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동부의 소도시 돌(Dole)의 시내에 있는 HLM 건물. 파스퇴르의 생가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은 17세기 무렵 지어진 역사적인 건축물로 파스퇴르의 생부가 피혁 제조 가게를 운영하던 곳이었다.
한경미
HLM 입주의 '좁은 문'... 보통 몇 년 기다려야그러나 HLM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입주하면 원할 때까지 계속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기자가 많기 때문이다. 일 드 프랑스만 해도 현재 300만 명이 HLM에 입주해 있는데(일 드 프랑스 인구 중 23%는 HLM 입주, 25%는 비HLM 월세, 46%는 자기 집 소유, 나머지는 방세를 내지 않고 얹혀사는 경우다), 새 신청자가 37만4천 명(40%는 독거인, 21%는 자녀와 함께 사는 한부모)에 달한다.
신청자가 많기 때문에 HLM을 배정받으려면 3~5년은 기다려야 하는 게 보통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10년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HLM 입주 속도가 빨라져 대기 시간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며 그런 경우에도 주로 공무원이 수혜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본래 취지와 달리 일각에서 HLM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다. 자식이 성년이 돼 독립한 이후에도 방이 3~4개 있는 대형 아파트에 부모(혹은 부모 중 홀로 남은 사람)만 남아서 거주하는 경우 중, 남은 방에 2중으로 세를 놓고 집세를 챙기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입주 비리도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건물임에도 부유한 정치인들이 입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내무부 장관,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한 장-피에르 슈벤느망이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지난해 12월 21일, 슈벤느망이 파리 중심가인 5구에 위치한 HLM에 입주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시장으로 일했던 벨포(프랑스 동쪽 지역)의 HLM에도 1988년부터 입주, 주말 별장으로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갑부인 슈벤느망이 2개의 HLM 입주권을 갖고 있는 것은 이 건물 용도에 어긋난다며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러나 문제는 슈벤느망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많은 정치인들도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HLM에 입주해 있으며, 그 결과 정작 이 건물에 입주해야 할 서민들의 입주가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도마에 오른 HLM... 하루에 15유로로 집주인이 될 수 있게 한다?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HLM 운영 방식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크리스틴 부텡 주택장관은 7월 28일 장관회의에서 주거 실현 방책에 관한 법 초안을 발표했는데, 주요 내용은 HLM 주택에 관련 규정 변경이다. 이 초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세입자의 수입이 입주 조건 금액의 2배를 넘어설 경우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고, 그 후 3년이 지나면 HLM을 떠나게 한다.▲ 자식을 독립시킨 부부에게는 더 작은 규모의 아파트를 배정해 준다. 이 제안을 거절할 경우 세입자는 HLM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세입자가 70세 이상의 노인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에게는 현행과 마찬가지로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한다.)▲ 하루에 15유로(2만3700원)로 집주인이 될 수 있게 한다. 즉 25년 동안 하루에 15유로, 즉 한 달에 450유로(71만1000원)의 집값을 내고, 이후 15년 동안에는 매달 땅값을 내는 방법으로 집의 소유주가 될 수 있게 한다.한 번 입주하면 나오지 않는 HLM의 세입자 관련 규정을 강화해 새 입주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이번 초안의 취지라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가을에 의회에서 논의될 예정인 이 초안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USH(주거를 위한 사회 결합)의 들라바르 회장은 "(이 초안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초안에서는 소득 제한 한도의 2배를 넘어서는 이들만 추방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나중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그 기준을 훨씬 낮게 다시 조정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하루에 15유로면 집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겠다'는 항목도 비판받고 있다. 4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집세를 내야 한다는 이 방안이 실현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부유층의 대통령, 사르코지다시 말하지만, 프랑스 서민들의 주택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사르코지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여 밖에 안 된 만큼 모든 것을 사르코지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간의 정책 기조로 볼 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부르짖던 사르코지가 집권 후 주력한 분야는 고소득층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소득자들이 높은 세금을 내야 하는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에 정착하는 일이 늘어나자, 사르코지 정부는 이들에게 제대로 세금을 걷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대신 '국가의 손실'이라며 이들의 세금 최고 한도를 60%에서 50%로 낮췄다. '세무 보호'라는 명목으로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이 정책으로 인해, 예전에 스위스로 이주했던 유명 가수 조니 홀리데이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르코지의 실체는 부유층의 대통령인 것 같다. 이런 모습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전쟁 담당 장관이 '사랑의 장관'으로 불린 것과 뭐가 다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