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진책을 하나 사면서

[사진말 (14) 사진에 말을 걸다 73∼79] 스스로 겪어낸 만큼 찍는 사진

등록 2008.08.21 21:22수정 2008.08.2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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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행 사진 혼자 다니면 혼자 담는 사진을 즐기고, 여럿이 다니면 여럿이 담는 사진을 즐기는 마음이어야지 싶으나, 여럿이 다닐 때에는 좀더 오래 머물고 싶다거나 어서 떠나고픈 느낌이 꼭 들곤 해서,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때 서두르게 되곤 합니다.

여행 사진 혼자 다니면 혼자 담는 사진을 즐기고, 여럿이 다니면 여럿이 담는 사진을 즐기는 마음이어야지 싶으나, 여럿이 다닐 때에는 좀더 오래 머물고 싶다거나 어서 떠나고픈 느낌이 꼭 들곤 해서,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때 서두르게 되곤 합니다. ⓒ 최종규

▲ 여행 사진 혼자 다니면 혼자 담는 사진을 즐기고, 여럿이 다니면 여럿이 담는 사진을 즐기는 마음이어야지 싶으나, 여럿이 다닐 때에는 좀더 오래 머물고 싶다거나 어서 떠나고픈 느낌이 꼭 들곤 해서,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때 서두르게 되곤 합니다. ⓒ 최종규

 

[73] 사진 찍는 여행 : 여럿이 다니는 여행에서 여럿이 함께 느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여럿이 좋다고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일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해도, 나로서는 마음에 들어서 좀 더 머물면서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여럿이 함께 움직여야 하기에, 나 스스로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진으로 담기 어렵곤 합니다. 여럿이 함께 움직이기에 내 눈길로는 미처 알아보지 못한 모습을 보아서 좋은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나한테 좀더 사랑스럽거나 눈길이 끌리는 모습을 지긋이 즐기면서 깊이 파고들기란 어렵더군요.

 

a 골목길 사진 고추를 널어 놓는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도, 골목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골목길 사진 고추를 널어 놓는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도, 골목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 최종규

▲ 골목길 사진 고추를 널어 놓는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도, 골목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 최종규

 

[74] 사진에는 무엇을 담아내나 :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담아내는 사진입니다. 남들이 느끼는 모습, 남들이 보았다는 모습, 남들이 생각했다는 모습은 남들이 사진으로 담아내면 될 뿐입니다. 내가 보고 느낀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보니, 어쩐지 남들이 찍은 사진과 견주어서 모자라 보이든 아쉬워 보이든 후줄근해 보이든 하찮아 보이든, 이런 일에 마음쓸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수룩해 보인다면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이 내 사진 맛입니다. 어설퍼 보인다면 어설퍼 보이는 모습이 내 사진 냄새입니다. 꾀죄죄해 보인다면 꾀죄죄해 보이는 모습이 내 사진 느낌입니다.

 

a 꽃 한 송이 꽃을 찍는 사진은 무척 많습니다. 꽃밭에서 찍을 수 있고, 꽃병에 꽂아 찍을 수 있으며,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꽃을 담을 수 있는 한편,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꽃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꽃을 찍는 사진은 무척 많습니다. 꽃밭에서 찍을 수 있고, 꽃병에 꽂아 찍을 수 있으며,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꽃을 담을 수 있는 한편,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꽃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 꽃 한 송이 꽃을 찍는 사진은 무척 많습니다. 꽃밭에서 찍을 수 있고, 꽃병에 꽂아 찍을 수 있으며,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꽃을 담을 수 있는 한편,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꽃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75] 낡은 사진책을 하나 사면서 : 판이 끊어진 낡은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봅니다. 새책으로 만날 수 있다면 새책으로 진작에 장만했을 테지만, 헌책방에서도 어쩌다가 만나는 책이라서, 꽤 낡은 책이지만 그지없이 반갑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사진 참 좋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책이 좀 낡아서 망설여집니다. 낡은 책인데, 조금 더 돌아다니면서 조금 더 ‘깨끗한’ 판이 나오면 그때 장만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도 좋고 책도 좋지만, 너무 낡아서 아쉬웁다는 생각이 몽실몽실 듭니다. 이렇게 한참 만지작거리면서 제자리에 꽂아 놓았다가 다시 끄집어 내었다가 하는 동안, ‘오늘 이 자리가 아니면 이 사진책을 언제 또다시 보겠니?’ 하는 생각이 들고, 낡으면 낡은 대로 보고, 번듯하면 번듯한 대로 보면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책을 이룬 종이가 낡았지, 책에 찍혀진 사진이 낡지 않았습니다. 뒷날 다른 헌책방에서 ‘깨끗한’ 판이 보이면 그때는 또 한 권 장만해서 겹으로 가지고 있거나, 낡은 책 하나는 이웃한테 선물해 주자고 생각하면서, 책값을 치릅니다.

