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동아시아 세계론'에 집착하는 이유

[책 속으로 떠난 역사여행 18] 나시지마 시다오 <일본의 고대사 인식>

등록 2008.07.19 11:47수정 2008.07.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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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표지 <일본의 고대사 인식>

책표지 <일본의 고대사 인식> ⓒ 역사비평사

▲ 책표지 <일본의 고대사 인식> ⓒ 역사비평사

'대동아 공영권'이란 말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구미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아시아 제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했던 논리이다. 허울 좋은 '대동아 공영권'의 논리 속에서 미·영 세력을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징병, 징용, 정신대 강제 동원이 자행되었다. 그렇게 끌려간 수십만의 사람들은 전쟁 소모품이 되어 죽어갔다.

 

'대동아 공영권'이란 말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은 징병, 징용, 정신대 피해와 결부되어 상당히 크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영향이 상당부분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조선, 중국, 일본의 단결을 도모하는 '삼화주의'에 빠져들었다. 안중근은 러·일전쟁이 황인종과 백인종의 싸움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일본의 승리를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김옥균이 빠져들었던 '삼화주의'나 안중근이 사로잡혔던 황인종과 백인종의 싸움이란 명분을 이어받은 게 2차 대전 당시의 '대동아 공영권'이었다.

 

1950년대 부활된 동아시아 세계론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에서 1950년에 이르러 '동아시아 세계론'이 대두되었다. 일본사가 아닌 '동아시아 세계사'의 관점을 바탕에 둔 이론이다. 왜 '동아시아 세계론'일까. 왜 일본은 1950년대에 이르러 동아시아 세계론을 부각시켰을까. 1950년대의 '동아시아 세계론'은 2차 대전 당시의 '대동아 공영권'이란 관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즉 그의 '동아시아 세계론'은 1950~60년대의 일본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 속에서 얻어진 세계사 구상이었다. 요컨대 니시지마의 동아시아 세계론이 강조하는 것은 이 논(論)이 과거 회귀의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개념 나열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는 부분이다. (책 속에서)

 

니시지마 시다오는 일본 '동아시아 세계론'을 주장했던 핵심 인물이다. 그의 핵심 논문을 엮어 책으로 편찬한 것이 <일본 고대사 인식>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과는 달리 니시지마는 일본의 현실 문제에 대한 실천적 고민에서 '동아시아 세계론'을 전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1950년대 일본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시련을 딛고 다시 경제 도약을 이룬 시기였다. 이 시기 한국전쟁은 일본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독도 문제에 일본 정부가 공식 발언을 시작한 시기도 1950년대였다.

 

이런 시기에 새롭게 등장한 '동아시아 세계론'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부각되었던 '대동아 공영권'과는 별개의 이론인지, 겉은 다르지만 내용물은 비슷한 이론인지 궁금해진다.

 

책을 읽다 보면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일본 중심의 역사 인식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면서 한국사가 매몰되고 왜곡되는 현상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기정사실화, 일본 중심의 소책봉 체제, 기마민족 정복설에 대한 애매한 접근, 조선의 개항에 대한 일본 중심의 인식 등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우리 입장과 관련된 사실에서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서 살펴보자.

 

임진왜란에서 조선 정복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일본은 규슈(오키나와)를 점령했다. 강화도 조약을 강요하기 전 일본은 대만을 점령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은 독도를 점령하기까지 했다.

 

주변국의 상황이 약화되면 일본은 노골적으로 침략적 행동을 보여주었다. 2008년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떤 모습일까. 쇠고기 파동에서 보여주듯 검역 주권도 지키지 못했고, 국민의 건강권도 위협받고 있다고 국민들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에게도 북한에게도 미국에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본도 독도 문제로 한국에 결정타를 먹였다.

 

1950년대 부각되었던 '동아시아 세계론'은 2008년 현재 어떤 형태로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까. 독도 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의도 속에 '동아시아 세계론'이 살아있는 건 아닐까. 그 논리는 1930년대 후반의 '대동아 공영권'의 맥락과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거창한 구호 속에 담긴 본질이 우리의 삶을 파괴할 수 있듯이,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세계론'의 논리는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 되어 주변국 위협의 이론적 바탕이 될 수 있다. 이 비수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일본의 고대사 인식>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니시지마 시다오/이성시 엮음/송완범 옮김/역사비평사/2008.5/15,000원

2008.07.19 11:4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니시지마 시다오/이성시 엮음/송완범 옮김/역사비평사/2008.5/15,000원

일본의 고대사 인식 - '동아시아세계론'과 일본

니시지마 사다오 지음, 이성시 엮음, 송완범 옮김,
역사비평사, 2008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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