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를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④] 티벳하우스코리아의 탠진 남카 스님

등록 2008.07.22 16:49수정 2008.07.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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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로 향하는 교통과 통신이 차단되었고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들은 봉쇄되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티베트에 평화를'이라는 주제로 '티베트평화연대'에서 마련한 릴레이 기고를 싣습니다. 학자, 시민운동가, 국제문제전문가, 문인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릴레이 기고로 티베트 사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말]

티벳하우스코리아의 텐진 남카 스님과 빈나2020운동 간사인 김재욱 목사가 대담을 하고 있다. ⓒ 티베트평화연대


한국에는 현재 30여명의 망명 티베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스님들이 10여명, 이주노동자들이 20여명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난민 비자로는 입국조차 불가하기에 대부분 인도나 네팔 국적이다. 스님들은 한국과 티베트의 불교교류를 위해 종교나 유학 비자를 얻어 체류하기에 형편은 좀 낫다. 그러나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워낙 많아 이들에게 한국은 그리 편안한 나라가 아니다.

지난 4월 티베트인들이 대거 참여한 평화의 성화봉송 때는 다수의 티베트인이 시청 앞 광장에서 중국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티벳하우스코리아의 남카 스님은 엄연한 티베트인임에도 유학생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국적을 중국으로 고쳐 기재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은 무엇보다 현실에서 절절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현재 망명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단체는 2곳이다. 2000년 부산 광성사에 처음 문을 연 한국티베트센터는 수년째 티베트 불교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창립을 준비한 티벳하우스코리아는 얼마 전 일산 여래사에 둥지를 틀었다. 티벳하우스코리아는 세계 20여 곳에 사무소를 둔 달라이 라마 동아시아 대사관의 한국지부 격이다.

이곳의 대표인 텐진 남카 스님(Ven. Geshe Tenzin Namga)을 빈나2020운동 간사인 김재욱 목사(문화행동바람 대표)가 만났다. 텐진 남카 스님은 8세 때 남인도의 간덴 사원으로 출가하여 게시 하람빠 학위(불교학 박사)를 받은 학승. 부모님이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한 티베트 망명 2세이기도 하다.

대담은 7월 3일 오전 일산 여래사의 티벳하우스코리아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의 전문으로 질문은 김재욱 목사가 답변은 남카 스님이 했다.

ⓒ 티베트평화연대

- 티벳하우스코리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먼저 소개를 부탁드릴까요?
"티베트는 현재 중국에 나라를 빼앗겨 대사관이 없지만,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정점으로 하여 주요 국가에도 대표부 사무소가 있습니다. 일본에 동북아 대표부가 있는데 대사님이 한국에 자주 오실 수 없는 형편이라 이쪽 일을 제가 돕고 있습니다. 이곳 일산 여래사에서 사무실과 숙소를 마련해주셔서 제가 여기 상주하면서 일을 보고 있는데요, 티벳하우스코리아는 달라이 라마 일본 사무소의 한국지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티베트 사람 이름에는 유달리 '텐진'이라는 이름이 많은 것 같던데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텐진에서 '텐'은 불법 즉 부처님 가르침을 말하고, '진'은 '지니다, 잘 배워 지키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지니다'라는 뜻입니다. 티베트에서 이름은 이런 식으로 대개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도 텐진 갸쵸시거든요. 남카는 하늘이란 뜻이 있습니다."


- 어릴 때 출가 하셨다고 들었는데.
"티베트에서는 출가하는 것을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버지는 티베트 동부 캄 지방 분이시고 어머니는 라싸가 있는 우짱 지역 분이신데, 두 분 다 망명하셔서 결혼하셨어요. 부모님의 축복아래 저는 8세 때 출가를 할 수 있었습니다."

- 굉장히 어릴 때 출가를 하셨는데요. 티베트에서 7, 8세 아이들은 뭐하고 지냅니까?
"티베트 문화는 불교영향이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은 대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데리고 절에 다니는데, 절에 가면 꼬라(경전을 담아 돌리는 통)를 돌리고 진언(범어 만트라를 외는 신앙행위)하는 등 일상적인 신앙활동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집니다. 부모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기도문 배우기도 하구요. 요즘 망명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티베트 망명정부가 운영하는 티베트 어린이학교에 다닙니다. 망명 후 제일 먼저 지은 것이 어린이학교였거든요."


