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불법유출인가?

[주장] 신구정권의 갈등에 대한 전말

등록 2008.07.17 15:26수정 2008.07.17 15:26
0
원고료로 응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의 형식으로 국가기록물 사본을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편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불법행위를 인정했다는 듯한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언론보도를 접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건의 전말을 보면 누구도 명확히 불법이라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건의 전말

 

대한민국은 역사적 기록물을 잘 남기지 않는 이상한 나라였다.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임기말 자신의 통치와 관련된 사료를 밤새워 파기하고 불에 태우기에 바빴다. 남겨도 아무런 흠이 안 될 내용들만 국가기록원에 넘겨주었다. 필요한 경우 사본이 아닌 원본을 통채로 가져간 일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보복이 두려워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참여정부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남겼다. e지원 시스템을 개발하여 자료를 모두 전산화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였다. 법을 개정하여 정치보복에 악용할 수 없는 장치도 마련하였다. 스스로 역사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정부수립 후 55년 동안 남겨진 기록보다 지난 5년간 생성하여 남긴 자료의 양이 더 많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다. 대단히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퇴임하면서 문제의 불법유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e지원 시스템을 추가로 만들어서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기록물들을 모두 국가기록원에 남겼지만 전산화된 자료를 복사하여 가져갔다. 이 부분이 현정권의 시비 대상이 되었다.

 

청와대가 실명 없이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불법행위 운운하는 설들을 흘리고 현정권에 호의적인 언론이 그것을 받아 보도하며 노 전 대통령 측을 압박하였다. 국가기록원은 물론 청와대와도 협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다.

 

결국 자신의 참모들이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운위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 노 전 대통령이 반환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셈이다. 여전히 청와대는 사법처리를 운운하는 상황이지만 큰 줄기에서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다.

 

과연 명확한 불법인가?

 

전산자료의 사본을 노 전 대통령 측이 봉하마을로 가져간 행위가 마치 명확한 불법행위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사안은 그리 명확한 사건이 아니다. 얼마든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확실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의 주장은 이렇다.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에 생성한 자료는 퇴임 시 국가기록원에 모두 보내야 한다. 국가기록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는 그 어떤 사본도 나갈 수가 없다. 그러니 명확한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은 다르다.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기간에 생성된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하고 필요하면 사본을 만들어 가져갈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국가기록원 측이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으니 필요한 부분만 복사하여 가져간 것이다. 따라서 불법으로 볼 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나름의 이유는 있어 보인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내용은 이렇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대한 기록을 보려고 할 때는 언제라도 볼 수가 있고, 사본의 생성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을 급하게 삭제하고 수정한 것을 보면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언제라도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면 사본을 국가기록원에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자신의 재임기간 기록을 볼 권리가 있고, 사본을 생성할 수도 있는데 왜 사본을 만들어서 가져간 것이 명확한 불법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시비의 대상이 될 수는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확히 불법으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 문제는 사본에 대한 사전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 있고, 사본을 생성한 후에 양해를 구한 점이 문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재임 시 기록을 언제라도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전직 대통령이 그러한 열람에 제약이 있어 사본을 가져간 것이 그렇게 심각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기록원이 작정하고 시비를 하려드는 경우에만 문제가 생기는 일이다. 지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 뿐이다. 함부러 불법행위로 단정하기에는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열람의 편의과 기밀의 누설

 

혹자는 국가기밀의 누설 가능성을 말한다. 과연 기록물의 사본이 있으면 누설하고, 머리속에 남은 기억은 누설되지 않을까? 그렇게 염려가 된다면 전직 대통령의 머리속의 기억을 모두 삭제하는 조치라도 취해야 할 것이다. 또 전용선을 설치하는 것이 곤란한 이유도 바로 기밀의 누설을 염려한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심각한 기밀사항이라면 이미 전직 대통령의 뇌리에 담겨있을 것이다. 마음을 먹는다면 국가기밀은 얼마든지 누설할 수 있다. 정말 전직 대통령이 국익에 해를 끼칠 목적으로 기밀을 누설할 것이 염려된다면 기록물을 빼앗을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밀을 누설하는 경우 또 해당 법률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충분하다.

