지 않았다. 토요일인 28일 집회에서는 경찰과 시민 양쪽을 합쳐 부상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극렬했다. 살수차에 맞서 시민들도 근처 빌딩에서 내 온 소방호스로 맞대응했고, 10만이 넘는 참가 인원도 '6·10항쟁'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며 오마이스쿨에 모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가슴 저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도 대부분 지금까지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가하거나 취재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시민기자들과의 사귐과 서로간의 배움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기자도 꽤 됐다.

 

즐거운 시간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는 촛불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시간만 나면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모두의 관심은 온통 '촛불'이었다. 2박 3일간 컴퓨터나 TV, 심지어 라디오마저도 가까이 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뉴스에 목마르면서도 간혹 들려오는 외부 소식에 촛불은 눈앞에서 더욱 선명하게 어른거렸다.

 

촛불든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오마이스쿨의 시계는 서둘러 돌아가는 듯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엔 모두가 함께하는 특별한 추억과 즐거운 함성이 담겨있었지만, 촛불만 생각하면 광화문의 그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토요일 오후, 기어이 짐을 꾸려 광화문으로 달려가는 기자도 있었다.

 

MBC 시사교양국 프로듀서인 한학수 PD, 배우 최종원씨의 특강과 '노래마을'을 운영하는 가수 겸 시인이자 작곡가인 백창우씨의 작은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캠프파이어 앞에서 저마다 들었던 촛불들과 술잔, 끝없는 이야깃거리에 잠자는 시간은 사정없이 희생되었다.

 

글로만 보던 기자들 서로 각자의 이름을 확인하며 반가워하는 그 자리의 술병들은 빠르게 비워나갔다. 맑은 공기와 더불어 푸른 오마이스쿨의 이틀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기사 소스를 주로 어떻게 찾아요?"

 

"그저 아무데서나 찾는 거죠. 이 돌의 생김새와 저 꽃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기사 한편을 작성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기사라는 것, 내 마음 속의 이야기 아니겠어요? 그걸 어떤 소재에, 마음속의 어떤 움직임을 입히느냐가 문제겠죠. 글재주요?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아니 못 쓰는 거죠. 어차피 없는 재주로 쓰는 건데요 뭐. 잉걸이면 어떻고, 버금이면 어떻습니까? 그저 내가 좋아 쓰는 기사인데. 그냥 딸아이한테 칭찬이나 들으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어요."

 

시민기자 생활 7개월에 90편이 넘는 기사를 썼다는 조종안 기자의 말에 왠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은발의 56세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곳곳에서 활력이 넘쳐났다. 음식에 대한 기사가 많아서인지 식성도 왕성했다. 특강 때마다 강사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퍼부어대는 사람도 그였다.

 

시민기자들은 삶 자체도 어딘가 달랐다

 

직업까지 버리고 시민운동가로 활동한다는 김이구 기자의 특징 또한 강렬했다. 그의 가슴 속은 온통 사회 밑바닥을 위한 땀방울로 가득찬 듯 보였다. '관악도시농업네트워크'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대표로 활동한다는 그는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다른 시민기자에게 즉석에서 논 1600평을 빌리기로 기어이 합의했다. 그 논은 다른 농토와 같이 일이 필요한 홈리스들이나 활동이 가능한 독거노인들에게 맡길 거라고 했다.

 

"그들이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라면 어떡하죠?"

 

"저희는 농토만 그냥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법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가르치면서 일을 맡깁니다. 물론 거리가 먼 곳은 운송까지 책임을 지죠. 농기계가 필요하면 대여해주기도 합니다.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길도 열려있습니다. 열심히 일할 마음만 갖추어져 있다면 문제는 없지요."

 

이 정도면 단순한 봉사업무가 아니다. 체계적이고도 효율적인 봉사를 하기 위해 그는 끊임없는 연구를 하는 듯 보였다. 열성만으론 가능치 못할 일. 지혜와 활동력의 끝없는 재생산이 필요할 터이지만, 이미 그는 충분한 무장을 갖춘 것으로 보였다. 참 밝고 맑은 웃음까지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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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종원씨의 특강 모습 ⓒ 우광환

배우 최종원씨의 특강 모습 ⓒ 우광환

 

이틀째인 토요일 오후에 강화도의 유명한 '신미양요' 유적지인 광성보(廣城堡)를 찾았을 때, 마침 한 여기자가 옆에 있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이번 행사를 위해 불원천리를 달려왔다는 한나영 기자였다. 한 기자는 미국에서 해외통신원으로 동분서주하는 사람이었다. 그 먼 곳에서 오시다니 열의가 대단하다고 하자, 한 기자는 말했다.

 

"물론 무리긴 했지만 언제고 오마이스쿨에 정말 오고 싶었어요. 마음먹은 김에 실행에 옮겼을 뿐입니다."

 

애초 강화도를 가기 전 집결지인 <오마이뉴스> 상암동 본사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순박한 시골아저씨 같은 차림으로 가방 하나를 어깨에 걸머진 사람이 그 안에 홀로 있었다. 가만 보니 가방 지퍼가 열려있어 알려줬더니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부러 열어놓은 겁니다."

