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을 모독하는 자본주의

<신문배달부의 새벽일기 10> 경험 삼아 배달하겠다는 그들의 무례함

등록 2008.08.09 12:24수정 2008.08.0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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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가난>은 가진 자의 동정적 횡포가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지를 절실하게 그려준다. 주인공은 부잣집 서울대생의 몰래카메라에 완전히 속고만다. 원래 몰래카메라는 '이경규의 어색한 미안함'으로 마무리되는데, 여기서는 그것이 없다. 오히려 '실험결과! 널 앞으로 우리집에서 살게 해 주겠어!'라면서 당당하다. 가관이다. 하지만 섬뜩하다.

 

인간을 치욕으로 만드는 언행보다 그 '행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파렴치한 그 모습에 주인공은 꼭지가 돈다. 정말 가진 자가 세상 모든것을 다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로 하고 있음을 안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라기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신문배달로 힘든 시절을 증명하고픈 연예인과 정치인

 

신문배달은 가난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동시에 상징한다. 실제로 배달을 오랫동안 해보면 이것이 약간의 괴리가 있음을 이해하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신문배달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동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대학원 시절에 장학금 혜택 등에서 타인과 비교해 약간 유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감히 신문 돌리는 사람이 있는데…"라는 식이다. 그래. 나 덕 많이 봤다. 약간 미안하기도 하다.

 

보잘것없는 단순노동 신문배달이 이렇게 나름 유리한 역학관계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연예인, 정치인들이 '힘든 시절'을 아주 의무적으로 강조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 노력은 대게 '신문배달을 해 보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언급했었다. 그런데 난 이것이 못마땅하다.

 

신문배달의 경험은 '가난'을 상징한다.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막상 '부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색한 우리나라에 이만한 면죄부형 커리어는 없다. 그런데 신문배달은 태생 자체의 가난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것을 '악착같이 이겨내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악바리 정신을 동시에 내재한다. 쉬운 말로 '땀의 소중함'이다. 내가 배운 학문에서는 '죽도록 일하고 그것에 만족하라'는 것이 결국 이 악바리정신의 근간임을 주장한다.

 

태생이 서민이다. 그런데 절대 이를 불평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땀을 열심히 흘리면서' 대체보람을 알기를 희망하는 자가 있다. 이게 누군가? 기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재형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숙명을 타고난 인재 말이다. 그러니까 신문배달에 대한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단순한 이 노동에 그러한 이념적 의미를 부과하는 것은 웃긴 일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인생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배달을 하면 인생경험을 과연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나도 4년간의 경험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어떤 것으로도 얻어내지 못할 중요한 교훈도 여러가지 각인시켰다.

 

인생경험을 위해서 신문배달을 한다고?

 

허나! 이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그냥 4년간의 비참한 추억을 다시 돌이켜보니 '좋은 경험'이란 의미를 충분히 첨가할 수 있다는 것을 그저 생각할 뿐이다. 쉽게 말해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신문배달을 하겠다'는 것은 배달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배달부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생계'에 있다.

 

실제로 '인생경험'이라는 거만한 목적으로 신문배달을 경험 삼아 한번쯤 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생계형 배달부에게 굉장한 허탈감을 주는 경우이다. 신문배달부는 그 환장할 상황을 그나마 '웃음'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게 "좋은 게 좋다"는 결론을 고의적으로 내릴 뿐이다. 그것마저 없으면 정말 미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본질은 "이러한 인생 경험을 내가 왜 하고 있을까?"라는 서러움이다. 실제 배달부들은 하루빨리 이 '소중한 인생경험'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따름이다.

 

신문배달이 인생경험의 증거용으로 사용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넓은 식견'을 증명하여 취업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야 하는 그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적인 경험학습의 대상으로 신문배달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범생이'만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하고, 젊은이의 패기를 증명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겸손하게 표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력서 한줄에 '신문배달'을 표기하는 것만큼  효과적인것도 없다.

 

인생 PR이 이렇게 간단하다 보니 취업전선을 일순간에 역전시키고자 하는 대학생들의 체험형 신문배달 지원자가 가끔 있다. 이 친구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순박하다. 일도 열심히 배우고자 하며 동료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순종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길어야 한 달이다. 그것도 정확한 한 달이다. 첫 급여를 받음과 동시에 아주 태연하게 그만둔다. 다음날 새벽에 그냥 출근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지국은 비상이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학교의 학부생이었다. 우연히 만났다. 약간 짜증스럽게 "왜 그렇게 무책임했냐"고 물으니 자기는 취업공부해야 한단다. 그래서 그럴 거면 왜 시작을 해서 다른 사람을 고생시키냐 했더니, "살면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충분히 알았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렇게 4년을 살았단 말인가?

 

그런데 이 친구는 단지 한 달의 신문배달을 아주 악랄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교내 취업지원팀에서 취업희망자의 가상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기업별 맞춤형 자기소개서에 충실했는지를 기계처럼 체크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보게 되었다. "저는 땀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느꼈던 그 노동의 소중함을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그 새벽을 여는 기분으로 귀 회사에 성실히 봉사할 것입니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신문배달에 대한 모독도 이만하면 소송감이다.

 

땀의 소중함을 간직하는것보다 그 비참함을 탈출하고픈 것이 솔직한 심정

 

신문배달은 '땀'이 사람을 이렇게 지치게 하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게 해 주는 일이다. 땀의 소중함? 그런 것 느낄 여유도 없다. 그것은 외부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신문배달을 동정적으로 봐주는 고마운 에피소드일 뿐이다. 물론 이것은 신문배달을 버틸수 있는 원동력으로 피드백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불쑥 가로채는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문배달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신문배달을 통해서 인생을 배우고자 하니까 최초 위험요소를 확인 후 곧 그만두게 된다. 죽을 고생은 한번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위험요소를 축적시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생계형과는 본질부터 다르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 친구는 그 한 번의 위험요소를 자신의 패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평생 설정한다는 것이다.

 

'땀'을 구입한다는 것은 파렴치한 것이다. 현장에서는 가급적 '땀'을 팔아버리고자 하는 사람들 뿐이다. 신문배달을 통해서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서 신문배달을 하는 것은 웃긴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연한 시도' 자체가 신문배달 자체를 모독하는 것이다. 그 태연한 시도는 결국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를 철저히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 그 자본주의 때문에 그 새벽에 그 난리를 쳐야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슬픈것은 단순히 '자본'의 개념에서만 보았을 때 전자의 경우가 사회에서 높은 연봉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정말 뭐 같은 자본주의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8.08.09 12:2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문배달 #가난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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