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시녀 아닌 스승으로 만나뵙고 싶습니다"

KBS 보궐이사 강성철 교수에게 드리는 제자의 편지

등록 2008.07.23 10:53수정 2008.07.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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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시민, 네티즌, 언론인들이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저지와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며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시민, 네티즌, 언론인들이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저지와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며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강성철(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2008년 부산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직을 수행중인 정치외교학과 04학번 박정훈이라고 합니다. 같은 사회대 건물 아래 있으면서도 교수님의 수업 한 번 얼굴 한 번 뵙지 않고 이렇게 글로 인사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들을 대표하는 공인으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무례한 줄 알면서도 편지 올립니다.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국민은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촛불은 쉬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대통령은 컨테이너박스를 쌓아올린 채 대화를 거부하고, 촛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요, 기다리기만 한다면 다행이지요. 전투경찰들을 보내 곤봉과 방패로 국민을 짓밟고 살수차를 통해 무력으로 촛불을 진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공익을 대변해야 할 언론은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이러한 폭력진압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다가 국민들의 요구가 높자 주요하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일부 언론은 빼고요. 국민은 그때부터 권력이 왜 언론을 장악하면 안 되는지를 알았습니다. 언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국민의 대변인이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최측근인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혀놓고, 정연주 KBS 사장에게 사퇴압력을 가하고, YTN 사장을 최측근인사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멀리 서울의 일로만 알았던 권력의 언론장악이 제가 살고 있는 부산에까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강철규 교수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KBS 이사였던 신태섭 동의대학교 교수님은,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KBS 이사직에 대한 사퇴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맞섰던 교수님은 대학에서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교수가 아니므로 이사 자격이 없다면서 KBS 이사 자격까지도 박탈하였습니다.

 

대학 사회가 이렇게 썩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권력에 아부하는 일부 대학의 몰지각한 행태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정의를 지키려는 대학의 교수님들은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이 싸워나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교수님의 이름을 언론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비어 있는 신태섭 교수님의 KBS 이사직 자리를 교수님이 가지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 눈을 의심하며 여기저기 교수님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신태섭 교수님처럼 국민을 위한 언론을,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을 위해 이사직을 수락하셨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들은 것은 교수님의 이상한 경력과 행적들이었습니다. 한나라당에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공천도 받고자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본인은 부인하고 계시지만 언론이 이미 보도한 내용입니다.) 왜 하필 한나라당을 걸고 넘어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나라당의 정치인이 되고자 했던 어떤 사람이 한나라당에 적합한지를 심사하셨던 교수님께서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저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행정학에 대해 문외하지만 감히 말씀 올립니다. 행정학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를, 한 명 한 명의 국민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잘 다가갈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의 목적 역시 사람에 대한, 그리고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되고자 하시는 정치인 역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지난 4년 동안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운 '정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교수님, 태양의 열기 속에서도 촛불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고, 태풍의 비바람 속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존재하는 한 촛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가 계속해서 경찰의 소환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체포가 될지 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은 더욱더 간절합니다. 저는 스승과 정치적으로 대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자로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아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교수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스승으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함께 촛불을 들고 정의를 이야기하는 동지로서 만나고 싶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언제나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2008.07.23 10:53 ⓒ 2008 OhmyNews
#KBS #강성철 #신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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