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인터뷰] <경성상계>의 저자 박상하, 우리나라의 '경영 역사'를 말하다

등록 2008.06.30 19:06수정 2008.07.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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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계사에서는 1945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8·15 이전을 선사시대로, 그 이후를 역사시대로 구분한다. 다시 말해 1945년 8·15 해방 이전의 재계사는 '문자가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이전의 시대는 우리 재계사에 편입될 수 없다는 얘기와 같다. 솔직히 나는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인정머리 없는 경영학자가 그처럼 작대기 긋듯이 구분 짓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러한 주장에 결코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 <경성상계> 저자의 말 중에서

 <경성상계>겉그림과 저자
<경성상계>겉그림과 저자생각의 나무
<경성상계>(생각의 나무)를 읽어나갈수록 "8·15 이전을 선사시대로 구분하는 것에 동조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일본의 침략 즉, 1895년에 명성황후 시해를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유일한 상권인 육의전이 붕괴되는 시점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무렵까지, 근대화란 명목을 앞세워 조선의 자본과 자원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인 일본과 일본의 상인들에 맞서 민족의 자본을 지켜냈던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어느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 경제의 첫걸음이 된 업계(자동차, 고무신, 백화점, 음식점, 택시, 금융 등)들의 자료가 풍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수많은 의문이 생겼다.

'방응모, 최창학의 차가 지금 돈 9억6천만원(당시 8000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돈이 많았나? 백남준(비디오 아티스트)의 조부 백윤수가 조선시대 육의전 마지막 운영자라고? '쇠당나귀'로 불린 자동차를 사이에 둔 민규식과 방의석의 싸움? 강철은 부서질언정 별표 고무(신)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이런 자료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 아냐? 어떻게 이런 자료들이 가능할까? 창업 자금 360억? 100년 전 그 당시 우리 경제의 규모가 그렇게 컸나?'

1945년 이전, 그 당시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신식 물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것처럼, (책을 통해 만나는) 당시의 이야기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 읽으며 들었던 의문을 풀고자 6월 16일 저자 박상하씨를 만났다.

1945년 8월 15일 전후 우리 경영사, 그 가치는?


- <경성상계>를 읽는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우리 경제의 한 모퉁이에 내팽개쳐져 웅크리고 있던 자료들이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자료들이 탐난다.
"자료를 모으는데 꼬박 10년, 집필은 2년가량 걸렸다. 국립도서관, 통일 교육원, 전경련 등, 일산, 성남, 의정부 등 서울근교와 경기도 헌책방 등, 자료가 있을만한 곳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렇다. 이 자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책속에는 금융, 백화점, 음식점, 자동차 등 그 초기의 역사를 말해주는 자료들이 많다. 누군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금융사, 백화점사 등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경성상계>의 의미는?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들만의 경영사가 있는데 우리는 없다. 있다면 각 기업의 창업사 정도? 현재의 현대 경영사들도 서양의 관점과 시각을 기준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수난기, 치열할 수밖에 없는 그 시기에 상인(기업인)들은 살아남기에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재계사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을 선사시대로 구분,  이렇다 할 자료 발굴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만의 경영사가 없다. 우리나라 경영사 5권을 계획하고 있다. <경성상계>는 그 첫 권이다."


- 국문학 전공자가 경제 관련 책을 쓴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가? 우리나라 문학인 중 '경영사에 가장 해박하다'는 소문도 있던데?
"
1999년 9월까지 한국표준협회(우리나라 기업체 전문 컨설팅 기관)에서 전문기자로 20년간 근무했다. 최고 경영자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든지, 산업체 방문 등 우리의 경제 이야기 전반에 관한 기사를 한 달에 4~5건씩 썼다.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산업체 관련 글을 쓰기위해 경영학을 20년간 공부 했다."

-<경성상계>를 읽으며 내 스스로 어휘가 참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선생님 글 중에 '사분사분 재빠르게 채워나가며' 등과 같은 표현이나 요즘에는 흔히 쓰지 않는 단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 책상에는 항상 국어사전, 고어사전, 방언사전을 비롯한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 등 너덧 권 이상의 사전들이 있다. 17~19세기의 역사소설을 쓸 때는 그 시대에 맞는 어휘를 쓰려고 고어사전을,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특정지역이 배경일 때는 그 지방의 사투리를 살려야 하니 방언사전을 공부하고 참고하기 때문이다. 우리 옛말 중에 예쁘고 맛깔스러운 말이 참 많다. 글 쓰는 사람들만이라도 이런 말들을 발굴하여 의도적으로 자꾸 써준다면 그만큼 많이 알려질 것이요 자주 쓰일 것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일제강점기 고운 자태의 기생
일제강점기 고운 자태의 기생생각의 나무
- 책속에는 드라마틱한 주인공들이 많다. 드라마는 훨씬 다양한 계층의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드라마로 재조명하고 싶은 주인공은?
"삼양사(삼양라면의 삼양이 아닌 삼양사의)의 김연수(인촌 김성수의 동생)이다. 김성수·김연수 형제는 친일 논란도 있다.  '과거론적'으로만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경영사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경영사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 조선사에서 세종대왕을 뺄 수 없고, 우리의 전쟁사에서 이순신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경영사에서 김성수·김연수 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할 것 같다.

