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국·보신탕 논쟁, 우리에게 이익인가

[주장] 고유의 전통음식을 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권리부터 찾아야

등록 2008.07.19 13:34수정 2008.07.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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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시작되면 나오는 논쟁 가운데 하나가 개장국, 보신탕 논쟁입니다. 개고기 먹는 문화를 찬성하는 분들과 반대하는 분들의 견해차가 심한 편인데요, 저는 논쟁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화된 세상에서 상대의 식습관과 기호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면 되기 때문이지요. 


저도 25세가 될 때까지는 개장국을 먹지 못했습니다. 안 먹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네요. 즐기는 어른들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거든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어머니의 반대와 초등학교 때 강아지(메리)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는 일제가 호남의 쌀을 수탈해가려고 지은 정미소 창고를 끼고 있는 골목이었는데, 하루는 개를 잡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저는 그들이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몰랐지요. 그런데 마루 밑에 있던 '메리'는 대문 앞까지 뛰어나가며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짖어대더라고요. 개를 잡는 사람들이 화난 표정으로 '이 개 조심허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후각이 발달한 동물의 본능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 알았습니다. 하긴 그들이 오건 말건 먹이만 찾으러 다니는 개들도 있더라고요.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개를 잡는 사람들이 골목 끝에 살던 승구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창고 철문에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본 순간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승구네 어머니조차 무섭게 보였으니까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한데, 처참한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 것도 호기심이 많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창고 철문에 매달려 침을 흘리던 강아지가 병치레하던 승구네 아버지를 위해 죽은 것을 알고부터 승구네 어머니가 이해가 되었고 나빴던 이미지도 변해갔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개 잡는 사람들의 몽둥이를 맞고 죽어가는 모습을 재미삼아 지켜볼 사람은 없을 터이니까요.

집에서 키우던 '메리'에게 몇 년 동안 쏟았던 정과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성인이 되도록 개장국을 먹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군산에서 유명했던 개장국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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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굵기는 하지만 지금도 고기를 손으로 찢어 넣는 계순옥 개장국. 칠순을 바라보는 주인의 한마디에서 김치 하나라도 어머니가 해오던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엿보입니다. ⓒ 조종안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군산의 개장국 애호가들은 계순옥, 대전옥, 연산옥을 즐겨 찾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골목에서 영업을 하며 손님 끌기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던 대전옥과 연산옥은 이사를 가거나 폐업했고 영화동에 있는 계순옥만 칠순이 가까운 아들이 60년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개장국 전문업소인데도 국물과 양념, 고기를 조리하는 방법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주인들은 나름의 요리방식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손님들도 자기 기호에 맞는 업소를 찾아다녔습니다.

대전옥은 국물이 설렁탕처럼 뽀얗고 들깨를 껍질째 갈아 넣어주었는데, 고소해서 좋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연산옥은 들깨를 통으로 넣어주고 국물도 양지 국물처럼 맑았는데요, 손님들은 담백한 국물과 가끔 씹히는 들깨의 고소한 맛을 즐겼습니다. 계순옥은 국물이 대전옥과 비슷했는데 다른 업소와 달리 고기를 손으로 정성스럽게 찢어서 넣어주었습니다.   

손님들의 평가는 다양했습니다. 손으로 가늘게 찢으니까 씹히는 게 없어서 계순옥은 별로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게 좋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연산옥 국물은 맹물 같아서 싫다는 사람과 담백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요. 들깨를 갈아서 넣어주는 대전옥은 땅콩가루를 섞는 것 같아 통깨를 넣어주는 연산옥이 좋다는 사람들을 보며 '장사하기 참으로 어렵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계순옥은 중년층이 즐겨 찾는데요. 익은 부추김치의 개운한 맛은 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육을 시키면 부추김치가 따라나오지만, 탕을 주문하면 부추 겉절이만 나옵니다. 그래도 인심은 살아있어 탕 한 그릇을 시켜먹어도 주문하는 손님에게 익은 부추김치를 내주더라고요.     

어쩌다 계순옥 앞을 지나가면 주인아주머니와 종업원들이 대나무 평상에 둘러앉아 개고기를 결대로 찢느라 손놀림이 바쁩니다. '개고기는 칼을 대지 말아야 한다'는 전례를 따르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계순옥이 있는 영화동은 양공주들과 살림을 차린 미군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는데, 개장국을 즐겨 먹는 미군도 있었고, 먹지 않아도 손가락질을 하거나 흉을 보는 미군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설렁탕집에는 소머리가, 돼지국밥집 가마솥에는 돼지머리가 담겨 있듯 대전옥, 연산옥, 계순옥 가게 앞의 가마솥에도 항상 불에 그슬린 개가 한 마리씩 담겨 있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흉물스럽다며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88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유명 여배우의 비난 한마디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박도 제대로 못 하고 개장국 이름까지 바꾸게 된 이유는 정통성이 결여된 대통령에 국력까지 약했던 게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장국은 정말 몸에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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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가가 개고기에 버금가는 부추김치. 사진은 익은 부추김치인데요. 새콤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입니다. 계순옥을 상징하는 반찬이기도 하지요. ⓒ 조종안


미식가인 저는 스물다섯 살 때 친구들의 끈질긴 권유로 개장국을 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주 먹는 것은 아닙니다. 야외에서 불에 그슬린 개고기를 먹는 것도 말만 들었지 경험은 없고, 일 년에 4-5회 친구나 가족들과 단골 개장국 집을 찾는 정도이지요.

