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잠시 가릴 수는 있으나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기고] KBS-국세청 세무소송 실무총책임자 조남희 KBS 법무위원

등록 2008.08.14 18:16수정 2008.08.1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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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전 사장이 배임 혐의로 체포돼 48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조금 전 귀가했다. 그의 배임 혐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KBS와 국세청 세금소송 실무 총책임을 맡았던 조남희 KBS 법무위원의 글을 받아 싣는다. 조 위원도 최근 검찰의 세 차례 소환조사를 받았으나 더 이상의 소환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조 위원은 이 글에서 "검찰이 고발인의 배임주장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면서 "진실을 잠시 가릴 수는 있으나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고 밝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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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지난 6일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고발인 주장 배임죄 결코 성립될 수 없어"

 

KBS가 1994년부터 세무당국과 세금소송을 하다가 2005년 서울고등법원의 조정권고로 세금분쟁을 종결한 것과 관련해 정연주 전 KBS사장이 배임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나 역시 세 차례 검찰의 소환에 응해 의견을 충분히 진술했다.

 

이 배임사건의 고발인은 KBS에서 10여년간 세금소송을 전담하다가 퇴직한 전 KBS직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정 사장에게 배임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세금소송의 실무 총책임을 담당했던 나는 검찰과 전혀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고발인의 진정내용은 이미 세금소송에서 충분히 검토되었으나 법원은 고발인의 주장을 철저하게 배척하였기 때문에 고발인이 주장하는 배임죄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

 

KBS는 1973년 창립 이래로 광고 수입과 수신료 수입 모두를 법인세 과세대상으로 보아 이를 총수입으로 보고, 여기에서 총비용을 차감하여 법인세액을 산출 납부해 왔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수신료 수입이 법인세 과세대상인지에 대해 논란이 발생했고, 우여곡절 끝에 고발인 주도로 세금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고발인 주장 수용한 법원 판결 단 한 차례도 없어

 

이 소송에서 고발인 주장논리는, 수신료 수입은 방송용역의 대가가 아닌 특별부담금이므로 법인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나, KBS가 광고 수입과 수신료 수입을 받아 지출한 모든 금액은 비용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KBS는 광고수입에서 모든 비용을 차감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과세표준은 항상 마이너스 상태가 되어 결국 KBS는 법인세 등을 납부할 것이 없게 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1994년부터 고발인이 세금소송을 주도한 이래로 위와 같이 주장한 고발인의 논리를 수용한 법원의 판결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법원은 KBS와 같은 비영리법인의 경우 수익사업인 광고부분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하여는 법인세를 납부하여야 하고, 따라서 KBS는 광고 수입에서 광고 수입과 관련된 비용만을 차감하는 방법으로 법인세 과세표준을 산출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다시 말해, 법원은 KBS의 수신료 수입이 법인세 과세대상이 아닌 것은 인정하나, KBS가 광고 수입과 수신료 수입을 받아 지출한 모든 금액을 비용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고, 광고 수입과 관련성이 있는 금액만을 비용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법원의 일관된 판결에도 세금분쟁 해결이 어려웠던 이유는 '광고 수입과 관련성이 있는 금액'을 어떻게 산출해야 하는 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무당국은 KBS의 원가보고서를 근거로 "광고 수입과 관련성이 있는 금액"을 산출했지만, 법원은 원가보고서는 과세의 근거자료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세무당국의 주장을 배척했다.

 

즉 법원은 광고 수입과 수신료 수입을 받아 지출한 모든 금액을 비용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고발인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KBS의 원가보고서를 근거로 한 세무당국의 주장도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법원이 직권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산정방법을 찾아내어 정당한 부과세액을 계산할 의무까지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즉 법원은 세무당국과 납세자가 다투고 있는 납세기준의 적법성 여부만을 판단할 뿐, 그 납세기준이 위법하다고 해서 법원이 적극적으로 정당한 납세기준을 찾아내어 제시할 의무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정당한 납세기준에 대하여는 일차적으로 세무당국이 그 입증 책임을 지는 것이나, KBS의 원가보고서를 근거로 한 세무당국의 입증은 부당하므로, 법원은 세무당국의 과세처분을 일단 취소하라는 의미에서 KBS의 승소로 하되, 세무당국이 새로운 납세기준으로 재처분하라고 판시한 것이다.

