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나누는 기쁨을 가르쳐 주세요

등록 2008.07.12 12:04수정 2008.07.1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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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제가 한 일 가운데 후회 없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아이 둘을 낳은 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대로 알고 보면 먹을만한 것도 별로 없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서 사는 것이 어쩌면 고통일 수밖에 없는 시대에 더 나쁜 환경을 만들 게 뻔한(태어난 지 열흘된 아이조차 일회용 기저귀를 매일 배출합니다) '인간'을 둘이나 낳았다는 게 대단한 자랑거리는 아니지요. 하지만 엄마 젖을 물고 배냇짓을 하는 갓난아기를 끌어안고 있는 순간, 세상은 희망과 행복이란 단어들로 도배되는 착각이 일곤 합니다.

 

제 의지로 걷고 앉기를 선택할 줄 아는 첫아이나 젖을 빠는 것도 힘에 겨워 간신히 십여 분 빠는 둘째아이를 보면서 어떤 사람으로 자라면 좋을까? 하루에도 즐거운 상상을 여러 번 합니다. 상상의 끝은 늘 같은 대답으로 귀결됩니다. 즐김과 나눔. 자신들이 즐겁게 일하고 살면서 남과 나눌 줄 아는 '행복한 인생'이 되길 바라는 것이지요.

 

여기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하려는 목적과 의도가 분명한 계몽 동화 한 권이 있습니다.

 

'유대인 연합 사회 기금'이 국제적으로 펼치는 '함께하는 삶' 캠페인에 작가 수지 모건스턴이 동참해 만든 짧은 동화 모음 <콩 반쪽의 행복>은 영민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부터 고학년 친구들에게 읽히기 좋은 책입니다. 열 명의 프랑스 작가가 히브리어로 '책임 의식, 사회 정의'를 의미하는 '체다카(tsedaka)'를 주제로 쓴 글들입니다.

 

열 편의 단편 가운데 어른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동화는 <'0'의 10퍼센트> <원숭이와 멧돼지> <어디 가니, 바질?> 입니다. 우선 수지 모건스턴이 쓴 <'0'의 10퍼센트>는 '나눔'에 관한 분명한 의견을 보여줍니다.

 

가난해서 남동생과 이층침대가 놓인 방을 같이 쓰는 '나'는 마지못해 동생과 모든 것을 나눠 쓰는 여자아이입니다. '세계의 빈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나'의 할머니가 들려주신 '체다카'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체다카는 그저 다른 사람이 불쌍해서 도와주는 걸 말하는 게 아니란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어.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단다. 체다카는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펼치는 캠페인으로 사회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한 거란다.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가 번 돈의 10퍼센트를 내놓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지."

 

'나'는 저녁식사에 나온 음식의 10퍼센트를 모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일주일 동안 모은 파와 강낭콩, 스파게티, 피자의 10퍼센트는 작은 벌레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할 뿐이었지요. 그러자 '나'는 반짝이는 지혜를 무료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결심합니다. 뚱뚱한 사촌 타타에게 살을 빼야 한다면서, 좋은 비법을 가르쳐 줍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돼"라고요. 충고를 하는 건 쉽지만, 듣는 것은 어려운 법이지요. 공연히 타타에 쓴소리만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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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사촌에게 살을 빼는 좋은 방법은 '입을 다무는 것'이라고 지혜를 모아 충고해 주지만,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지요. ⓒ 정진영

뚱뚱한 사촌에게 살을 빼는 좋은 방법은 '입을 다무는 것'이라고 지혜를 모아 충고해 주지만,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지요. ⓒ 정진영

 

'나'는 사람들을 돕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냥 혼자 알아서 하게 놔두는 게 더 낫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자기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남 걱정 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읽으면 뜨끔해서 습관성 잔소리를 멈추는 효과 좋은 대목입니다. 이런 저런 시도 끝에 '나'는 마음을 나누는 것, 작은 입맞춤 하나가 충고나 형식적인 인사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와 멧돼지>는 까칠한 철학자 장자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동화입니다. 일본의 어느 산골 마을, 늙은 원숭이에게 재주를 부리게 해 먹고 사는 남자는 제대로 재주를 넘지 못하는 원숭이를 푸줏간에 팔기로 합니다. 조만간 죽게 생긴 원숭이는 지혜로운 멧돼지를 찾아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애원합니다. 멧돼지는 남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젖먹이 아이를 자기가 낚아채는 척 할테니, 원숭이가 멧돼지를 때려눕히고 아이를 구하라는 시나리오를 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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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에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나눠준 멧돼지는 도리어 화를 입게 됩니다. 돕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알아서 헤쳐나가는 게 더 좋다는 얘기입니다. ⓒ 시소

