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82]심리전에 밀린 영상대감

등록 2008.08.06 14:30수정 2008.08.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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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패(令牌). 명령과 문서를 전달하는 관리가 지녔던 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의주에서 한성까지 천리. 의주대로에 역마의 말발굽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박황을 독촉하는 역마에 이어 용골대와 별도의 칙사 오목도가 한성에 들어간다는 의주부윤의 장계가 창경궁에 도착한 직후, 홍서봉의 치계가 당도했다.

"역관 정명수가 그러는데 '다른 나라 국왕들은 모두 조회를 오니 조선 국왕도 입조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 내린 인조의 입술이 파리하게 떨렸다. 이것은 청나라의 공식 견해가 아니고 용골대의 발언이 아니다. 조선 국적 역관 정명수가 출신을 생각하여 조국에 제공하는 정보일 수도 있고 조선 사절단을 흔들어 놓기 위한 고도의 술책일 수도 있다. 이러한 심리전에 예리하게 판단하여 대처해야 할 임무가 영의정에게 있다. 그러나 홍서봉은 곧이곧대로 임금에게 전했다.

고도의 심리전에 놀아났을까? 역이용했을까?

국왕입조 운운은 절도범을 신문하면서 사형대의 올가미를 보여주며 협박하는 것과 흡사하다. 국왕을 겁먹게 하는 전술이다. 아차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용골대와의 면담에 공포에 질린 임금을 끌어들이면 자신의 역할이 한결 편해진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러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가장 주효한 것은 소용 조씨의 입김이었다. 소원에서 소용으로 승차한 조씨가 일국의 영의정을 움직일 수 있다니 많이 컸다.

"나를 심양에 붙잡아 두고 세자를 내보내려는 것 아닌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소용 조씨가 "저들이 세자를 왕으로 삼으려 합니다"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인조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계속 읽어내려 갔다.


"저들 또한 이 일이 당치않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로 문제를 만들어 그들의 다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가 명나라를 섬길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고려 때 있기는 하였으나 전대의 일을 어찌 그대로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더구나 주상께서는 3년 동안이나 고질병을 앓아 문밖을 나올 수 없으니 심양에 입조하면 필시 길에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돈으로 역관을 매수하라


"6천 냥을 별도로 보내니 정명수의 진의를 파악하라. 그리고 3년 동안의 고질병이라 하지 말고 '바람을 쐴 수 없어 문 밖 출입을 못하고 다리가 약해서 걸음을 걷지 못하니 움직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대답하고 고사(古事)에 대해서는 제기하지 말도록 하라."

의주에서 온 전령에게 고려시대의 일을 거론하지 말라는 밀지를 쥐어 보낸 인조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머리가 무겁고 답답하다. 맑은 공기가 그립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이 핑 돈다. 현기증이다. 궁궐 기둥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인조는 양화당을 나섰다. 궁궐 뜰의 바람이 시원하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다.

"구름을 타고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

숨 막힐 것 같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허나, 군주는 이 나라의 지존.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태산준령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고 노래한 양사언을 불러 해법을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는 명종조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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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 창경궁 양화당 앞에 있는 향나무 ⓒ 이정근


시선을 돌렸다. 언제 심었는지 모를 향나무 한 그루가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수령이 몇 백 년 되어 보이는 향나무는 가지가 부러져 있고 맨 윗 둥에 초록색 이파리가 몇 잎 붙어 있는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선의 모습과 같다. 인조가 향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의주에 불려간 신득연 후임으로 도승지가 된 한형길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나라 칙사가 홍제원을 출발했습니다."

환관의 부축을 받으며 아픈 척 하는 임금님

도승지의 보고를 받은 인조는 양화당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의관을 불러 머리맡에 탕약을 놓아두라 이르고 상궁들로 하여금 이불을 준비하라 명했다. 무악재고개를 넘은 오목도는 모화관에 여장을 풀지도 않고 양화당으로 직행했다. 환관에게 부축하도록 한 인조는 이불과 베개를 치우지 않고 오목도를 접견했다. 오목도가 황제의 칙서를 내밀었다.

"그대가 남한산성에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성은을 입어 나라가 보전된다면 신과 온 나라 백성들은 황상의 공덕을 우러러 받들 것입니다. 모든 명령은 털끝만큼도 어기지 않을 것이며 자자손손 지킬 것입니다.' 짐도 그대가 나의 살려준 은덕을 생각해서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그 말을 실천할 것이라 여겨 그대의 국가를 보전하게 하여 대대로 지켜온 종사를 유지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대는 명을 어기고 일을 그르치는가 하면 우리의 사기(師期)를 그르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사전에 미리 꾸며댈 이유를 마련해 놓고 뒷날 거짓말로 앞서의 말에 꿰맞추었다. 소행이 이와 같으니 이는 그대가 삼전도에서 짐에게 한 약조와 다르다. 때문에 용골대를 특별히 의주에 보내 원인을 밝히고 회주(回奏)하라 명했다. 특별히 유시하니 모든 것을 분명히 하라."
-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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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중랑천에 걸쳐 있으며 도성과 송파나루터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 이정근


칙서를 받아 든 인조의 손이 떨렸다. 땀에 후줄근하던 몸이 덜덜 떨렸다. 마주앉은 오목도는 듣지 못했지만 인조 바로 곁에 있던 환관은 인조의 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심양의 기침소리에 몸이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영남의 선비가 삼전도 비각을 파괴했다는 소리를 들었소. 지금 곧바로 가볼테니 안내하시오."

오목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칙사를 배웅했다. 양화당을 나선 오목도는 곧바로 도성을 빠져나와 살곶이다리를 건너 송파나루에서 배를 탔다. 삼전도비의 훼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인조 #창경궁 #용골대 #홍서봉 #삼전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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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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