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전화 걸어 '촛불중지 호소' 목사 명단에 올렸다"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이름 올라... 기독교사회책임 "명단 공개한 언론사 책임"

등록 2008.07.15 11:21수정 2008.07.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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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책임' 소속 목사들이 10일 오후 2시 서울 장충동 기독교사회책임 세미나실에서 촛불집회 중지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승균



촛불중지 호소문에 동의했다는 9101명의 목사 명단이 졸속으로 작성되었거나 일부 명의가 도용된 사례가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의 명단은 기독교사회책임(대표 서경석, 이하 기사임)이 자원봉사자 40명을 동원해 6월 30일부터 7월 10일 오전까지 4만 5000명의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중 동의를 받은 9101명의 이름을 수록한 것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 명단에 본인이 직접 동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버젓이 이름이 올라간 사례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이 목사의 이름은 '기사임'이 명단을 공식 발표하기 하루 전인 7월 9일 각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촛불중지 호소문에 서명한 주요 목사 38명 중 한 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동원 목사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에 있으며 촛불중지 호소문에 동의한 사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구촌교회 한 관계자는 "기독교사회책임이 어떻게 이런 비도덕적인 일을 저질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우 불쾌하다"며 "이동원 목사는 이 단체의 고문직을 사임할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송태근 목사(강남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나핵집 목사(열림교회, 기장 평화공동체운동본부)는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경우다.

특히 송태근 목사는 이번 '기사임'의 전화를 통한 서명운동이 일종의 사기에 가까우며 기독교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목사는 "한 여성이 전화로 '목사님도 이명박 대통령이 끝까지 임기를 잘 마치시기를 원하시지요?'라고 물어서 선뜻 '아니오'라고 할 수 없어서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라고 설명했다. 


즉, '기사임'측은 송 목사에게 '촛불집회가 중지되어야 한다'는 질문 대신에 응답자가 무심코 긍정적인 대답을 할 만한 내용을 미끼처럼 던져놓고 거기에 걸려들기를 기다렸던 셈이다. 송 목사는 전화를 끊고 일종의 '낚시전화'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바로 항의를 했으나 상대편은 시종일관 매우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송 목사는 "'기사임'의 이 같은 태도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정부의 태도보다 더 나쁜 행위"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정준경 목사(뜨인돌교회)는 재중동포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촛불중지 호소문의 내용과 전혀 다른 답변을 했으나 9101명 중 한 명으로 기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 목사는 "촛불집회가 중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연히 촛불집회는 중지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단 정부가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했을 때"라는 단서를 붙였다.

정 목사는 사실상 '촛불집회가 현 상태에서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촛불중지 호소문에 동조하는 목사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재중동포 여성이 정 목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든지, 고의로 답변의 진의를 왜곡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목사는 또 전화를 건 재중동포 여성이 시국이나 교회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소통하는데 애를 먹은 것으로 드러나, 촛불집회와 관련한 전화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 '조사자의 언어 미숙에 따른 원활하지 못한 소통'이 큰 문제 중 하나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사임'이 동원한 자원봉사자 40명 가운데는 서경석 목사의 조선족교회와 관련된 재중동포들이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기사임'이 9101명이나 되는 명단에 목사들의 이름만 공개하는 바람에 동명이인 목사들이 보수적 시국관을 지닌 인사로 매도당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한명수, 조화순, 방인성 등 촛불집회를 긍정적으로 보는 목회자들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어서 이들이 과연 동명이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전 아무개 목사는 명단에 자신이 이름이 올라 있어 직접 '기사임'에 확인해 본 결과 동명이인임을 알게 되었으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상황이 매우 불쾌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기사임'이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어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단체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전 목사에 따르면 '기사임'의 한 관계자는 원래 명단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으나 일부 언론사가 무단으로 명단을 빼내간 것이라며, 자신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했다는 것.

그러나 <뉴스앤조이> 등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들은 7월 10일 기자회견 후 '기사임'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름만 들어 있는 명단을 받았으며, 당시 '기사임' 측은 교회 이름은 공개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기사임'은 현재 유럽에 체류 중인 서경석 대표와 김규호 사무총장이 조만간 귀국하는 대로 설문조사 명단과 관련된 문제점을 분석해 구체적인 의견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촛불집회 #기독교사회책임 #목사 #서경석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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