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이명박'이 되살아나고 있다. 15일 광복절 축사는 '정권회생 선언'에 다름 아니다. 다음날 국무위원들을 데리고 청와대 뒷산에 오른 것은 '제2 정권 출범 워크숍'을 연상케 했다. 17일에는 각종 민생정책 및 개혁과제를 내놓으며 '이명박식 개혁프로그램'에 시동을 걸었다.
18일 국회는 원 구성 협상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단독 등원 카드를 꺼냈고, 여당 출신 국회의장은 "직권 상정도 할 수 있다"고 호응했다. 공세적 국정운영으로 전환한 이 대통령에게 거대 여당은 든든한 '방패'다.
반면 '쇠고기 정국'에서조차 주도권을 잡지 못한 야권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도 여당에 끌려다니는 분위기다. '무조건 버티기'도 국회 장기 파행에 따른 비판 여론으로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
일찌감치 이 대통령의 수족으로 전락한 검경은 촛불시위 강경 진압, 정연주 KBS 사장 몰아내기, <PD 수첩> 표적 수사 등으로 공안 정국의 기반을 닦아왔다. 이 대통령의 강공 드라이브에 브레이크가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국민적 혼란과 후유증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쇠고기 정국'으로 궁지에 몰렸던 이명박 대통령이 '건국 60주년'을 계기로 공세 모드로 전환한 데에는 '촛불정국'에서의 수세 상황이 반전됐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이 대통령은 18일 글로벌 포털업체인 야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쇠고기 파문에 대해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 국정에 참고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기업 개혁과 제도 개선 등 국가 발전을 위해 올바른 길이 있다면 다소 조금 힘들더라도 일관되게 정책을 확고히 밀고나갈 각오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오른 북악산에서 거듭 '새 출발'을 다짐했다. "시작은 천천히 하는 것이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묵묵히 국정에 매진하자"는 주문이다.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전환 시점을 8.15로 잡은 이유는 전통적인 지지세력의 복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쇠고기 정국'에서 패닉상태 수준까지 휘청인 것은 보수층마자 정권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지지층부터 확실히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쪽짜리 행사'라는 부담 속에서도 '건국 60주년'이라는 구호를 빼지 않고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촛불시위에 대한 유례없는 강경 진압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나, '유전무죄'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대기업 총수와 보수언론 사주들을 특별사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지층을 다져나가는 것과 함께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국정 주도권 확립이다. 이 대통령은 5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3개월만에 10%대로 추락하며 사실상 국정 주도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를 "권력교체기에 있을 수 있는 생체기"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지지율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을 방송과 인터넷에서 찾고 있다.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공격은 이미 대선 전부터 준비되어진 '방송장악 시나리오' 성격이 짙다. 여기에 MBC <PD 수첩>을 '쇠고기 파동'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내친 김에 YTN 사장에 측근을 앉히고, 인터넷에 대한 통제에 나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또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 CEO에 측근이나 뉴라이트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채우고 있고, 실정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중경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대사에 내정하는 인사파행도 강행했다.
특히 여야의 합의까지 뒤집은 채,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국정 주도권 확립의 쇄기를 박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오히려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면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밀고 나가겠다'는 이 대통령 특유의 추진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야성' 잃은 야당... MB 최대 견제세력은 내부에?
그러나 '쇠고기 파동'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 이 대통령의 불도저식 추진력에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공세적 국정운영 기조는 '제 2의 쇠고기 파동'을 불러올 위험성이 크다. 게다가 겉으로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가까스로 20%대에 진입한 낮은 지지율은 목에 가시처럼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80% 가까운 국민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보수층이 결집하고, 거대 여당을 내세워 국정 주도권을 장악한다고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한 셈이다.
MB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국민의 외면 속에서 계속된다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곳은 한나라당이다. 그래서 세간의 이목은 다시 여당 내부로 옮겨져, '박근혜의 침묵'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친박 복당' 이후 침묵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지금 나서면 자칫 차기 대선 싸움을 조기 과열시킨다는 비판만 받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필요할 때가 되면 박 전 대표는 반드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천막당사'로 옮긴 박 전 대표가 "이번에 마지막 기회를 달라"며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대통령의 '독주'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에겐 '이명박 정권의 성공'이 아니라 '한나라당 정권의 성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쇠고기 파동' 한복판에서 "쇠고기 협상 전후에 보인 정부의 자세와 태도에 문제가 있으며, 해결방법이 재협상 밖에 없다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권이 잘못해서 박 전 대표가 약속한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도록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전 대표가 움직일 경우, 보수층의 분열은 물론 이 대통령의 '방패'가 되어야 할 여당마저 흔들리게 된다. 힘들게 구축한 국정 주도권도 한 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차기 대권주자인 정몽준 의원이나 김문수 경기도지사, 남경필,원희룡 등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브레이크 없는' 이명박 정권의 최대 견제 세력은 결국 내부에 있는 셈이다.
2008.08.19 10:1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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