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상계>겉그림과 저자
생각의 나무
<경성상계>(생각의 나무)를 읽어나갈수록 "8·15 이전을 선사시대로 구분하는 것에 동조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일본의 침략 즉, 1895년에 명성황후 시해를 시작으로 조선시대의 유일한 상권인 육의전이 붕괴되는 시점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무렵까지, 근대화란 명목을 앞세워 조선의 자본과 자원을 흡혈귀처럼 빨아들인 일본과 일본의 상인들에 맞서 민족의 자본을 지켜냈던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어느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 경제의 첫걸음이 된 업계(자동차, 고무신, 백화점, 음식점, 택시, 금융 등)들의 자료가 풍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수많은 의문이 생겼다.
'방응모, 최창학의 차가 지금 돈 9억6천만원(당시 8000원)?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돈이 많았나? 백남준(비디오 아티스트)의 조부 백윤수가 조선시대 육의전 마지막 운영자라고? '쇠당나귀'로 불린 자동차를 사이에 둔 민규식과 방의석의 싸움? 강철은 부서질언정 별표 고무(신)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이런 자료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 아냐? 어떻게 이런 자료들이 가능할까? 창업 자금 360억? 100년 전 그 당시 우리 경제의 규모가 그렇게 컸나?'
1945년 이전, 그 당시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신식 물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것처럼, (책을 통해 만나는) 당시의 이야기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 읽으며 들었던 의문을 풀고자 6월 16일 저자 박상하씨를 만났다.
1945년 8월 15일 전후 우리 경영사, 그 가치는? - <경성상계>를 읽는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우리 경제의 한 모퉁이에 내팽개쳐져 웅크리고 있던 자료들이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자료들이 탐난다. "자료를 모으는데 꼬박 10년, 집필은 2년가량 걸렸다. 국립도서관, 통일 교육원, 전경련 등, 일산, 성남, 의정부 등 서울근교와 경기도 헌책방 등, 자료가 있을만한 곳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렇다. 이 자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책속에는 금융, 백화점, 음식점, 자동차 등 그 초기의 역사를 말해주는 자료들이 많다. 누군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금융사, 백화점사 등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경성상계>의 의미는?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들만의 경영사가 있는데 우리는 없다. 있다면 각 기업의 창업사 정도? 현재의 현대 경영사들도 서양의 관점과 시각을 기준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수난기, 치열할 수밖에 없는 그 시기에 상인(기업인)들은 살아남기에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재계사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을 선사시대로 구분, 이렇다 할 자료 발굴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만의 경영사가 없다. 우리나라 경영사 5권을 계획하고 있다. <경성상계>는 그 첫 권이다."
- 국문학 전공자가 경제 관련 책을 쓴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가? 우리나라 문학인 중 '경영사에 가장 해박하다'는 소문도 있던데?
"1999년 9월까지 한국표준협회(우리나라 기업체 전문 컨설팅 기관)에서 전문기자로 20년간 근무했다. 최고 경영자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든지, 산업체 방문 등 우리의 경제 이야기 전반에 관한 기사를 한 달에 4~5건씩 썼다.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산업체 관련 글을 쓰기위해 경영학을 20년간 공부 했다."
-<경성상계>를 읽으며 내 스스로 어휘가 참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선생님 글 중에 '사분사분 재빠르게 채워나가며' 등과 같은 표현이나 요즘에는 흔히 쓰지 않는 단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 책상에는 항상 국어사전, 고어사전, 방언사전을 비롯한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 등 너덧 권 이상의 사전들이 있다. 17~19세기의 역사소설을 쓸 때는 그 시대에 맞는 어휘를 쓰려고 고어사전을,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특정지역이 배경일 때는 그 지방의 사투리를 살려야 하니 방언사전을 공부하고 참고하기 때문이다. 우리 옛말 중에 예쁘고 맛깔스러운 말이 참 많다. 글 쓰는 사람들만이라도 이런 말들을 발굴하여 의도적으로 자꾸 써준다면 그만큼 많이 알려질 것이요 자주 쓰일 것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그 무언가를 팔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