 

세금 추징, 불복, 소송제기 등 악순환 반복 뻔한 상황

 

지난 7일 정연주 KBS 전 사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백승헌 회장 등 소송대리인을 통해 자신에 대한 감사원의 해임 요구를 무효로 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 KBS

지난 7일 정연주 KBS 전 사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백승헌 회장 등 소송대리인을 통해 자신에 대한 감사원의 해임 요구를 무효로 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했다. ⓒ KBS

KBS는 법원이 위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이상 소송으로는 종국적으로 세금 분쟁을 종결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대법원은 "과세기준의 합리성이 과세관청에 의하여 일응 입증되었을 때에는 좀 더 사실과 근접한 과세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납세의무자가 입증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판시한 사례가 있었으므로 KBS가 입증책임으로 일단 승소하였다 하더라도 결코 유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2005년 당시 세금소송은 법인세 10건, 부가가치세 7건, 총소송가액 3474억원, 승소금액 2206억원, 패소금액 1241억원 등 초대형 사건으로 커져 있었고, 세무당국은 자신의 논리대로 매년 세금을 추징하고, KBS는 세금을 납부하면서 이에 대한 세금소송을 추가로 제기하는 실정이었다. KBS는 세금추징과 불복, 소송제기 등의 악순환을 반복하기보다는 그동안의 판결에 나타난 법리를 토대로 합리적인 납세기준을 도출하고, 조속히 세금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고발인은 KBS에 재직할 당시 고발인 자신이 직접 품의하여 "착수금 없이 최종 승소 환급되는 경우에만 환급액의 일정률을 수임료로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A변호사와 수임료 계약을 체결했다.

 

세금소송의 결과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KBS가 일부 승소하였으나 그것은 외관상의 승소일 뿐이고, 승소하더라도 이후 세무당국에 의한 재처분이 예정되어 있어 KBS가 실제로 환급받을 수 있는 세금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A변호사는 2006년 7월 18일 자신이 수행한 17건의 세금소송 사건 중 1건에 대하여 KBS에게 15억 7000만 원의 수임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수임료 소송사건에서 고발인은 A변호사를 적극 지원했다. KBS는 A변호사와 고발인을 상대로 1년 3개월 동안 치열하게 다투었고, 2007년 10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고발인 측의 주장논리를 모두 배척하면서 KBS는 A변호사에게 2000만 원만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변호사가 KBS로부터 착수금을 받지 않고 소송을 수행하였으므로 그동안의 노력에 상당하는 수임료는 지급하되, KBS가 세금소송에서 승소하여 세금을 환급받는 것을 전제로 한 수임료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은 이랬다. (2007.10. 9. 선고 2006가합61265 판결)

 

"KBS로서는 관련 세금소송에서 종국적으로 승소한다는 것도 불투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국적으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과세관청에 의한 새로운 부과처분이 예상되어 관련 세금소송으로 법인세 등의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의 조정권고를 통한 과세관청과의 협의로 새로 부과될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등의 산정방법을 명확히 하고, 이미 납부된 법인세 등의 일부를 환급받음으로써 세금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KBS의 방침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사건의 진실은 법원에서 규명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정만 살펴보아도 고발인과 A변호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이 이 사건에 배임혐의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내용도 대부분 이같은 사실을 살피지 않은 채,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왜곡된 정보에 의한 것이다.

 

나는 검찰의 소환에 응해 세 차례 수사협조를 하면서 위와 같은 내용을 충분히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나의 진술보다는 고발인 측 배임혐의 주장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내가 검찰의 소환에 더 이상 응하지 않는 이유는 고발인 측이 주장하는 대로 배임혐의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법원에서 규명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잠시 가릴 수는 있으나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2008.08.14 18:16 ⓒ 2008 OhmyNews
#KBS #정연주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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