어쩌다 개장국이 정말로 몸에 좋으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때는 개고기보다 개장국에 들어가는 부추와 들깨, 깻잎, 고사리 등 양념과 곁들여 먹는 반찬을 중심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30년 넘게 개장국을 먹으면서 나름대로 쌓인 경험이라고 해야겠지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했듯 땀을 흘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는 자체가 우선 몸에 좋습니다. 고기에도 영양소가 들어 있겠지만, 개장국을 먹을 때 가장 많이 먹는 부추가 생각보다 몸에 좋다는 것입니다. 밥을 해먹는 누님과 돌아가신 어머니는 부추를 '솔'이라고 해서 저도 그렇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라도 방언이더군요.

개장국과 금상첨화인 부추는 대표적인 열성 식품으로 간과 신장에 좋아 <동의보감>에는 '간의 채소'라 적혀 있습니다. 혈액순환을 돕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서 몸이 찬 사람에게 좋고 정력을 증강시키는 작용도 개고기에 버금갈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추를 소개하는 문헌에는, 한번 심어놓으면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해서 '게으름뱅이 풀'이라고도 하고, 강정(强精)효과가 뛰어나 '양기초'라 적고 있습니다. 한방에서도 '구자'라고 해서 강정제로 쓰인다고 하니 부추의 효능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마늘줄기와 양파를 찍어 먹는 쌈장도 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개장국 한 그릇을 먹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적지 않은 콩을 먹게 됩니다. 또 성인병 예방, 변비해소, 다이어트 효과, 중풍 예방에 탁월한 들깨와 고혈압에 좋다는 양파의 효능도 무시할 수 없지요. 깻잎 고사리도 빼놓을 수 없는데,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장국에 들어가는 양념과 반찬들이 모두 몸에 좋은 음식으로 짜여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먹을 권리를 찾을 때 

수백 년 전부터 우리의 전통음식으로 내려온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 취급하는 사람들이 적잖은데 일제 식민지시대의 잘못된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조선을 강탈한 왜인들이 개고기를 싫어했거든요. 그러니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려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그들이 음식문화라고 가만두었겠습니까.

일제는 1920년대 초 조선어말살정책과 함께 자기 것을 비하하도록 하는 식민지 교육을 펼쳤습니다. 개고기 음식문화도 영향을 받아 미개한 사람들이나 먹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야만적 문화라며 혐오 식품으로 분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잘못된 교육의 잔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수치스러울 따름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김치와 된장냄새를 싫어했던 미군들이 남한에 주둔했는데 그들 역시 왜인들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요즘도 애완견을 기르는 사람들의 개고기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요. 잘못된 교육과 외세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우리 것을 아끼고 전통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수준 낮은 사람으로 취급받던 시대를 살아온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가장 심했던 때가 이승만, 박정희 시대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는 판소리를 하는 여성은 술집 작부 취급을 받았고, 영어를 자주 사용해야 식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굿을 못하게 하고, 머리와 수염도 마음대로 기르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지식층들은 대부분 일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교육자가 심했는데, 왜인들이 싫어하고 비하하는 개고기 음식은 요리책에 소개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영향이 미군정을 거쳐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요.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요리책에 개고기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이지요. 

언제부터인지 개장국 집들이 뒷골목으로 쫓겨나고 개장국 이름도 해괴하게 바뀌면서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88올림픽이 거부당하고 국산 상품 불매운동이 경제를 망친다는 논리를 내세워 그러한 조치를 취한 모양인데요. 결과는 제2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절통한 일이지요. 외국인의 비판이 무섭고 외교에 영향을 받는다고 전통음식을 못 먹게 하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처럼 국민이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팽개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외국인이 개고기 식용에 대해 비판을 하면 당당하게 맞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고유한 음식문화이기 때문이지요. 유럽과 미국인들은 중국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비난하거나 북한의 단고기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은 가장 큰 시장이고 북한 역시 당당하게 대항하기 때문이지요.

해서 지금은 먹는 문제로 우리끼리 논쟁을 벌이기에 앞서, 우리의 음식 문화를 비하하고 헐뜯는 외국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하자 정파와 세력을 초월해서 일본 대사관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듯 우리가 좋아하는 전통음식을 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권리부터 찾자는 것이지요. 
#개장국 #보신탕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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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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