그때는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던 일제강점기였다. 그럼에도 형제는 '조선 사람만 채용한다'는 간판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조선 민족의 기업임을 알리는 것으로 일본에 맞섰다."

- 반민 1호 박흥식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친일 논쟁, 그 오해를 풀고 싶어 했다. 책속에는 박흥식과 직접 관계되는 이야기가 4꼭지 정도 된다. '자료 속 박흥식'은 어떤 사람인가?
"박흥식은 한국 경영사의 블루오션이다. 배포가 컸고 대담했다. 아이디어가 특출한 달변가였다. 관상으로만 봐도, 그야말로 '남자도 남자를 좋아할 수 있겠구나'의 생각이 들만큼 귀족적이며 호감 있게 생긴 사람이다. 화재로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화신백화점. 그는 경제논리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이용하여 일본의 자존심을 긁어 종로경찰서 구관을 내놓으라고 했다. 국가 소유, 각종 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공관을 말이다. 그 당시 그는 일본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 박흥식도 김연수 못지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김연수를 더 많이 알리고 싶은 이유는?
"김성수·김연수형제는 삼남지방의 많은 땅을 가진 부호였는데, '헐벗고 굶주린 조선인(민족)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그리하여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것, 그 다음으로는 헐벗음을 면할 수 있는 것 등, 즉 자신들의 영리가 우선이 아닌 조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위주로 기업을 경영했다. 아울러 박흥식은 벌어들인 돈을 자신과 자신의 주변만을 위해 썼다. 하지만 김연수는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할 줄도 알았다. 무엇을 팔아 그 돈을 어떻게 썼는가? 둘은 확연하게 구분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상인들뿐이겠는가.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파는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역사인식 뚜렷하고 정체성이 확고한 작품을 쓸 것이다

 도열해 있는 자동차 및 혼마치의 야경(1930년대)과 저자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여러 작품들을 쓰게 한 명성황후 다큐 소설 <명성황후 최후의 8시간>겉그림
도열해 있는 자동차 및 혼마치의 야경(1930년대)과 저자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여러 작품들을 쓰게 한 명성황후 다큐 소설 <명성황후 최후의 8시간>겉그림생각의 나무

- <배오개 상인> <명성황후, 최후의 8시간> <우리문화 답사여행> <한국인의 기질> 등 우리 역사와 문화, 경영사 등의 저작이 많은 걸로 안다.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소설로는 <명성황후, 최후의 8시간>이고, 인문교양서로는 이 <경성상계>이다. 명성황후는 내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의 책이다. <경성상계> 일제강점기에 외세에 맞서 민족 자본을 지켜 낸 사람들을 조명함으로써 재계사에서 선사시대로 둔 그 시대를 세상에 끄집어냈다는 의미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명성황후와 같은 역사적인 소재와, 경성상계와 같은 인문교양적인 소재, 어디에 더 끌리는가?
"둘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라 비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체성이 확고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2008년 6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싸운다. 하지만 한편의 사람들은 한심스럽게도 '빨갱이' 운운하며 욕한다. 그들이 배우지 못해서 그런가? 잘못된 역사인식과 정체성 부족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정체성은 30~40위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확고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다음 계획은?
"<이기는 리더, 지지 않는 리더>(무한출판사)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정주영과 이병철을 마주보게 한 다음 그들의 경영 철학, 인간적인 면면을 대비, 비교한 책이다. 그들의 처음부터 최후까지를 다루었다. 그리고 <경성상계> 집필 계기가 된 <배오개 상인>을 완성할 계획이다. 애초에는 7권을 계획했었는데 <경성상계> 머리글에 밝힌 이유로 3권으로 미완성 상태였다."

 1920년 전후 가장 인기품목이었던 고무신의 광고문구
1920년 전후 가장 인기품목이었던 고무신의 광고문구생각의 나무

<경성상계>의 배경은 구한말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즉 일제강점기이다. 저자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당시 신문들이 보도한 원문을 그대로 실려 당시의 사회모습과 당시 사람들의 생각, 선호하는 것 등을 넉넉하게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혼마치 거리의 야경, 근대적 거리로 꼽혔던 남대문통의 번화가, 1920~1930년대 경성 상권을 휘어잡은 일본의 백화점 모습 등을 담은 흑백사진들도 눈에 띈다.

덧붙이는 글 | <경성상계> / 박상하 지음 / 생각의 나무 / 2008년 5월 16일 펴냄 / 1만2500원


덧붙이는 글 <경성상계> / 박상하 지음 / 생각의 나무 / 2008년 5월 16일 펴냄 / 1만2500원

경성상계 - 근대 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박상하 지음,
생각의나무, 2008


#인문교양 #경성상계 #일제강점기 #박상하 #경영사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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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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