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법제처장 왜 2개월만에 돌변했나

[주장] "가축전염병예방법 위헌 소지 있다" 발언 문제 있다

등록 2008.08.22 10:30수정 2008.08.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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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법제처장 ⓒ 유성호

이석연 법제처장은 '위헌소지' 전문 법률가다.

지난 5년 내내 틈만 나면 '위헌소지' 운운했다.(참조: "생각 바뀌어도 독단적 헌법해석은 금물" - '위헌 논란' 주도 이석연 변호사에 대한 몇 가지 반론(오마이뉴스 2004년 12월 7일) 법제처장이 된 뒤로 한동안 잠잠하다 했다. 그랬더니 예의 '위헌소지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석연 법제처장이 대표하는 법제처는 21일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위헌소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삼권분립 위반, 둘은 '고시'의 이름으로 행정부에 줬던 권한을 다시 뺏어가는 것이라서 헌법위반이라는 것이다. 놀랍다(참고로 필자는 개정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 자체, 고시 자체가 이미 위헌이기 때문이다).

첫째 극단적인 형식논리 앞에 헌법적 양심은 사라졌다.

이 처장은 지난 6월 9일 "'쇠고기 장관고시'는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내가 재야에 있었다면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또 "한·미 쇠고기 합의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법령이나, 아니면 최소한 부령을 통해 발효되도록 해야 했다(서울신문)"고 했었다.

6월 10일 <한겨레> 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소신은 일관된다. "위헌의 소지"를 분명히 했다.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위생조건을 장관 고시로 위임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2개월만에 돌변한 이석연 법제처장


그래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의해 위헌소송이 제기됐다. 여야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고시 그 자체는 번복할 수 없다는 전제 때문에 '기형적이고 절충적'인 개정안이 마련됐다. 물론 실익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저 정치적 '안심'장치일 뿐이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이 처장이 말하는 위헌은 절대 아니다. 문제는 이 처장이 자신의 헌법적 양심을 번복한데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를 보자.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 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하여 행하여져야 하는 것입니다."(헌법재판소 2006. 12. 28. 선고, 2005헌바59 결정)

이 처장의 6월까지의 생각은 이런 헌재의 결정과 헌법적 양심과 해석이 일치했다. 이번엔 행정입법의 위헌심사를 담당하는 대법원 판례를 보자.

"특정 고시가 비록 법령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규정 내용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일 경우에는 위와 같은 법규명령으로서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 (대법원 1999. 11. 26. 선고 97누13474 판결)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례와 6월까지의 이 처장의 생각은 분명 일치했다. 고시는 무한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계가 있다고 했다. 법률집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위임받고, 최소한의 사항만을 정하라고 명령했다. 고시라는 제도가 갖는 행정입법권의 한계를 헌법재판소는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처장도 6월까지는 이런 해석에 동의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행정입법에 대한 권한은 행정부의 '전속적 권리'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인 것처럼 해석하고, 한 번 부여된 권리는 결코 회수해갈 수 없는 행정부의 '영속적 권리'라고 말했다.

이 처장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고시라 하더라도 '한 번 고시면 영원한 고시'다. 실질적 내용이나 절차적 하자는 전혀 의미가 없다. 한 번 발효된 이상 그 고시는 지켜져야 하고, 그 고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감 놔라 대추 놔라 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몰아가자면 악법도 법이라는 철저한 법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의 축소판이다. '악한 고시도 고시다', '악한 행정입법도 그저 행정입법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행정입법은 만능의 권리가 아니다

둘째 행정입법을 만능의 권리로 생각하는 '행정독재적 헌법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이 인정하는 행정입법권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보충적이다. 그래서 행정입법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헌법학자들의 주된 관심이다. 헌법소원이나 대법원의 명령·규칙 심사권을 통해 통제하는 것이 부차적이라면, 역시 주된 통제는 국회의 법률개폐권을 통한 통제에 있다. 

국회는 행정입법권의 근거가 되는 모법의 개폐를 통해 행정입법권을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만 된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대표적 견해이다. 주었다가 빼앗아간다고? 당연히 빼앗아갈 수 있다. 줄 수도 있고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 입법에 대한 국회의 전속적 권리이다.  입법권은 근본적으로 입법부인 국회의 것이다. 그런데 이 처장은 입법권의 하위인 행정입법권의 강화 또는 전속화를 통해 행정부를 '행정입법부'로 자리매김한다. 입법부의 설 자리가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회는 행정부에게 기술적인 사항에 대한 입법을 위임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권한을 초과하거나 잘못됐을 때는 얼마든지 빼앗아올 수 있고 빼앗아와야만 한다. 그것이 국민주권주의의 실현이다. 행정입법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를 단지 살펴보겠다는 '심의' 정도에 대해 이 처장은 반발한다. 삼권분립위반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것이 삼권분립 위반인가?

일관되게 이야기하지만 쇠고기 고시는 단순한 고시가 아니다. 사실상 법률이다. 좀더 부연하자면 한미간의 쇠고기 수입협상과 그에 따른 고시의 개정문제는 실질적 조약의 변경에 해당한다. 그것도 국민의 건강권과 관련된 중요한 조약에 해당한다. 조약은 곧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 우리 헌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률적 효력을 갖는 조약이기에 당연히 행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헌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촛불을 들었다. 그럼에도 입법부는 '최소한'의 법률 개정안을 통해 '면피'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쇠고기 수입고시가 갖는 위헌성이 치유된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해서 이 처장이 말하듯 삼권분립에 기초한 행정입법권을 침해한 사실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위헌소지'라니?

법제처, 국회 본질적 권한에 도전하나

우리 헌법이 국회의원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고 정부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 해서 행정부의 입법권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입법권은 입법부의 권한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다분히 보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이다. 현재 대통령의 권한, 행정부의 권한은 지나치게 강력하다. 입법계획도 국회에서 나오지 않는다. 법제처가 입법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정부입법으로 실천한다.

국민들은 입법계획을 국회를 통해 확인하는 게 아니라 행정부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맞추어나간다. 의원입법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입법으로 매도한다.  삼권분립상 입법부로서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국회는 서서히 '통법부'가 되어간다. 이때 법제처와 같은 행정기관은 '위헌소지' 전문 법률가를 처장으로 모시고 고시와 같은 행정입법에 대한 입법권을 바탕으로 국회의 본질적 권한에 도전한다.

늘 참고하는 책이 있다. '사법시험 출신'보다도, 여느 헌법 교수보다도 더 탁월한 법률가라고 생각한다. 그 분의 글을 인용하고 싶다.

"미국 제헌의회에서 제임스 메디슨은 몽테스키외를 인용하며 '정부의 한 부서의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다른 부서의 모든 권력을 장악할 때'(Federalist No. 47) 자유는 위험에 처해지고 독재는 고개를 든다고 경고했습니다.  입법부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하여 통법부로 만든 정치 현실을 아무런 반성이나 성찰 없이 그저 향유하기만 하는 대통령과 행정부는 결국 주권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헌법을 유린하는 독재자와 다름 없습니다." -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조지형 교수의 <헌법에 비친 역사> 127쪽
#이석연 #미국 쇠고기 #최재천 #조지형 #헌법에 비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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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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