 

a 사진 한 장 얻기 사진 한 장 얻고 난 다음에는, 저한테 찍혀 준 사람이나 집이나 자연이나 뭇 목숨붙이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곤 합니다.

사진 한 장 얻기 사진 한 장 얻고 난 다음에는, 저한테 찍혀 준 사람이나 집이나 자연이나 뭇 목숨붙이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곤 합니다. ⓒ 최종규

▲ 사진 한 장 얻기 사진 한 장 얻고 난 다음에는, 저한테 찍혀 준 사람이나 집이나 자연이나 뭇 목숨붙이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곤 합니다. ⓒ 최종규

 

[76] 여덟 해 만에 첫걸음 :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어느 헌책방을 찍은 사진을 보다가, ‘내가 찍은 사진이기는 하지만 퍽 괜찮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아 온 지 얼추 여덟 해쯤 되는데, 이제서야 ‘내 마음에 들 만한 사진’이 한 장 나온 셈이랄까. 먼 뒷날 누군가 내가 찍은 사진을 그러모아서 ‘아무개 씨가 찍은 헌책방 사진입니다’ 하고 내세울 만한 사진이 하나 나왔다고 할까.

 

 그러나 이 사진 한 장은, 내가 걷는 기나긴 사진길에서 첫걸음일 뿐, 마지막이나 마무리가 아니다. 여덟 해가 무르익어 겨우 한 장 마음에 들었던 만큼, 이 헌책방 한 곳 이야기를 사진책 하나로 묶어낼 만큼 ‘내가 찍고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더 많이 찍도록 땀을 쏟아야 한다.

 

a 꼭 그때 사진 사진기를 늘 손에 쥐고 있어야, 꼭 그때를 말하는 사진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나라〉 사장님이 책값을 공책에 적으면서 셈하는 모습.

꼭 그때 사진 사진기를 늘 손에 쥐고 있어야, 꼭 그때를 말하는 사진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나라〉 사장님이 책값을 공책에 적으면서 셈하는 모습. ⓒ 최종규

▲ 꼭 그때 사진 사진기를 늘 손에 쥐고 있어야, 꼭 그때를 말하는 사진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나라〉 사장님이 책값을 공책에 적으면서 셈하는 모습. ⓒ 최종규

 

[77] 잃어버린 줄 알던 렌즈를 찾으면서 :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못 쓰고 있던 렌즈를 거의 반 해 만에 찾았다. 찾고 보니, 참 잘 보이는 자리에 반듯하게 놓아 두고 있었더라. 그런데 왜 그동안 못 보고 엉뚱한 곳만 들쑤셨을까. 덕분에 수동으로 쓰는 니콘 FM2 사진기로는, 그동안 28mm 넓은각렌즈 하나로만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래서 ‘이때는 50mm 렌즈로 찍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구나’ 하면서 28mm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에도 지난달에도, 또 지지난주에도 지지난달에도. 그러면서 28mm 렌즈 쓰기에 조금 익숙해지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렌즈만 써야 하다 보니까, 28미리 렌즈를 쓰면서도 대칭이나 비례가 어긋나지 않는 사진을 찍게 되었고, 렌즈로 들여다보는 틀을 새롭게 키울 수 있었다.

