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 일부늘려 심은 잔디밭은 벌써 두번이나 사람을 사서 맸음에도 풀과 섞여 있다. 잔디가 자라면 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홍광석
올해 잔디밭을 더 넓히고 더구나 철쭉 묘목을 밭에 옮겨놓고 보니 작년에 못지않은 일거리가 생겼다. 이랑 사이에서 자라는 풀은 예초기로 베어내면 길이 트이지만 잔디밭이나 철쭉 묘목을 심어놓은 밭은 그럴 수 없다. 특히 아직 묘목이라 며칠만 돌보지 않으면 훌쩍 키를 넘기고 마는 풀에 갇혀 누렇게 마르는 철쭉 묘목이 심어진 밭은 풀은 벨 수도 뜯을 수도 없다. 호미를 들고 아주 조심스럽게 일일이 풀 하나 하나를 뽑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종종 어린 철쭉 묘목의 뿌리를 감고 있던 풀이 아직 뿌리가 깊지 않은 철쭉의 뿌리를 달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풀이 악착스럽게 저만 죽을 수 없다고 버티는 것 같아 정말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하긴 선한 일을 권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자기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음모와 배신과 심지어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마당에 오직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는 풀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삽목을 하고, 또 옮겨 심은 일을 후회하면서 뽑힌 철쭉을 다독이며 다시 자리를 잡아 심으면서 어서 자라라고 힘을 보탠다.
요즘 해가 길어져 아내와 나는 오후에는 밭에 나가 풀을 뽑는다. 풀이 작물의 키를 넘지 않는 고추, 가지 밭은 그냥 지나치고, 수박 참외밭에서 참외가 다칠세라 손으로 풀을 뜯어낸다. 그리고 철쭉 밭에서는 풀과 씨름을 한다. 어쩌면 누구 말대로 풀과의 전쟁인지도 모른다.
나무와 잔디와 농작물을 가꾸는 일은 희망을 키우는 일이다. 감자를 캐고 자두를 따는 감동이 없다면 또 가을날 야콘과 고구마를 캐고 고추가 붉게 익을 것이라는 기다림이 없다면 그리고 철쭉이 꽃을 피우고 시원한 잔디밭을 산책하는 꿈이 없다면 뙤약볕에 엎드려 허리 아픈 고통을 참으며 풀을 뽑지 않을 것이다.
마을 노인들은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하지만 화학 비료마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농약을 뿌리는 일은 감동 솟아나는 요술의 땅, 새싹과 꽃과 열매가 주는 기쁨의 땅을 버리는 죄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그곳에 집을 못 짓고 있다. 출퇴근하는 농부인 셈이다. 앞으로 그곳에 살게 되면 지금보다는 일이 분산되고 그러다보면 쉬워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마음 비우려는 노력을 하면서 쉬엄쉬엄 풀과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