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마누라쟁이야! 처음부터 비위 맞춰주지

영종도 선녀바위

등록 2008.07.11 15:24수정 2008.07.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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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잘 놀아야 된다. 그러나 계속 치솟는 물가는 서울에서 남쪽 해안으로 가려면 철도나 버스를 이용하게 만들고, 승용차는 수도권 부근에서만 머물게 만들었다.

 

날씨가 찌는 요즈음 마음은 동해안 푸른 바다로 달려가고 싶지만, 한두 사람만으로 달려가기는 너무나 비경제적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두어 시간 대에 돗자리 깔고 오붓하게 시간 보내다 올 곳이 없는가 지도를 들척여 보지만 어디 딱 집어낼 데가 없다.

 

이번 일요일 아침도 그랬다. 특별히 무얼 보겠다고 나서자는 것은 아니었다.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일요일 아침 집안에 틀어박혀 <1000곡 도전>이나 <진품명품>을 보기에는 왠지 모르게 싫었다는 표현이 걸맞다 할 것이다.

 

a 갈치조림. 그냥 찾아 들어간 갈치조림집. 감자를 넣고 끓이는 조림과 한 마리를 잘라주는 간장게장으로 뜻하지 않게 푸짐한 아침식사를 한다.

갈치조림. 그냥 찾아 들어간 갈치조림집. 감자를 넣고 끓이는 조림과 한 마리를 잘라주는 간장게장으로 뜻하지 않게 푸짐한 아침식사를 한다. ⓒ 이덕은

▲ 갈치조림. 그냥 찾아 들어간 갈치조림집. 감자를 넣고 끓이는 조림과 한 마리를 잘라주는 간장게장으로 뜻하지 않게 푸짐한 아침식사를 한다. ⓒ 이덕은

 

"어데로?", "난 아무 데도 갈 생각 없었는데?" 이미 채비를 하고 차에 올라탔지만 마누라는 귀신같이 건드리면 터질 곳을 긁어 액설레이터 밟듯 혈압을 서서히 올려준다.

 

120번 경인국도. 목적지를 정하지 않으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차가 흔들린다. 뚱한 마누라라도 아무 데나 갈 곳을 정해주면 거기에서 뭘 조물닥거려 작품을 만들어 보지. 영종도로 내심 정했던 진로는 아침 허기에 못 이겨 연안부두로 향하게 만든다. 연안부두로 가봐야 해산물을 살 것 없으면 이 시간에 밥 먹을 곳이 별로 없는 것은 전에도 겪은 바이지만, 그래도 전날 부부싸움하고 성질을 못 이겨 문을 연 곳이 한두 곳은 될 것 같은 '필'이 꽂힌다.

 

a 월미도-영종도 페리. 승선시간이 불과 20분을 채우지 못하지만 배타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월미도-영종도 페리. 승선시간이 불과 20분을 채우지 못하지만 배타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 이덕은

▲ 월미도-영종도 페리. 승선시간이 불과 20분을 채우지 못하지만 배타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 이덕은

 

역시나 연안부두 여객터미널 부근 연안파출소 옆 밴댕이회센터 건물에 문을 열고 있는 곳이 하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리실과 접한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가 손님을 맞는다. 갈치조림을 시키니 갈치 튀긴 것과 간장게장 한 마리, 양념이 잘 배인 깻잎과 멸치볶음까지 나온다. 조림은 특이하게 감자까지 넣고 거의 중(中)짜리 갈치 한 마리가 들어 간 듯하다.

 

뜻하지 않게 푸짐한 아침을 대접받고 나오니 마누라가 아침보다는 약간 낮은 강도로 나를 긁는다. "인제 집으로 가는 거지?"

 

'그냥 갈꺼 같아?' 오기가 나지만 마누라는 아마 속으로 웃으며 그조차도 꿰어차고 앉았을 것이다.

 

a  아침인데도 페리는 배가 터지도록 자동차를 한가득 싣고서야 떠난다.

아침인데도 페리는 배가 터지도록 자동차를 한가득 싣고서야 떠난다. ⓒ 이덕은

아침인데도 페리는 배가 터지도록 자동차를 한가득 싣고서야 떠난다. ⓒ 이덕은

 

월미도 선착장에는 벌써 바이킹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배 타려고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중에도 무서워서 지르는지 즐거워서 지르는지 바이킹이 정점에 도달을 때마다 비명을 질러 페리를 기다리는 중에도 심심치 않다.