 

가방 안엔 놀랍게도 벌들이 꼬물거리는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가 들어있었다. 벌침을 놓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그도 역시 강화도에 오기 위해 울산에서 올라온 시민기자라며 명함을 건넸다. 그런데 그 명함에는 열린 가방 안에 생뚱맞게 꼬물거리던 벌보다도 더 괴상한 글이 적혀있었다.

 

참 나를 찾아서...

떠돌이 수행자

길문 변 창 기

 

당장 질문거리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수행을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무슨 수행을 하시는데요?"

"거기 써있잖아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길 위에서 여행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매일 떠돌아다니는 건 아니고. 의미가 그렇다는 거죠. 삶의 의미를 그렇게 두고…."

 

그는 잉걸 기사 하나를 만들기 위해 생나무 기사 백 개를 쓴다고 말했다. 물론 겸손의 말이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의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마침 오십견이 온 것 같다며 어깨를 자꾸 만져대던 기자가 그의 벌침을 맞았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금방 가셔졌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침 맞는 것보다 더 효과가 좋은 건가요?"

"그거야 모르지만, 어쨌든 벌침엔 페니실린 수십 배에 달하는 효과 좋은 약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부작용도 없지요. 하지만 한 번만 맞아서는 안 되고 몇 번을 맞아야 할 겁니다."

 

그 역시 무언가 자기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나누어주고자 애쓰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는 정말이지 그런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떤 기자는 젊어서부터 노동운동을 했는데 나이 든 지금까지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어딘가 자기가 필요한 곳을 찾는다고 했다.

 

사람 좋은 선한 눈빛과 자상한 말투의 김형순 기자는 차라리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워낙 재산이 넉넉한 아버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재물 많은 것에서 오는 불편함을 잘 압니다. 불문학을 전공해서 고등학교 불어교사를 했지만, 오래 전에 그것도 때려치우고 오직 그림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제게 모두 그림으로만 보일 정도지요. 어쨌거나 제 꿈은 어떻게든 부자로 안 사는 겁니다."

 

현실에서 듣기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들을 수도 없었다. 잔잔한 그의 말투와 눈빛에 형언할 수 없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음이 보였다. 매무새와 하얀 안색도 그의 말투처럼 단정하고 단아했다. 2박 3일을 통해 지켜보면서 정말 세상이 그만의 독특한 채색으로 칠해진 그림으로 보인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결코 적지 않은 기사들은 모조리 그림에 얽힌 기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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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창우씨의 공연모습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 영원한 자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백창우씨답다. ⓒ 우광환

▲ 가수 백창우씨의 공연모습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 영원한 자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백창우씨답다. ⓒ 우광환

 

개인적으로 평소 김갑수 기자를 뵙게 될 날을 기다렸는데 그도 강화도에 왔다. 언제 봐도 기사에 힘이 넘쳐서 그랬는지 나는 은연 중에 그가 젊은 사람일 거라 단정했다. 그러나 오마이스쿨에 나타난 그도 50대 중반의 연륜 넘치는 학자풍의 외모를 한 남자였다. 기사를 그토록 많이, 그리고 곧은 결로 쓸 수 있는 비결을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안티를 많이 몰고 다니면 글 쓰기에 아주 좋습니다. 다행히 내겐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도움이 됩니다.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고 내 글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글에 기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나는 한 가지를 또 깨달았다. 역시 내 글을 미화하고 치장하려는 못 된 버릇을 버려야겠다는. 자신 없어 하는 마음속에 그런 못된 버릇이 스며 들어오고, 그것은 결국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끝내 외면당하고 만다는 것을. 명나라의 반골 학자이자 저술가인 이탁오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할 수많은 괴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다.

 

그의 입에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리고 마음속의 불평(不平)함을 호소하여 사나운 운수를 만난 사람을 만년동안 감동시킨다.'

 

강렬하게 타던 오마이스쿨 마당의 모닥불

 

선인(善人)이란 광사(狂士)의 미칭(美稱)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 날 강화 오마이스쿨에 모인 대부분의 시민기자들은 저마다 자기 색깔로 광사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정말이지 처음부터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었는지 모른다.

 

어차피 뉴스게릴라들이란 각기 세상의 감춰진 보석뿐만 아니라 온갖 문제까지 파헤쳐 드러내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음이 사실이다. 거기에 온전한 선(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추(錘)로 삼는다면 더 바랄 것이 무어 있으랴.

 

이제 생각해 보니 마지막 밤을 태웠던 모닥불과 각자 들었던 촛불의 힘이 강렬했던 것 같다. 그토록 색색이 다른 사람들끼리 한 가지 염원의 빛을 밝혔으니 힘이 없을 수 없을 터. 그 염원은 바로 세상을 밝히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겠다는 시민기자 정신의 소박한 꿈에서 비롯한 것이다.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했던 지난 2박 3일의 순간들은 내 자신마저 기꺼웠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그 순간 위험을 무릅쓰고 광화문에서, 종로 거리에서, 물을 뒤집어쓰며 함성을 질러대던 시민들에게 미안했던 마음만 뺀다면 다시없는 추억으로 손색없을 경험이었다.

2008.06.30 09:18 ⓒ 2008 OhmyNews
#2008시민기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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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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