- 티베트 하면 추운 나라로 생각되는데 4계절이 다 있습니까?
"춥지만 4계절은 다 있죠. 불교 경전 안에는 6계절이 있다고 하는데, 여름과 겨울을 둘로 나누어서 티베트에서도 6계절이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 티베트에는 출가한 스님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많은가요?
"1959년 중국에 점령될 때 전체 6백만 인구 중에 60만명이 승려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9세기 티송데짼왕 때 '중국에 보낸 티베트 군대만 30만, 나중에 또 30만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뒤에는 출가자가 많아지면서 군인도 줄고 인구도 줄었다고 합니다. 캄 지방의 경우 5명의 자녀를 낳으면 4명이 출가하도록 했을 정도로 출가가 장려되었습니다."

- 출가한 스님들이 많으면 경제 생산이 어렵지 않은가요? 국가 경제에 해가 된다는 중국의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티베트 사람들은 출가를 축복이자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도 자식이 출가하기를 원합니다. 한 가족 안에 훌륭한 스님이 있으면 그것을 가장 큰 명예로 여기니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자식이 출가한 경우라고 생각하기에, 자식이 출가한 부모가 편하게 간다고 합니다. 선배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스님이 서른다섯 살쯤에 승려생활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예언하자, 어머니께서 당신이 스님 못하면 나는 살 가치가 없으므로 죽겠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경제활동 문제는 티베트와 한국의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티베트에서는 일반스님들도 경제활동을 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장사도 했어요. 물론 절의 규모가 컸고 그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의 보시가 중요했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왕들도 티베트 사원에 매우 자주 큰 보시를 했습니다. 중국 왕들이 신심으로 보시한 것이지 강제로 한 것이 아니었듯 티베트인들의 시주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승려들이 민중들을 착취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티베트나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5, 6년 전부터는 중국인 시주자가 제일 많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몽골을 비롯한 중국 왕들이 티베트불교의 가장 큰 시주자였듯 지금은 중국 신도들이 미국을 제치고 가장 많이 시주합니다.

중국 통치 이전의 티베트 불교가 매우 온전한 것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도 '기독교와 같은 현대종교처럼 병원·학교·고아원을 지어 시민들을 돕는 것을 불교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티베트도 시대에 맞게 변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다만, 과거를 일방적으로 나쁜 것이라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물어보겠습니다. 중국은 50년대 이전의 티베트 사회는 5%의 승려들이 폭압을 휘두르던 노예제 사회였다고 말합니다.
"59년 티베트 인구 6백만 가운데 60만이 승려였습니다. 당시 인구비를 보면 일단 5%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되구요. 사원이 대토지를 소유하는 경우나 스님들과 함께 사원에 속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관계가 중국이 말하는 폭력적인 노예제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분제도도 다른 봉건제 사회와 비교하면 훨씬 자유로웠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제성 여부입니다. 불교 교리에 입각해서 사냥을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점에서는 억지로 못하게 하는 등 강제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중국의 노예처럼 권력이나 사회체제가 통제한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중국 강점 이전의 티베트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지만 오히려 중국 지배 체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왔으니까요.

