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둘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아들과 우산 속 데이트를 했습니다

등록 2008.07.03 16:37수정 2008.07.0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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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향해 날다 꿀을 따는 벌
꽃을 향해 날다 꿀을 따는 벌김현
꽃을 향해 날다 꿀을 따는 벌 ⓒ 김현

6월 28일. 아침 6시 40분부터 아들 녀석이 일어나라고 치근댑니다. 어젯밤 밖에 나가 자전거 타러 가자고 한 걸 아침에 타자고 미루었습니다. 그걸 잊지 않고 깨우는 것입니다.

 

누운 채 밖에 비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투덜대던 녀석이 밖에 나갔다 오더니 오리입이 되어 들어옵니다. 비가 온다며 아빠 때문에 자전거 못 타게 되었다고 입을 쭉 빼어 뭅니다.

 

그런 녀석이 귀여워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껴안고 5분 정도 누워있다 "야! 아들, 우리 우산 받고 걸을까?"했더니 벌떡 일어납니다.

 

쉬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는 텅 비어 있습니다. 아들 녀석과 1시간 넘게 우산을 받고 길거리를 걸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쉬기도 하고, 집 앞 호수 정자에 앉아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기도 했습니다.

 

 막 피어나려는 연꽃 위에 살포시 앉은 너의 모습이 평화롭다
막 피어나려는 연꽃 위에 살포시 앉은 너의 모습이 평화롭다김현
막 피어나려는 연꽃 위에 살포시 앉은 너의 모습이 평화롭다 ⓒ 김현

나무다리에 서서 홍련과 백련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나란히 바라봅니다. 초록의 연잎 위에 옥구슬 같은 물방울이 바람에 하늘하늘 유연하게 춤을 춥니다. 물방울의 춤사위를 보며 사진기가 없음을 아쉬워합니다.

 

사실 나들이할 때 카메라를 챙겨들면 아들 녀석은 아빠가 사진만 찍을 거라며 좋아하지 않습니다. 함께 놀아주기보단 내 관심사에게 렌즈를 들이대고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입니다.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토닥토닥. 토르르르.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내 이십 대 끄트머리에 들었던 빗소리가 생각납니다.

 

인사동 골목을 걷다 한 한옥 집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경인미술관으로 기억됩니다. 한옥 집 한 편은 미술관으로, 한 편은 전통 찻집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과일화채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성의 강한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가운데 있는 작은 화단 꽃잎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처마 밑으로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가야금 소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들려왔습니다.

 

 꽃등에의 꿀 따기. 집 주변 호수가를 돌다 보면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꽃등에의 꿀 따기. 집 주변 호수가를 돌다 보면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김현
꽃등에의 꿀 따기. 집 주변 호수가를 돌다 보면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김현

빗소리와 가야금 소리.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를 들은 사람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난 어린 아들 녀석과 빗소릴 들으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니 배시시 미소가 번집니다.

 

둘이 나란히 앉아 물위로, 연잎 위로 토닥이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 녀석이 뭔가 손으로 잡더니 가지고 놀기 시작합니다.

 

"야, 아들! 그거 뭐야?"

"응, 이건 쥐며느리고 이건 콩벌레야."

"징그럽게 그걸 왜 갖고 놀아. 냄새나는데."

"아빤, 냄새나는 건 노린재야. 쥐며느린 냄새 안 나. 그리고 물지도 않고."

"야, 그래도 아빤 발이 많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제 우리 그만 가자."

 

어린 아들 녀석의 지식에 아빠란 사람은 얼버무림으로 상황을 벗어나려 일어섭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아들은 "피~"하며 아쉬운 듯 쥐며느리와 콩벌레를 손 끝에 놓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우산을 나란히 받쳐 들고 호수(방죽)를 돕니다. 아들 녀석이 다가와 팔짱을 낍니다. 보드랍고 다사로운 촉감이 전해짐을 느끼며 뭐 골려줄게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습니다. 호젓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누굴 기다리나 이 녀석은?
누굴 기다리나 이 녀석은?김현
누굴 기다리나 이 녀석은? ⓒ 김현

사실 녀석과 함께 있음 뭔가 장난을 치며 놀고 싶은 충동에 종종 빠집니다. 우리 부자는 집에서 레슬링을 하거나 권투를 하며 노는 걸 좋아합니다. 침대 위에서 한바탕 땀 쭈욱 빼도록 놀다보면 기분이 이만저만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쌓인 스트레스도 왕창 날아가 버립니다. 물론 부자간의 살가움도 더 돈독해지고요.

 

집에 들어올 때쯤 굵었던 빗방울은 가랑비가 되어 내립니다. 두 개의 우산은 이제 하나로 바뀌었습니다. 통통한 아들 녀석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물었습니다.

 

"야, 아들! 나오니까 어때?"

"좋아요. 엄청."

"내일 또 나올까?"

"응. 근데 내일은 걷지 말고 자전거 타."

"알았어. 비 안 오면 그렇게 하자."

"오우케이! 내일 자전거 타는 거다. 자 약속~."

 

그러면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을 찍습니다. 활짝 웃으면서. 물론 내 입술에도 웃음이 번집니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우리는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가사는 조금 바꿨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둘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아빠 우산 아들 우산 정다운 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두 개가~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2008.07.03 16:37ⓒ 2008 OhmyNews
#아들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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