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사랑하는 사람, 열정을 사랑하다

[서평] 빵과 파리 이야기 <빵빵빵, 파리>를 읽고

등록 2008.07.05 20:41수정 2008.07.0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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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빵빵빵, 파리

빵빵빵, 파리 ⓒ 달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집엔 항상 식빵이 있었다. 엄마·아빠는 매일 일을 하러 가셔야 했고,  때문에 그 식빵은 우리의 즐거움이자 간식거리였다.

물론 일하고 돌아오신 아빠도 저녁을 먹기 전 약간 허기가 지실 때면 "식빵 좀 가져와 봐라"하고 소리치시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집에 있던 커다란 꿀단지와 숟가락을 챙겨 들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식빵 봉지를 꺼내 아빠에게 갔다. 그리곤 또 그렇게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꿀을 듬뿍 바른 식빵을 우적우적 먹곤 했다.


식빵에 그 비싼 꿀을 발라먹는 그 맛이란. 나는 지금도 내가 그때 비만 청소년이 되었던 이유에는 그 꿀 바른 식빵이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대학교 때는 친구들과 학생 회관 휴게실에 앉아서 모카빵과 밤식빵을 먹곤 했다. 휴게실에 있던 커피 자판기에서 50원이었던가 100원이었던가, 여하튼 아주 쌌던 커피를 하나씩 뽑았다. 친구들은 밀크커피를 나는 블랙커피(사실 맛도 없었던)를. 그리곤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운 모카빵을 커피에 찍어 먹곤 했었다.

달달한 모카빵이 커피에 젖어 입 안에서 녹아들 때의 그 맛이란. 밤식빵을 찢어서 커피에 찍어 먹을 때,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밤알을 씹을 때 그 달콤함은 또 어떻고.

동생이 도서관에서 <빵빵빵, 파리>라는 책을 빌려왔다. 제목만 봐도 군침이 돌고, ''빵빵빵, 도쿄', '빵빵빵, 로마', '빵빵빵,뉴욕' 빵빵빵 연작 시리즈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 혹시 나오지 않는다면 나라도 한 번 내고 싶은 생각이 만들게 하는 책이다. 

프랑스에는 바게트 만들기 대회가 있다고 한다. 제빵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10년 후에는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든 바게트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깨닫고 1994년부터 수제빵을 장려하기 위해 대회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1년 동안 대통령이 있는 엘리제 궁에 바게뜨를 공급하게 되며, 동시에 명예도 함께 움켜쥘 수 있다고 한다.  


가끔 베개로 이용되기도 했고, 때론 무기가 되기도 했으면, 군수 식량이기도 했다. 프랑스가 러시아 정복에  실패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의 가격은 각 도시의 물가지수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노동시간이 단축되면서 인건비 상승과 함께 이것의 가격 역시 인상되었다. 밀가루, 물, 소금, 천연 이스트 등 네 가지 재료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다. 이것은 길이 50cm~60cm, 폭 5~6cm, 높이 3~4cm, 무게 300~320g이 표준이다. 겉은 다갈색이며 딱딱하고, 안은 하얗고 부드러우며 큰 공기구멍이 많아야 한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51쪽)

a  달콤한 빵, 열정이 담겨 있는 빵

달콤한 빵, 열정이 담겨 있는 빵 ⓒ 이지아


'이 책을 읽으면서  빵은 하나의 예술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밀가루와 물, 소금, 이스트로만 만들어지는 빵은 정말 자연이 주는 놀라움이다. 밀가루에 물을 붓고 이스트를 넣고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신비로운지.


점점 빵이 좋아지고 있다. 빵이라는 예술이, 빵이라는 열정이, 내 마음속에 그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빵뿐만 아니라 정성과 노력과 수고로움과 먹는 이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담겨있는 그 모든 음식들이 좋아지고 있다. 빵도 좋고, 떡도 좋고, 한식도 좋고, 일식도 좋고, 세상의 모든 음식이 좋아지고 있다.

생계에 어려움은 없냐고 묻자, 대답 대신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고 했다. 그럼 생계를 유지할 만한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연극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 시간과 노력도 모두 연극에 쏟아 붓고 싶다고 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연극을 하는 남자.(159쪽)

명품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든다고 해서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스스로 나는 최고다,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해요. 그게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핵심이에요. 저는 매일 까페에서 준비하는 모든 샐러드, 빵, 케이크, 음료 들을 최상의 상태일 때 선을 보여요. 찻잔, 그릇, 쟁반 등 부수적인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맛있는 요리도 예쁜 그릇에 담아 친절하게 서비스 할 때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거예요. 늘 신중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세요. 그리고 자기 안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으세요. 저처럼요. 사랑도 일도 모두 이뤘잖아요.(125쪽)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일어나 밀가루를 반죽하고 모양을 내고, 구어내고, 그리고 가게 문을 열고, 그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이 힘들어 젊은이들도 1,2년이면 거의 포기해 버리고 만다는 빵을 굽고 과자를 구어 내는 일, 그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서도 좋아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사람, 모든 시간과 노력을 연극에 쏟아 붓고 싶다는 그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가장 최상의 상태일 때 요리를 내보이고자 하는 그 노력, 자기 안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으려는 그 열정은 어디서 오는가.

나에게도 그런 열정이 있는가. 정말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그런 열정이 나에겐 있는가. 

빵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요리에 대한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빵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나 결국 그 모두는 열정에서 시작되어 열정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달, 2007


#빵빵빵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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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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