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투쟁해 얻은 결과, 웃음보다 눈물"

법원,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근로자 지위에 있다" 판결

등록 2008.07.18 20:29수정 2008.07.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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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한 사무금융연맹 증권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의 정인열 부지부장이 판결 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18일 오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한 사무금융연맹 증권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의 정인열 부지부장이 판결 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웃음보다 눈물이 앞섰다. 젖은 눈망울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은 전염병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퍼졌다. 애써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었다.

 

정인열 사무금융연맹 코스콤 비정규지부 부지부장은 눈물을 머금은 채 "처음엔 웃음이 나왔는데, 눈물이 나왔다"며 "9월 12일 파업 후, 310일 동안 거리에서 농성을 하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흐느꼈다. 그는 "회사는 정당성을 잃었으니 우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2시 3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언론 카메라 앞에서 눈시울을 붉힌 채 '우리는 모두 근로자 지위를 확인 받았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내보였다.

 

법원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

 

이날 오후 서울남부지법은 제13민사부(최승욱 부장판사)는 코스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74명이 코스콤을 상대로 한 근로지위확인 소송에서 "66명은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들이 소속돼있던) 증전엔지니어링과 에프디엘정보통신은 코스콤 사우회가 100% 출자한 회사로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도급회사 아이티메이드 소속 노동자 8명에 대해서는 근로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위장도급이라 해도 근로관계에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번 판결은 최근 하청업체의 노동자가 원청업체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았다는 원청회사의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최근 대법원 판결 결과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현대미포조선 사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0명은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10일 "현대미포조선은 채용에서부터 작업과정까지 이들을 직접 지휘·감독하고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등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지금껏 많은 제조업체들은 파견·용역·도급 등을 통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싼 값'에 고용해 많은 이익을 남기면서도 "사용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를 회피해왔다.

 

이번 코스콤 판결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 이후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번 판결로 비정규직보호법이 허구라는 점이 드러났다"며 "각각 1000일과 8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KTX 여승무원 등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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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앞에서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182일째 파업 중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이 구청 직원과 용역 직원 150여명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여성농성자들이 쇠사슬로 천막에 몸을 묶은 채 저항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기태 제공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앞에서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182일째 파업 중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이 구청 직원과 용역 직원 150여명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여성농성자들이 쇠사슬로 천막에 몸을 묶은 채 저항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기태 제공

 

"목숨 걸고 투쟁해 얻은 결과, 웃음보다 눈물"

 

"목숨 걸고 투쟁했는데, 이런 판결이 나오니 심경이 복잡하다."

 

이날 그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건 정인열 부지부장이었다. 누구보다 투쟁에 앞장서왔던 그다. 지난 16일 정연태 코스콤 사장과의 교섭이 시작 직전 깨지자, 가장 먼저 30m 높이의 교통 CCTV탑에 올랐다. 지난해 11월엔 22일간의 단식 후 쓰러지기도 했다.

 

- 눈물을 많이 흘렸다.

"처음엔 웃음이 나왔는데…. 판결이 굉장히 잘 나왔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판결 직후 입사한 지 2년이 안 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20명의 신입사원 얼굴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앞장섰다. 또한 함께 고생했던 사무금융연맹, 증권노조 관계자들의 얼굴도 스쳤다."

 

-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나?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의 경우, 노조가 아닌 개인별로 소송을 내 이겼다. 우리는 노조가 파업을 하고 투쟁을 하면서 이 판결 얻어냈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많은 위장도급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회사에서 항소할 수도 있는데.

"회사는 정당성을 잃었다. 항소를 한다면 사회적 여론을 무시하고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회사는 법에 판단에 따른다고 얘기했다. 즉각 우리와 교섭을 해 직접 고용해야 한다."

 

코스콤 "우리나라엔 3심제가 있다"

 

이날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포현대조선 하청업체 노동자 30명이 대법원에서 종업원 지위를 인정받는 데 까지 5년 6개월이 소요됐다"며 "항소를 저울질 하거나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면 이제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회사 쪽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용빈 코스콤 홍보팀장은 "항소나 교섭 문제는 판결문을 받은 후에 세부적으로 검토한 후 입장을 밝히겠다"며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1심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엔 3심제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달라"고 전했다.

2008.07.18 20:29 ⓒ 2008 OhmyNews
#코스콤 비정규직 #코스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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