ⓒ 티베트평화연대


- 중국의 불교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달라이 라마 존자께서 1950년대 중국 모택동의 초청으로 처음 방문했 때 모택동은 공식석상에서 '티베트 불교와 문화는 건드리지 않겠다. 종교 문화와 관련해서는 무엇이든지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께서 알아서 하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모택동은 달라이 라마의 귀에 대고 '그래도 종교는 독'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종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티베트는 독립국인가요? 아니면 중국 정부 주장대로 예부터 중국의 일부였던가요?
"티베트는 1959년까지 독립국가였습니다. 중국노인들이 티베트 역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법칙 때문에 티베트 역사에 대해, 실제 상황에 대해 말하지 못합니다. 공산당 정부가 새로 만든 역사를 배웁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유명한 배우 이연걸은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모시지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장년 이하의 세대에게 티베트는 '하나의 중국'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노년세대에게 티베트가 원래 중국의 일부였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티베트가 원래 독립국이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 역사적으로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중국과 티베트는 수천년 동안 종교적인 면, 정치적인 면에서 이웃 국가로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웃으로 같이 살아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원나라 황제가 궁궐 밖으로 마중을 나가는 사람은 달라이 라마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시주와 정치적 후견인, 또는 영적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5대 달라이 라마도 만주(청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황제가 스승으로 대접했기에 밑의 신하 자리가 아니라, 황제의 옆에 앉았다고 합니다. 몽골과 만주는 티베트와 매우 밀접한 관계였지만, 이것은 지금 중국이 주장하는 속국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거나 세금을 걷어야 맞습니다만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티베트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스승 역할을 맡았고 몽골·만주는 시주이자 후견인이었습니다.

더구나 몽골과 만주는 한족의 나라, 중국이 아닙니다. 중국 독립의 아버지인 쑨원도, 공산혁명지도자인 모택동도 청나라가 무너진 것을 '한족의 독립'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니까요. 한족에게 청나라, 원나라는 이민족이 지배한 역사입니다. 그런 그들이 태도를 바꾸어 청나라도 원나라도 자기 역사라 합니다."

ⓒ 티베트평화연대

- 요즘 티베트 젊은이들은 어떤가요? 벌써 중국에 강점된 지 60년이 흘러 민족적 정체성이 많이 옅어지고 식민사관에 젖지는 않았는가요?
"티베트 내에서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티베트어를 써서는 취직도 못 하고 대부분 한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도 살 수 없습니다. 캄 지방은 중국말을 쓴지 너무 오래됐습니다.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87년 갑자기 돌아가신 판첸 라마의 노력이 아쉽습니다. 당시 티베트어 교과서도 만들고 학교 개원을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뒤로 교과서도 없어졌고 티베트어 배우는 학교도 없어졌습니다. 이런 결과로 지금 티베트 본토 사람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 중국의 티베트 정책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80년대 초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호요방이 티베트에 왔을 때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어려움 속에서도 티베트 사람들이 조캉 사원에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인간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티베트 사람들은 중국사람과 분명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면서 티베트인들의 종교적 성향을 인정해주는 태도를 취했지만 그는 얼마 안 있어 쫓겨났습니다.

이후로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문화통치와 경제적 병합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일본이 행한 것처럼… 민족의 말과 글, 종교를 탄압해 얼을 빼앗고자 하는 일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한족이 대규모로 이주하고 칭짱철도를 통한 중국의 경제적 침략과 수탈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중국은 지금 티베트가 대단히 좋아진 것처럼 말하지만, 제 아버지 고향인 캄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중국 정부의 탄압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이제 좀 개인사를 여쭈어 봐야겠는데요. 한국에는 어떤 인연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인도에서 저는 많은

덧붙이는 글 |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에 사용된 글씨체는 서예가 김성장님의 글씨입니다. 대담 정리는 티베트평화연대 정웅기 대변인이 했습니다. 남카 스님과 정웅기 대변인은 7월 22일(화) 저녁 7시 30분 인권연대교육장에서 "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2008 티베트 항쟁"이란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합니다. 문의 02-336-5642(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 티베트평화연대 www.peacetibet.com


덧붙이는 글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에 사용된 글씨체는 서예가 김성장님의 글씨입니다. 대담 정리는 티베트평화연대 정웅기 대변인이 했습니다. 남카 스님과 정웅기 대변인은 7월 22일(화) 저녁 7시 30분 인권연대교육장에서 "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2008 티베트 항쟁"이란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합니다. 문의 02-336-5642(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 티베트평화연대 www.peacetibet.com
#티베트 #텐진 남카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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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의 폭력적인 탄압에 항의하고 한국인들의 지원과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시민,평화,종교,인권단체등이 모여 3월25일에 결성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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