 

고작 10여 분 정도 승선으로 영종도 선착장에 닿는다. 남쪽해안을 따라가며 해수피아 해수탕, 새로 생길 인천-영종간 연육교, 아마 세계에서 6번째로 긴 다리라고 하든가? 영종도와 용유도를 막은 남쪽 방조제를 거쳐 실미도로 넘어가는 배를 타기 위한 잠진도 선착장에 다다른다.

 

아직 사람들은 많지 않고 횟집마다 예쁜 아줌마들이 관객에게 인사하는 배우의 포즈로 호객을 한다. 다시 되돌아 나와 영종도 서쪽 해안도로로 들어간다. 활주로로 대부분의 해안을 빼앗긴 영종도(정확히는 용유도)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해수욕장은 모두 이 짧은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모텔과 MT장을 겸한 횟집,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곧이어 나타나는 모래사장과 개펄, 이른 시간이라 가족 몇몇만이 자리를 깔고 앉아있고 ATV를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 보인다. 우리가 잠시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장화 신은 동네 아저씨 둘이 조개 캐러 비닐봉투와 삽을 들고 개펄로 들어갔는데 순식간에 점으로 보인다. 

 

a 마시안 해수욕장   잠진도 선창장과 선녀바위 사이에 있는 해수욕장. 모래사장 폭이 비교적 넓고 뒤쪽으로 음식점과 솔밭이 있다.

마시안 해수욕장 잠진도 선창장과 선녀바위 사이에 있는 해수욕장. 모래사장 폭이 비교적 넓고 뒤쪽으로 음식점과 솔밭이 있다. ⓒ 이덕은

▲ 마시안 해수욕장 잠진도 선창장과 선녀바위 사이에 있는 해수욕장. 모래사장 폭이 비교적 넓고 뒤쪽으로 음식점과 솔밭이 있다. ⓒ 이덕은

 

다시 북상하다 삼거리에 선녀바위라고 쓰인 표지가 보인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활처럼 커다랗게 휜 백사장 끝에 작은 봉우리 2개가 보인다. 그 끝이 선녀바위일 거라 짐작하고 들어가 주차한다. 차에서 내리니 선녀바위 어촌계라 쓰인 작은 건물이 있어 조개구이, 낚싯배들을 임대한다. 건물 뒤쪽 천막 아래에는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고, 물이 들어와도 선녀바위까지 건너갈 수 있도록 바위를 방파제처럼 쌓아 놓았다. 그 사이에 작은 모래밭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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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은

 

굳이 모래밭이라고 한 것은 좌우에 바위로 둘러싸여 백사장은 넓은 앞마당 같아서다.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에…'라고 말한 어느 유명한 사람처럼 내 소유로 만들고 싶을 만큼 아늑하다. 마누라는 '선녀바위에는 선녀가 없다'고 궁시렁대지만 선녀바위는 옷 벗어 놓은 자리만을 얘기할 뿐 정작 선녀들이 벌거벗고 해수욕을 즐긴 곳은 바로 이곳. 바람이 차단되고 바위로 가림막을 친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잠시 바위 위에 앉아 날개를 접어놓고 선남(仙男)이 되어 아이들이 모래 위에서 팔방놀이(망까기) 하는 것을 지켜보다 비천(飛天)하지 못하고 바위가 될까 봐 자리에서 일어난다.

 

a 영종대교 하부층. 차라리 영종대교를 통해 영종도로 간후 월미도로 건너와 북성동에서 중국음식을 들고 귀경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영종대교 하부층. 차라리 영종대교를 통해 영종도로 간후 월미도로 건너와 북성동에서 중국음식을 들고 귀경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 이덕은

▲ 영종대교 하부층. 차라리 영종대교를 통해 영종도로 간후 월미도로 건너와 북성동에서 중국음식을 들고 귀경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 이덕은

 

밤새워 운전하고 다니는 것은 옛말이다. 고작 두세 시간 운전을 하였을 뿐인데도 목이 뻣뻣해 온다. 목을 주무르는 내 손바닥과 목 사이를 헤치고 까칠한 마누라의 손바닥이 느껴진다.

 

'이 마누라쟁이야. 처음부터 비위 맞춰주면 어디가 덧나느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7.11 15:2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닥다리즈(연세56치과)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선녀바위 #영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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