원숭이에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나눠준 멧돼지는 도리어 화를 입게 됩니다. 돕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좋은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알아서 헤쳐나가는 게 더 좋다는 얘기입니다. ⓒ 시소

 

아이의 생명을 구해 준 원숭이를 살려주자는 남자의 아내는 원숭이에게 흠씬 두들겨맞은 거대한 멧돼지를 쫓아가 잡아오라고 말합니다. 늙은 원숭이 대신 살진 멧돼지를 푸줏간에 팔자는 거지요. 불행하게도 원숭이를 도와준 멧돼지는 되잡혀 와 끔찍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야기의 끝은 짧은 두 문장으로 끝이 납니다.

 

먼저 스스로를 챙기고 남을 도와라.

각자 알아서 잘할 때 세상은 더 나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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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면식도 없던 아저씨에게 금붕어를 선물 받은 소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작지만 큰 행복을 준 50년 전 행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따뜻하고 예쁩니다. ⓒ 시소

일면식도 없던 아저씨에게 금붕어를 선물 받은 소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작지만 큰 행복을 준 50년 전 행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따뜻하고 예쁩니다. ⓒ 시소

 

<어디 가니, 바질?>은 50년 전, 금붕어 한 마리를 사주고 서둘러 자리를 뜬 이름 모를 신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준 행인의 작은 선물은 가난해서 금붕어 한 마리조차 살 수 없던 소녀에게 50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선물이 됩니다.

 

다른 어른들이라면 애완동물 가게 앞에서 갈래 머리의 작은 소녀가 떼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말없이 금붕어 한 마리를 사준 남자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회색 바바리를 입고 서둘러 퐁네프 역으로 사라진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나도 당신을 따라 나 나름의 방식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좋은 마음만으로 기부를 해 보았답니다. 기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도 있어요. 아무리 기부할 기회가 많다 해도 직접 행동에 옮길 때에는 무척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은 아무나 지니지 못하는 고귀한 마음인 것 같아요. 난 기부를 실천할 때마다 그런 고귀한 마음을 지녔던 당신을 떠올린답니다.

 

지난 겨울, 딸아이 쿠하를 데리고 기차를 타려던 찰나. 아이는 새로 생긴 책 자동판매기 앞에서 움직일 줄 모릅니다. 2천 원짜리 <어린왕자>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이모가 캄보디아 여행길에서 사다 준 캄보디아어로 쓰여진 '어린왕자'를 갖고 놀았는데 표지에 똑같은 아이가 그려진 책을 보더니 계속 사달라고 조른 것이지요.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는 '어린왕자'를 '캄보디아'라고 부르곤 했는데, 쿠하가 5분 넘게 자리를 뜨지 않자 곁에서 지켜보던 한 아저씨가 그 책을 사준 일이 있습니다. 제 지갑에 돈이 없던 것도 아닌데, 아저씨는 꼬마에게 설날 선물이라며 건넸습니다.

 

그날 서울에서 광주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쿠하는 '캄보디아 왕자'를 갖고 놀면서 떼쓰지 않고 얌전히 갔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분이 선물한 작은 책은 아이를 웃게 만들고, 습관이 될까봐 안 사준 엄마를 민망하면서도 기분 좋게 합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아이를 본다면 살짝 선물하고 싶습니다. 내 아이가 환하게 웃었던 것처럼, 작은 선물로 누군가의 아이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콩 반쪽의 행복>에는 나눔에 대한 열 편의 단편이 있습니다. 길지 않은 동화로 나눔과 자선의 기쁨을 알게 하는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 남과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경쟁과 승패를 넘어 공존과 어우러짐을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2008.07.12 12:04 ⓒ 2008 OhmyNews

콩 반쪽의 행복

라셸 오스파테 외 지음, 세르주 블록 그림, 유민정 옮김,
시소, 2008


#나눔 #기부 #행복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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