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비 오는 날, 지긋지긋하지"

[이사람] 동대문구 이문동 반지하에 살다가 건물 주인 된 나인순씨

등록 2008.07.26 09:27수정 2008.07.26 09: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반지하주택이 밀집해 있는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 ⓒ 편은지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13층 창에서 비 오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빗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 오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24일 중부 지방에 '최고 250mm 폭우'가 내린 가운데 서울 전역에 '물폭탄'이 터졌다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혹여나 '비에 옷이 젖을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지하철 1호선 '외대역'을 지나쳐 골목길로 걸어 들어오다 보면 '내 집이 물에 잠겨버릴까 봐'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비오는 날이  "두렵기까지 하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다.

a

동대문구 이문동에는 이와 같은 반지하 주택이 많다. ⓒ 편은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반지하 주택가를 1시간여 돌아다니다가 주민들의 소개로 10년 넘게 반지하에서 살다가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살던 건물의 주인이 됐다는 나인순씨를 만나 이야를 들을 수 있었다. 3층짜리 단독주택의 반지하에는 현재 나인순씨의 아들이 살고, 2층에는 나인순씨 부부가 살고 있다.

힘들게 돈 모아 반지하 건물 주인이 됐지만...

나인순씨는 비가 많이 오는데도 근심스런 얼굴로 집 앞에 나와 있었다.

- 비가 엄청 내리고 있는데 왜 나와 계시네요?
"뒷집에서 밤껍질을 버려서 하수구가 막혔나봐. 우리 아저씨가 밤껍질이며, 낙엽들 거둬 내느라 고생했지.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 하수구가 막히면 물이 차서 큰일나거든."


- 비 오는 날이면 항상 이렇게 문제가 생기나요?
"다른 날은 괜찮은데 비오면 힘들지. 특히 하수구가 막혀 버리면 집이 아예 잠겨 버리니까.
거기다가 비 오면 습기가 차서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곰팡이 냄새가 진동해서 집에 발을 들일 수조차 없어. 커튼도 새까맣게 되고. 커튼이나 남자 양복같은 것은 빨기도 힘들 잖아."

a

반지하 주택에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나인순씨. ⓒ 편은지

"집 안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에 나인순씨는 현재 아들이 살고 있다는 반지하 집안을 둘러보며 설명을 했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비 온 후에 청소하는 것도 큰일이겠어요.
"몇 년전에 비가 엄청 와서 허리까지 찬 적이 있어. 그때는 비 그치고도 일주일 내내 청소만 했어. 여기에 물이 차면 가전제품 같은 것은 아예 못쓰게 돼서 버려야 해. 게다가 지하에는 따로 하수구를 설치할 수도 없어서 물을 다 일일이 퍼내야 해."

- 그래도 주인이 되셨으니 전보다는 좀 편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더라고. 물론 세 들어 살 때보다는 내 건물이니까 조금은 여유가 있지. 그런데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살다가 물 차면 나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남은 청소는 주인이 다 해야 하잖아. 어쩔 도리가 없지."

- 주인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네요.
"나도 힘들게 벌어서 건물 지으면 편히 살 줄 알았지. 근데 반지하라서 그런지 아무리 없어도 사람들이 웬만하면 반지하에는 잘 안 살려고 해. 비 오면 수리비는 수리비 대로 나가고, 시커면 곰팡이 때문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청소하느라 허리며 다리며 항상 아프지."

반지하 생활에서 곰팡이 제거제는 필수

a

지하에는 하수구를 따로 설치할 수가 없어서 화장실 문턱이 상당히 높다. ⓒ 편은지

-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반지하 생활 중에 어떤 점이 불편한가요?
"일단 습기가 항상 있어서 곰팡이 제거제는 필수지. 그리고 지하에는 하수구를 설치 할 수 없으니 1층과 하수구의 높이를 맞춰야 해. 그래서 싱크대나 화장실 높이가 일반집들보다 훨씬 높아. 키가 작은 나같은 경우에는 설거지 하기에도 벅찰 정도야. 화장실도 얼마나 높은지. 그런데도 비가 오면 여기까지 찬다니까."

실제로 화장실 문턱이 상당히 높아,  왔다갔다 하기에 불편해 보였다. 싱크대 역시 화상실 문턱 정도로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나인순 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이 힘들겠지만 반지하 같은 경우 크게 작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에서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예전에는 반지하에 사는 온 식구가 옷이며 모든 집기 도구를 챙겨서 위층 주인집으로 피난(?)가는게 다반사였다"며 "반지하 사람들 올라오면 밥해 먹이고 짐 다 맡아 주고, 물 퍼내 주고 난리도 아니야"
라며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1998년과 2001년을 비롯해 집중호우 때마다 동대문구 이문동 등 중랑천 주변 지역은 어김없이 수마(水魔)의 피해를 겪어 왔다. '상습 침수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중랑천 주위에 펌프장을 신축하고 용량도 대거 늘리는 한편 하수도관 개량사업과 제방 증축작업, 준설(浚渫)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인 결과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한다.

a

동대문구 이문동 반지하 주택가 비 때문인지사람들이 거리에 거의 없다. ⓒ 편은지


나인순씨는 "정부에서 애초부터 반지하 주택을 짓지 말게 했어야 한다"며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그 위로 층을 올려서 지었더라면 주차 문제도 해결하고 침수 피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특히 그는 "돈을 모아 힘들게 건물을 짓고 주인이 되었는데, 반지하 방 세도 나가지 않아서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반지하 방에서 나오며 "비 오는 날이 정말 싫으시겠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유, 말도 마. 지긋지긋하지"라며 혀를 내둘렀다.

덧붙이는 글 | 편은지 기자는 8기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편은지 기자는 8기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반지하 #이문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5. 5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