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와 노닥거리며 자연을 생각하다

이제는 그들의 터전도 생각해주세요

등록 2008.06.30 17:39수정 2008.07.0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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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 잣 따먹다... 청설모 한 마리가 잣 먹는데 정신팔려 있습니다. ⓒ 문일식


'사각사각사각 부스럭부스럭~~~'


어디선가 가녀리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열심히 잣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다람쥐와 함께 흔히 볼 수 있는 녀석. 다람쥐는 귀여운 구석이 있지만, 이 녀석은 색깔도 쥐색인데다 농작물에 피해도 끼치고, 다람쥐들에게 까지도 해를 끼치는 녀석인지라 그리 애착이 가지않는 녀석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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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뜨린 잣방울과 나를 번갈아보며 고민중인 청설모 떨어뜨린 것인지 버린것인지... 갑자기 나무 위에서 잣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집니다. ⓒ 문일식


'데굴데굴….'

녀석이 먹던 잣방울이 나무아래로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제 옆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다 먹은 것 같기도 하고, 발로 잡고 먹다가 떨어뜨린 것 같기도 하고. 잣 열매가 남아 있는 걸로 봐서 먹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모양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녀석은 그렇게 소중히도 여겼던 먹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나 봅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잣방울과 저를 번갈아가며 계속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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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성좋은 청설모의 모습 잣방울을 떨어뜨린 청설모의 입주변에 먹던 흔적이 역력합니다. ⓒ 문일식


녀석, 참 식성도 좋습니다. 입 주위에 먹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녀석의 입주변을 휴지로 닦아주고만 싶습니다. 나름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걸 따먹을까? 저 녀석 가고나면 땅에 내려와 다시 주워 먹을까?"


그 뒤로도 녀석과 한참을 실랑이를 했습니다. 녀석은 계속 잣방울에 눈독을 들이고, 나는 녀석의 모습에 눈독을 들였으니…. 서로 한참을  대치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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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와 대치 중... 떨어뜨린 잣방울이 아쉬운 듯 떠나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는 청설모 ⓒ 문일식


자세히 보니 녀석의 얼굴에 귀여운 구석이 조금 보입니다. 색깔만 아니면 영낙없는 다람쥐입니다. 지난번 천안에 갔 을때도 호두농사를 망쳐놓은 천덕꾸러기였고, 얼마 전 가평에 갔을 때도 녀석은 천덕꾸러기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다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과 청설모는 극한의 대치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청설모 한 마리 잡아오면 5천원을 줬었다고 하니. 농작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만 두고 못볼 녀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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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발견한 듯한 청설모. 잣방울을 주우려는 청설모와 찍으려는 나... 긴박한 대치중 마치 무엇을 발견한 듯 쳐다보는 청설모 ⓒ 문일식


나무 위의 청설모 그리고, 나무 아래서 녀석에게 촛점을 맞추고 꿈쩍도 안하는 나. 한참을 녀석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내 다른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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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뛰어가는 청설모 다른 먹이감을 찾았는지 청설모가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 문일식



달음질을 시작합니다. 어찌나 빠른지, 그래도 다행히 용케 잡아냈습니다. 나무 위를 사뿐히 뛰어 저편의 나무로 건너가 버립니다. 그래, 넌 여기 있으니 행복한 거다. 다른 곳에서 호두 따먹고, 잣 따먹는 네 친구들은 이유없는 총성에 쓰러지고, 터전을 잃어간단다.

돌이켜보면 녀석들이 호두를 따먹고, 잣을 따먹으면서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순전히 사람 탓 입니다. 녀석들의 식량을 사람들이 앗아가기 때문이죠. 산행하는 사람들, 여행하는 사람들은 밤, 잣, 도토리를 보면 그만 두지 않습니다.

녀석들이 먹고 살아야 할 식량을 아무렇지 않게 빼았습니다. 사람들이 밤, 잣, 도토리를 다 주워가는 바람에 녀석들은 한겨울 먹이를 걱정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다람쥐 식량이니 주워가지 말라는 현수막까지 붙여놨겠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자연만 즐기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죽고 나서 다람쥐나 청설모로 태어나봐야 후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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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산 자연휴양림의 다람쥐가 심은 나무 다람쥐가 잣을 묻어둔 곳을 까먹자 그곳에서 싹이 터 자란 잣나무들입니다. ⓒ 문일식


몇 해 전 강원도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갔을 때 보았던 유쾌한 장면입니다. 다람쥐의 습성상 먹거리를 묻어두는 습성이 있는데 아마도 묻어둔 다람쥐가 까먹은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 싹이 돋아 잣나무 15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까먹어서 자랐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람쥐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준 것이지요. 자연은 자연 그대로 돌아갈 때 비로소 그 순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앞으로 자연만 즐기실 것을 약속해주십시오. 절대 밤이나 잣이나 도토리를 줍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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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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