 

 문득, 렌즈는 꼭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골고루 갖춰야 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때에는 15mm나 16mm쯤 되는 물고기눈렌즈도 하나쯤 있으면 더없이 좋겠구나 싶지만, 28mm 렌즈로도 내 깜냥껏 담아낼 수 있다. 모자라고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 50mm 렌즈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나 넉넉하고 푸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어느 자리에 어떤 렌즈가 있어야만 찍는 사진이 아니라고 느낀다. 어느 자리에 어떤 렌즈를 가지고 가든, 자기가 가진 기계가 어떤 성능이고 어떻게 쓰면 좋은지를 또렷하게 헤아리고 차분하게 느끼면서, 그 기계로 찍을 수 있는 가장 나은 사진, 가장 좋은 사진을 찍어야지 싶다. ‘사진을 찍은 나’와 ‘찍힌 사진을 볼 사람’들 모두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지 싶다.

 

a 집살림 사진 옆지기하고 함께 먹는 밥을 하다가, 사진 한 장 남겨 봅니다. 우리 살림살이를 가끔 사진으로 담아 놓으면, 먼 뒷날 우리 아이가 자라서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수 있을 테지요.

집살림 사진 옆지기하고 함께 먹는 밥을 하다가, 사진 한 장 남겨 봅니다. 우리 살림살이를 가끔 사진으로 담아 놓으면, 먼 뒷날 우리 아이가 자라서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수 있을 테지요. ⓒ 최종규

▲ 집살림 사진 옆지기하고 함께 먹는 밥을 하다가, 사진 한 장 남겨 봅니다. 우리 살림살이를 가끔 사진으로 담아 놓으면, 먼 뒷날 우리 아이가 자라서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수 있을 테지요. ⓒ 최종규

 

[78] 손맛 잃기 :  충주 산골짜기에서 살던 때, 사나흘쯤 사진기를 들지 않다가 이틀이나 사흘쯤 사진기를 들곤 했습니다. 시골에 있을 때엔 사진기를 들 일이 없습니다. 저는 헌책방만 찍으니까요. 시골에 살면서 서울 나들이를 할 때만 사진을 찍다 보니, 서울에 가서 사진을 찍다가도 더러 중요한 때를 놓치곤 합니다. 아무래도 ‘날마다 찍던 사진’을 ‘쉬었다가 찍고 또 쉬었다가 찍기’ 때문이구나 싶습니다. 밥을 먹듯이 책을 읽고, 똥오줌을 누듯이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여러 날 거르다가 찍고, 찍은 뒤 또 여러 날 거르고 있으니 배속에서 탈이 날 수밖에 없고, 탈이 나며 찍는 사진이 제대로 나올 리 없겠습니다. 비록 시골에서는 헌책방을 찍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헌책방이 아닌 다른 사진감을 찾아야겠습니다. 자칫, 사진을 찍는 손맛과 느낌을 잃어버릴 수 있겠습니다.

 

a 1인 시위 따라가기 1인 시위 하는 분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던 날, 비가 쏟아져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 따라가면서 사진을 담았습니다.

1인 시위 따라가기 1인 시위 하는 분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던 날, 비가 쏟아져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 따라가면서 사진을 담았습니다. ⓒ 최종규

▲ 1인 시위 따라가기 1인 시위 하는 분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던 날, 비가 쏟아져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 따라가면서 사진을 담았습니다. ⓒ 최종규

 

[79] 자기가 찍는 사진은 : 자기가 세상을 겪는 테두리에서 글을 쓰게 됩니다. 자기가 즐기며 하는 일과 놀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자기한테 반가운 곳, 자기로서 흐뭇한 지난날을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 한 장도, 우리가 부대끼는 세상에 따라서 나오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가 아는 만큼 찍는다기보다, 우리가 겪어낸 만큼 사진을 찍지 않으랴 싶어요. 우리 스스로 부딪힌 만큼, 우리 스스로 파고든 만큼, 우리 스스로 찾아나선 만큼, 우리 스스로 살피고 돌아보고 곱씹고 헤아린 만큼, 사진 한 장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21 21:22ⓒ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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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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