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 후보.
연합뉴스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군 제독을 지낸 군인 명가 출신이다. 그 자신도 20여 년 동안 해군으로 복무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셋도 해군에 몸담고 있으며, 그 아들 중 하나는 걸프전에 참전했다.
매케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함대를 이끈 할아버지 못지않게 군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트남전에서 그가 보여준 명예 존중과 불굴의 정신 때문이다.
항공모함에 배속돼 북베트남 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젊은 해군 조종사 매케인은 어느 날 하노이시의 공장 지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했다가 미사일에 격추된다. 두 팔이 부러지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천신만고 끝에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낙하산은 호수로 떨어져 버린다.
익사하기 직전의 그를 끌어낸 것은 베트콩. 목숨을 건진 대신 그는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고문과 구타에 시달린다. 그의 머리칼이 하얗게 쇤 것도 바로 이 때다. 동료 수감자들이 일주일도 못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매케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 후 독방에 수감된다.
몇 년 후 매케인의 아버지가 태평양함대를 이끄는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을 알게 된 북베트남군은 그를 선전 목적으로 석방하려 하나 그는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인 수칙대로 자기보다 먼저 들어온 포로가 모두 석방된 후 나가겠다며 거절한다. 그 후 더욱 심해진 고문과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간수에게 발견돼 실패한다. 결국 지옥 같은 포로 생활을 5년 반이나 한 후에야 그는 석방됐다.
이중혼, 스캔들, 로맨스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아내. 다시는 비행을 할 수 없으리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고 매케인은 재활 치료를 받은 후 비행시험에 합격, 그 후 8년이나 더 해군으로 복무한다.
하지만 해군에서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고 생각하고 슬슬 정치 쪽을 넘보던 그는 우연히 만난 17살이나 어린 한 여성에게 반한다. 장애인이 된 아내와 이혼하고 애리조나 주의 맥주배급회사 사장의 딸인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그는 애리조나 주에서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이 때부터 그의 명예와 정직함은 끝나고 거짓말이 시작된다. 그는 회고록인 <싸울 가치가 있는 것들 Worth the Fighting For(2002)>에서 "헨슬리(현재의 부인)와 데이트하기 이전부터 전 부인 캐롤과는 별거 상태였으며 첫번째 결혼은 1980년 2월에 마침내 끝났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