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그까이꺼, 우리집은 직접 만들어요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에너지 소비량 제로 냉방기는 '검은 비닐'

등록 2008.07.20 12:05수정 2008.07.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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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태양열을 그대로 받아 공기가 후끈했던 우리 집. ⓒ 강동주




옥상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그대로 흡수하는 우리 집. 한낮엔 방바닥도 뜨겁고 옥장판은 불도 안 켰는데 후끈하다. 온 종일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은 덥기만 하다. 찬물 샤워를 4번 이상은 해야 쾌적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한여름.

"그래도 느그 할머니는 이 집 살면서 여름에 선풍기 한 번 안 틀고 지내셨어"하시는 숙모의 말에 경악했다. 가만 둬도 찜통 같은 이 집에서 할머니는 여름을 어떻게 지내셨을까. 여름은 할머니처럼 덥게 지내야 맞는 거지만 매년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마당에 순리 타령은 할 수가 없다.

옥상에 설치한 '엄마손' 에어컨, 에너지 소비량은 제로

외삼촌·외숙모와 함께 피자를 먹던 날 저녁. 엄마의 심기를 건드린 건 해가 떨어져도 후끈한 거실 바닥이었다. 선풍기 두 대로 땀을 식히며 '에어컨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엄마는 곧장 어디론가 향했다.

밭에 다녀오는 줄 알고 있던 나는 엄마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자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어디 있어?" 하자 "옥상!"하는 엄마 목소리.


펜치를 갖고 올라오라는 엄마의 명대로 펜치를 찾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안 쓰는 전깃줄을 이용해 옥상을 가로지르는 줄을 매달고 있었다.

"(비닐) 걸치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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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길. 옥상을 가로지르는 전깃줄 세 개 위에 비닐을 걸치고 가장자리를 옥상 벽에 묶어 그늘을 만들었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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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구멍에 전깃줄을 끼워 가장자리를 옥상 벽에 고정시켰다. ⓒ 강동주



작년 여름, 마찬가지로 후끈한 집안 열기 때문에 엄마는 이번과 같이 (구멍이 있는) 검은 비닐을 깔았다. 비닐 가장가지를 노끈으로 매달아 공중에 뜨게끔 해서 그늘을 만들었다. 하지만 강렬한 여름 태양은 노끈을 손쉽게 녹여 버렸다. 손만 대도 톡 하고 풀어져 버릴 정도였다. 비바람도 견디지 못했던 비닐은 가라앉고 집은 다시 더워졌다.

엄마는 지난 번 실패를 되새김질하며 이번엔 노끈 대신 안 쓰는 전깃줄을 선택했다. 열기·비바람·눈도 견뎌내는 전깃줄은 훌륭한 재료였다. 미리 매달아 놓은 전깃줄에 걸치니 비닐이 자연스럽게 뜨면서 그늘이 졌다. 걸치는 것으로는 바람을 못 견디니 가장자리를 다시 전깃줄로 고정시켜 튼튼하게 만들었다.

또 비닐 한 겹으로 만들었던 작년 것에 더해 이번에는 두 겹으로 포개어 설치했다. 비닐에 구멍이 뚫려 있다 보니 한 겹일 때는 그늘이 빈약했는데 위에 한 겹이 더 있어서 모자란 부분이 채워졌다.

엄마는 내년엔 세 겹으로 해보겠다고 하신다. 비닐을 두 겹으로 포개는 바람에 집의 반절은 무방비 상태이지만 안방과 거실은 무척 시원해졌다. 그 날 아침, 엄마가 옥상에서 한 일은 올 여름 최고의 대업이다.

우리 집 만능 엄마, 너네는 엄마 없음 못 살지?

눈에 띄게 시원해진 우리 집. 단지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해도 덥지가 않다. 옥상에서 내려받던 열이 줄어드니 집안 공기가 시원해진 것이다.

엄마 덕분에 집이 시원해졌다고, 엄마는 능력자라고 엄지를 치켜드니 "너네는 엄마 없음 못 살지?"하며 웃어 보이는 엄마. 바깥 날씨가 더울 때마다 "(엄마 덕분에) 집이 제일 시원해"를 입에 달고 사는 나를 보며 엄마는 "이제 그만 하라"며 손사래를 친다.

에어컨이 부럽지 않은 엄마의 수제 에어컨으로 올 여름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옥상 있는 분들. 에너지 소비량도 줄일 겸 우리 집처럼 이거 한 번 설치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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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엄마의 수제 에어컨. 이거 하나로 우리 집 공기가 달라졌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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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부럽지 않은 효과. 엄마 덕분에 올 여름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 강동주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덧붙이는 글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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