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6)

― '그의 전화를 받고', '이집트인의 친근한 벗', '저 사람의 이야기' 다듬기

등록 2008.08.10 20:08수정 2008.08.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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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그의 전화를 받고

 

.. 소민 역시 그의 전화를 받고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  《이란주-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2003) 111쪽

 

 ‘혼비백산(魂飛魄散)’은 “깜짝 놀라다”나 “몹시 놀라다”로 다듬습니다. ‘역시(亦是)’는 ‘또한’으로 다듬고요.

 

 ┌ 소민 역시 그의 전화를 받고

 │

 │→ 소민 또한 그에게 전화를 받고

 │→ 소민 또한 그한테 전화를 받고

 │→ 소민도 그가 건 전화를 받고

 │→ 소민도 (아무개) 전화를 받고

 └ …

 

 마주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마주앉은 사람은 전화를 받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끊습니다. 제가 묻습니다. “누구한테서 온 전화야?” 마주앉은 사람은, “응, 어머니한테서 온 전화야.” 하고 대답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한테, “누구의 전화야?” 하고 물은 다음, “누구의 전화였어.” 하고 대답하는 분들도 있을까 하고.

 

 있을 듯합니다. 요즘은. 요즘 사람들 말씀씀이를 생각한다면, “누구한테서 온 전화”가 아닌 “누구의 전화”처럼 말할 듯합니다.

 

 

ㄴ. 이집트인의 친근한 벗

 

.. 이 기묘한 식물은 이집트인의 친근한 벗이었다. 그들은 파피루스를 가지고 종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먹기도 했다 ..  《일리인/심성보 옮김-책ㆍ시계ㆍ등불의 역사》(연구사,1989) 74쪽

 

 “기묘(奇妙)한 식물(植物)은”은 “재미난 풀은”이나 “알쏭달쏭한 풀은”으로 다듬습니다. ‘친근(親近)한’은 ‘살가운’이나 ‘가까운’으로 다듬고요.

 

 ┌ 이집트인의 친근한 벗

 │

 │→ 이집트사람한테 살가운 벗

 │→ 이집트사람이 반기는 살가운 벗

 │→ 이집트사람이 좋아하는 살가운 벗

 │→ 이집트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벗

 │→ 이집트사람이면 모두 반기는 벗

 └ …

 

 토씨 ‘-한테’를 붙일 자리에 ‘-의’를 붙이니 얄궂습니다. 그래서 ‘-한테’로 고쳐 적어야 알맞는데, 이렇게 고친 다음에 뜻을 살리면서 느낌이 조금씩 다르도록 다시 적어 봅니다. 가깝거나 살가운 벗이라면, 누구나 반기는 벗이기도 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벗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집트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풀이기도 할 테지요.

 

 

ㄷ. 저 사람의 이야기를

 

.. 허허실실은 깊고도 오묘한 진리이니 내 장차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 ..  《홍대용/이숙경,김영호 옮김-의산문답》(꿈이있는세상,2006) 24쪽

 

 “깊고도 오묘(奧妙)한 진리(眞理)”는 “깊고도 훌륭한 깨달음”으로 고쳐씁니다. ‘오묘’란 “심오하고 묘하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심오(深奧)’는 “사상이나 이론 따위가 깊이가 있고 오묘하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이리하여 ‘심오’는 ‘오묘’를 가리키고, ‘오묘’는 ‘심오’를 가리키는 국어사전 말풀이가 되는데, 두 낱말 모두 ‘깊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차(將次)’는 ‘앞으로’로 손질해 줍니다.

 

 ┌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

 │

 │→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

 │→ 저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

 └ …

 

 이야기는 ‘누가 누구한테’ 들려줍니다. ‘누구한테서’ 듣는 이야기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저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토씨 ‘-의’만 덜어서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처럼 적으면,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듣겠다는 소리가 됩니다. 이때에는 ‘저 사람한테서’ 들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한테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10 20:0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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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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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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