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니까 군 생활 편했겠지?"

[인터뷰] 막 전역한 장교들 이야기

등록 2008.07.12 16:40수정 2008.07.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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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나는 ROTC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학생군사교육단, 줄여서 학군) 44기가 2년 4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했다. 임관할 때 떠들썩한 것과는 달리 각자 부대에서 전역 신고를 하고 조용히 사회로 돌아왔다. 이번에 같이 전역을 한 사람으로서 장교로서 겪은 군대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다. 군대는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산이다. 어떻게든 넘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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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진(좌)와 이대암(우) 막 전역을 하고 민간인이 된 두 남자. ⓒ 이인


참고로, ROTC는 학군으로 불리며 대학교 3,4학년 동안 사관후보생으로서 방학에는 군사훈련, 학기 중에는 대학공부와 군사학공부를 같이 한다. 임관을 한 뒤, 16주 동안 육군 보병학교에서 소대장 훈련을 받고 2년간 의무 복무를 하게 된다. 그 뒤 전역을 하거나 직업 군인을 하게 된다.

전역을 하고 10일이 지난 뒤 슬슬 민간인 생활에 적응했을 동기 2명을 불러서 장교로서 한 군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대암(27. 이하 이)은 가을 학기부터 대학원에 진학하고 장석진(27. 이하 장)은 이번 달 말에 회사 출근을 앞두고 있다.

- 다들 수고했어. 몸 건강히 전역을 해서 다행이네. 처음 총을 쏘면서 훈련 받은게 2003년 12월이니까 4년 반 만에 군복무를 끝냈네. 돌아보면 어땠어?
이 : "먼저 감사부터 드리고 싶어. 늘 계급 대우를 깎듯이 해주신 부사관 분들, 별 것도 없는데 소대장이라고 늘 제일 좋은 것들을 가장 먼저 챙겨주고 받들어준 병사 친구들. 일했다고 병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많은 월급을 준 국방부. 이런저런 경험들, 추억들에 대해."
장 : "정말 최선을 다했어. 내 생애 또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내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에서 맺은 인연을 함부로 여기지 않기 위해서도, 또한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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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생각하는 이대암 이야기를 깊게 듣고 있는 이대암. 차분하게 군생활을 얘기한다. ⓒ 이인



동기부여가 안 되는 조직을 이끈다.


- '장교니까 군생활 편하겠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장교라고 군생활이 쉽지 않잖아. 어떤 점 힘들었는지?
이 : "수많은 행정업무, 계속되는 야근이 힘들더라고. 다른 사회 조직에서도 일은 많지만 동기부여가 정말 너무도 안 되더라고. 야근 자체가 힘들다는 게 아니라 생산성도 전혀 없게 동기부여가 안 되는 일로 야근까지 해야 된다는 게 힘들었어. 이건 단지 병역의무를 수행중이란 이유만으로는 결코 설명이 안 되는 거야."
장 :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구성원들을 끌고 목적을 이루려다 보니, 틀어지는 게 많았어. 군 조직이 오랜 기간에 걸쳐 갖고 있는 맹점이기도 해. 조직을 이끄는 사람도, 그 속에서도 따라오는 사람도 서로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지. 그 과정에서 난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다소 잃었던 적이 있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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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고 있는 장석진 열중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장석진. 군생활에 대해 여러가지를 말한다. ⓒ 이인



- 경험을 바탕삼아 군 조직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 : "그 군 조직 내부의 힘으로 자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 같아. 다만 외부에서의 충격으로 군인들이 큰 반발 없이 잘 움직여주기만을 바랄 뿐이야. 사회 변화에 맞춰서 군에서 물리적 폭력은 정말 급격하게 줄었고 사망자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해. 이러한 연장선에서 군대 조직 내의 사람들, 특히 병사의 인권 문제가 훨씬 넓고 깊게 확산될 수 있도록 사회에서 관심 갖고 끊임없는 확인을 해야지."
장 : "군 역시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해. 하지만 그러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못하다보니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많은 행정소요가 발생하고 있어. 그러한 행정소요들로 인해 형식은 유지되지만, 서로에 대한 진심을 나눌 기회가 더욱 줄어들어. 나는 전투력의 기본은 바로 동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헌신과 희생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거든."

신중하게 생각해서 도전할 ROTC

- ROTC에 관심을 갖거나 ROTC를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 "이제 병사들은 18개월까지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지만 학군장교는 28개월 그대로. 10 개월이란 많은 차이가 생깁니다. 제가 군복무 할 때야 24개월 대 28개월로서 '뭐 4개월쯤이야'란 생각이 가능했지만 10개월이라면 큰 차이죠. 군생활에 긴 뜻이 있지 않고 군복무를 마친 후의 사회생활을 생각하는 학생이라면 정말 현실적 잣대를 신중히 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예와 신의로 군생활을 한다고 장교를 높이지만 깊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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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복입은 이대암 대학교 3-4학년동안 ROTC들은 단복을 입고 장교가 되려고 준비를 한다. ⓒ 이인



장 : "장교생활은 꼭 해볼만하다고 생각해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더 많은 책임을 질수록 더 자유로운 법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주관을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도 주어지고 조직 속에서 이상적인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다만, 두 가지를 명심해 주었으면 합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희생하고 헌신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리더십은 크게 추진력과 의사소통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두 능력 모두 바로 솔선수범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기고자 한다면 절대로 지원하면 안 됩니다.

둘째,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조직의 발전 못지않게 자신의 발전 역시 중요합니다. 2년간 조직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자신의 발전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2년 후 자신의 발전이 없다면, 그간 애썼던 장교생활은 순식간에 원망과 부질없는 시간으로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불철주야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강력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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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입은 장석진 중위 장석진이 전역을 앞두고 찍은 사진. 얼굴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비친다. ⓒ 이인


오늘 날 한국 군대는 예전처럼 폭력이 진동하고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는 곳이 아니다. 인권이 보장되고 선진 병영으로 변화하는 걸 봤다. 시설이 대폭 나아졌으며 지휘관들 인식도 상당히 달라졌다. 하지만 자살한 동기 소식을 들었고 업무 스트레스로 얼굴이 어두워진 사람들도 보았다. 아직도 수많은 사고로 사람들이 다치고 있으며 사회에서도 군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오늘 이렇게 두 발 뻗고 편히 자는 것은 누군가 밤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란 걸 너무 쉽게 잊는다. 밖에서 생각하는 군대와 몸소 겪는 군대는 차이가 크다. 군복을 벗지만 계속 군대를 향한 시선을 거두면 안 된다는 걸 느낀다. 군대는 사회 변화의 종착지로 군대의 발전이 사회의 발전을 알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매년 3500명 정도의 ROTC 출신 장교들이 부푼 꿈을 안고 군 생활을 한다. 장교로서 많은 준비를 하지만 실제 부딪히는 군대는 힘들다.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고 그만큼 잃는 것도 많다. 내가 얻은 것들을 간직하고 잃은 것들을 떠올리며 살아야겠다.
#ROTC #전역 #군대 #소대장 #학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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