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오정숙 명창의 빈소가 마련된 원광대의료원 장례식장. 제자들이 상주를 맡고 있다.
최경필
너무도 갑자기 맞은 스승의 타계에 고인의 제자들은 망연자실했고, 국악계도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익산시 원광대의료원 장례식장은 고인의 남긴 소리만 슬픔을 달래주고, 국내 국악계 및 관련인사들의 조화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5일장으로 치러질 장례는 국악인장으로 치러지며 오는 11일(금) 오전 9시 전주시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평소 화장해서 스승 곁에 묻어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전주승화원에서 화장을 마친 후, 스승이 잠들어 있는 고흥군 금산면 선영에 모셔질 예정이다.
고인은 경남 진주태생으로 슬하에 자녀가 없어 상주는 모두 고인의 제자들이다.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은 "마지막 유언조차 남기지 않은 것은 제자들에게 동초제를 계승하고, 기념전수관 건립사업 등을 완수하라는 무거운 숙제를 남기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동초 김연수 선생이 탄생시킨 동초제 판소리가 동편제, 서편제, 강산제 등과 함께 판소리 바디의 하나로 나란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고인의 열정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인은 우리 음악사에서 판소리 다섯마당을 최초로 완창한 여류명창이었다. 또 1990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통일음악제에서는 심청가 중 '부녀상봉' 대목을 불러 평양시민들을 울음바다로 만들 정도로 풍부한 감정을 살린 우리 소리를 재창조했다.
그 외에도 75년 제1회 전주대사습대회에서 장원을 한 이래 수많은 판소리 경연대회를 휩쓸었다. 동초 선생이 남긴 창극을 발전시킨 주역으로 지난해에는 동초탄신 100주년 기념음악제와 추모제를 개최하고, 국립극장에서 동초제 춘향가 한바탕을 발표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계속 해왔다.
지난 6월 8일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동초제판소리 국악한마당 무대에도 올라 춘향가 한 대목을 부를 정도로 소리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소리 연습을 하루라도 거르면 그만큼 소리가 부실해진다며 쉼없이 정진했던 고인은 "소리만큼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 된다"라고 말한 이 땅의 참된 소리꾼이자, 예인이었다.
그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목소리는 소녀처럼 청아했고, 제자가 아니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결코 하대를 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깍듯이 대했다.
고인의 한 서린 동초제 소리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