 

전용선을 설치하여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황당하다. 예산이 없다는 것과 기밀이 누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부담시키면 될 일이다. 전용선이란 다른 외부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도록 설치가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없다.

 

또 한 가지는 열람의 편의가 제공되는 이상 기밀누설의 염려는 상존하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가기록원을 방문하여 상세히 파악하고 사본을 만들어 나와서 누설할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차단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완전히 차단할 가능성은 없다. 열람권을 제한하거나 정치적 공세를 위한 구실로 보이는 이유이다.

 

현정권의 협량한 태도에서 기인된 일이다

 

이 사건이 마치 확실한 불법행위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충분히 많다. 또 이전의 판례 또한 없었다. 확실한 불법행위로 단정하고 주장을 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전의 수많은 전직 대통령들이 자료를 불법파기하고 불태우고 나갔다. 심지어 어떤 중요한 사본을 들고 나갔는지 알 수도 없다. 그때마다 후임정권들이 지금처럼 시비를 걸었다면 전직 대통령들의 자택 등은 모두 압수수색을 받고 철저히 검증을 받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권만 그렇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국가기록원에 사후에라도 양해를 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사본의 존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혹시 눈치를 챘다고 하더라도 증거도 없이 압수수색영장을 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의구심만 가지고 있다 말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원에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려 했다. 또 국가기록원 측의 방문조사를 수용하여 공개하였다. 특별히 기밀을 누설할 가능성이 높이진 정황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국가기록원 측이 열람권과 사본발급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양해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청와대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수위 시절 철저히 필요한 기록물에 대한 요구를 하고 챙겨서 넘겨받아 참고할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는 참여정부의 기록을 무시했다. 인사관련 존안파일도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자신들은 실패한 전정권의 것을 참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청와대에 남겨둔 자료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사실패도 전정권이 검증파일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핑계를 댄다. 청와대에 자료가 없어서 아무 일도 하기 어려웠다고 투덜거린다. 인수위가 특별히 요구하여 당시 청와대의 양해를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자료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모두 국가기록원에 넘겨서 현직대통령은 열람조차 할 수 없도록 법이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자신들의 잘못된 국정운영에 대한 핑계꺼리를 찾으려 했던 현정권에게 있었다. 또 국민의 신뢰를 잃고 집권 초부터 궁지에 물린 입장을 타개하려고 의도적으로 전정권을 정쟁에 끌어들이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다'라고 읊조려서 집권에 성공한 것처럼 또다시 그를 공격하여 반사이익을 얻고자 노력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한 불순한 의도가 없다면 이 일은 이렇게 복잡한 대립을 할 사안이 아니었다. 분명히 열람권의 보장이나 사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양해하고 넘어가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다. 국가기밀의 누설에 대한 염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차피 완벽히 막을 수도 없고, 다른 법률에 의하여 처벌이 어렵지 않다.

 

현정권의 협량한 태도가 이러한 신구정권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고 증폭시켰다. 지금 반환을 결정한 상황임에도 법적 처벌을 운운하며 이 사건을 좀 더 지속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봐도 속좁고 치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불법의 여부는 속단할 일이 아니다. 그리 신뢰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는 하나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받아봐야 할 일이다.

 

참 속 좁고 치사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 국가기록원의 입장이 우왕좌왕하는 것도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더욱 염러스럽다. 혹시 현직 대통령이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서 마음대로 정보를 독점하고 빅브라더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압도적 의석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7.17 15:2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기록유출 #노무현의 편지 #속좁은 정권 #국가기밀 #열람편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유인촌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되었다
  2. 2 서울대 경쟁률이 1:1, 이게 실화입니다 서울대 경쟁률이 1:1, 이게 실화입니다
  3. 3 아내가 점심때마다 올리는 사진, 이건 정말 부러웠다 아내가 점심때마다 올리는 사진, 이건 정말 부러웠다
  4. 4 아무 말 없이 기괴한 소리만... 대남확성기에 강화 주민들 섬뜩 아무 말 없이 기괴한 소리만... 대남확성기에 강화 주민들 섬뜩
  5. 5 "600억 허화평 재산, 전두환 미납 추징금으로 환수해야" "600억 허화평 재산, 전두환 미납 추징금으로 환수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