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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누리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주제로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 전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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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누리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주제로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 전관석
플래시몹 취재는 참 스릴있다. 그동안의 투쟁방식과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거니와 장소 시간 참여자 등 취재에 앞서 예측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래시몹은 역동적이다. 취재하는 맛이 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짧게나마 체험하는 기분은 짜릿하다.
5일 오후 3시, 서울시 강남 센트럴시티 분수대 앞에서 플래시몹이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소울드레서, 쌍코, 장발 등 인터넷 카페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딱 3분간이다. 이 플래시몹에 참가한 네티즌들은 이 3분 동안 '얼음'상태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세상을 향해 각자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이다.
'혹시 이 사람들?' 참가자를 알 수 없는 플래시몹
오후 2시 30분 현장에 도착했다. 1, 2층을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각 출입구를 어슬렁 거리면서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좌우, 위아래 눈알 굴리기 시작이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플래시몹 참가자들의 특성상 다른 취재현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주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플래시몹 장소로, 아니 플래시몹 취재 장소로 하기에 너무 사람이 많은 곳이다. 눈알 굴러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아무래도 참가자임이 확실한 사람들 주위에 포진하고 있어야 현장을 가늠할 수 있고 사진도 찍고 취재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티내는 사람들이 안 보인다. 가끔씩 카메라를 멘 '시민기자단'만 눈에 띌 뿐이다. 그들도 초조하게 네티즌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후 2시 40분, 분수대 주위에는 3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는 엄마, 안개꽃을 정리하고 있는 20대 두 여성, 남자친구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여성, 수다를 떨고 있는 여고생 2명 등 모든 사람이 '수상해' 보인다.
하지만 물을 순 없다. 플래시몹은 대놓고 벌이는 행위가 아닌 인터넷에서 조용조용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플래시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초연을 앞둔 연기자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오늘 플래시몹에 참여하실 예정이시죠?"라고 묻는다면 산통을 다 깨는 것이다.
분수대 광장 주위 패션 리어카에서 선글라스와 머플러, 패션 액세서리를 고르고 있는 20대 여성 3~4명도 긴가민가하다. 어슬렁거린 지 15분이 지난 오후 2시 45분께 '핵심'들로 보이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2~3명씩 나타나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한다. 다행이다. 저 사람들을 계속 주시하면 적어도 현장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자 슬슬 '본색'을 드러낸 사람들이 분수대 주위로 모여든다.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 30여 명이 신호만 기다리고 있다. 분수대 근처에 앉아 있던 20대 여성 두 명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안개꽃을 정리하던 여성들, 아이엄마, 연인 등은 플래시몹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지만 두 명의 여고생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들고 옆에 서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소품'을 하나씩 들고 있다. '저 안에 뭐가 있을까?' 호기심이 극대화된다. 플래시몹 취재의 또 다른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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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누리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주제로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 전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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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누리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주제로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 전관석
3분간 그들의 세상은 멈췄다
3시 20분, 드디어 검은 정장을 입은 20대 여성이 분수대 앞으로 걸어나와 씩씩하게 종이를 펼쳤다. 약속대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 신호에 맞춰 주위에 있던 네티즌들이 몇 초간 빠르게 움직인 뒤 이내 '얼음' 상태로 들어간다. 20여 명의 참여자가 미사보를 쓰고 종이를 펼친 여성 앞에 합장을 한 채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그 뒤에서 저마다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조선일보>, '조중동'이라고 쓰인 종이를 반쯤 찢은 상태로 정지한 사람도 있고, <조선일보>를 돌돌 말아 몽둥이로 만들어 <한겨레>를 읽고 있는 네티즌을 때리는 동작에서 멈춘 사람도 있다. 주위 이곳저곳에 각각의 주장을 담은 손팻말을 든 네티즌들도 꼼짝 없이 서있다.
탄탄한 구성이었다. 어디서들 기다리고 있었는지 어느새 50명이 넘는 숫자가 플래시몹에 참여하고 있었다.
정확히 3분. 3분이 지나 또 다른 사람이 신호를 보내자 이들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무심하게, 시니컬하게 곳곳으로 사라진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빠른 속도다. 마지막 셔터를 누르고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니 아무도 없다.
플래시몹을 했던 자리만 비어있고, 세상은 다시 3분 전과 똑같이 돌아간다. 보통 현장에서는 기자들이 먼저 자리를 뜨곤 하는데, 그 자리에 딱 기자들만 남았다.
플래시몹 취재는 어렵다. 네티즌들의 철저한 준비와 기민함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스릴 있다. 3분간, 정지 상태로 세상을 꾸짖는 행위극인 플래시몹, 오늘 새삼 느낀 건데 이젠 고도의 작품성까지 탑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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