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원내 다수당이 됐다. KBS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했으며, 검찰도 그 어느 때보다 정권에 협조적이다. 사법부 역시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KBS 이사회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이 쏠릴 정도의 무리한 행보를 거듭하면서,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에서부터 새로운 사장의 선임 과정까지 순항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 후보자는 5명으로 압축됐다.
어느새 그와 관련된 새로운 파문이 불거졌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KBS의 전·현직 임원 4명 등과 지난 17일 저녁에 서울 시내 한 호텔 식당에서 KBS의 사장 인선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정권 차원의 '방송 장악 기도'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참석했다는 전·현직 임원 4명 중에는 유력한 신임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은구 전 KBS 이사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YTN 구본홍 사장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KBS에도 김인규 전 KBS 이사가 유력한 사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또 하나의 '방송사 낙하산 인사'의 사례를 기록할 뻔했다. 김인규 전 이사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 선대위 방송전략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김인규 전 이사는 KBS 사장 후보 공모를 포기했다. 이명박 정부 측도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낀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 핵심 관계자들의 '식사 자리'에서는 실제로 "김인규씨를 (사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낙하산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 힘들어졌다. 후임 사장을 잘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정연주 사장 해임 과정에서 지금까지 새로운 KBS 사장 후보로 거론된 이들은 이명박 정부와의 연관성이 강했다.
하지만, 김인규 전 이사의 공모 포기 이후, 새롭게 거론되는 사장 후보들을 보면 '덜 자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은구 전 KBS 이사는 71세의 노령이며 KBS의 간부직을 역임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언론지상에 등장한 정보가 거의 없다. 박흥수 강원정보영상진흥원 이사장과 강대영 전 KBS 부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갑자기 '덜 자극적'인 후보들이 등장하는 것의 연결고리는 이명박 정부 핵심 관계자들의 저녁식사 발언 속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김인규 후보 카드가 물 건너가서 후임 사장을 정하는 문제가 급해졌다.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 MB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는 실제로 공정하게 잘 뽑겠다는 것보다는, 정치색이 덜한 인사를 뽑아 '낙하산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MB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부분이 그를 뒷받침한다.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온갖 무리수를 감안하면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라는 부분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김은구 전 이사, "좌경화 대한민국 위협한다"는 시국선언 참여
지난 2005년 10월 18일, '제2시국선언 애국시민모임'은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나라가 망하기 전에 대한민국을 살리자"는 구호를 내걸고 '제2의 시국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선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오늘 대한민국은 좌경화가 나라의 안방과 심장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한 나라다. 서로 일깨우고, 다짐하고, 단속해서 2007년에는 1997년과 2002년에 저질렀던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
"'맥아더는 우리의 원수'라는 등의 망언을 한 친북·좌익교수에 대한 시민 고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좌파 정권의 법무부장관이 건국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끝내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헌법을 무시·유린하며 나라를 오도하는 길을 고집한다면 유일한 선택은 국민저항권의 발동뿐이다."
이 시국선언에는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국회의장, 전직 국무총리 등의 거물급 원로 수천명이 동참했던 적이 있다. 이 시국선언 참석자 명단에는 '김은구 전 KBS 이사'도 포함돼 있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 그렇게 드러난다면, 그 다음은 KBS에서의 경험일 것이다. '김은구'라는 이름이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적이 있다면 그것은 1990년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의해 'KBS 변칙수당'이 밝혀져 크게 파문이 일었다. 1989년 말, KBS의 법정수당책정액 116억 원 중 43억여 원이 남자, 허위서류 작성을 통해 시간외근무수당과 귀성비 명목으로 40억여 원의 수당을 변칙적으로 지급한 것이다.
당시 KBS 경영진에서는 적자경영을 우려해 수당지급률을 80%로 낮춰 지급하면서 40억 원의 법정수당 잔여분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감사원은 KBS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영훈 당시 KBS 사장 등을 비롯해 '김은구 인사관리실장' 등의 비위 내용을 공보처에 공식통보하는 등의 강경한 조처를 취했다(경향 1990년 2월27일자 보도 참고).
정연주 사장의 해임 명분은 '방만경영'과 '현저한 비위'라고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감사원에 의해 비위 내용을 '공식통보'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유력한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참고로 김은구 전 KBS 이사는 KBS 전 직원 1500여 명의 모임 'KBS 사우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또 "KBS 이사회와 사장 임명권자는 지금껏 KBS 출신 사장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음을 배려해 KBS 출신 방송전문가를 사장으로 제청, 임명해 주길 바란다"는 취지의 '정연주 사퇴 촉구 성명'을 낸 적이 있다.
강대영 전 부사장의 경우에도 KBS 경력 중 논란이 될 부분은 있다. <한겨레> 1996년 5월22일자 보도에 따르면, 강 전 부사장이 심의실장으로 재직하던 1996년, <열린 음악회>의 광주 공연실황 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이 '방송 부적합곡'이란 이유로 내부 심의규정에 의해 삭제된 채 방영됐던 적이 있는 것이다. 당시 강대영 심의실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과거에 방송금지 판정을 받은 곡이라도 음반제작자나 작곡자 가수 등 이해 당사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자체 심의위원회에서 재심의를 할 수 있다. 이번 경우 방영 직전에야 '부적합곡'이란 사실이 드러나 악법도 법이란 원칙에서 일단 삭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보도는 "문화방송의 경우,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음악 프로에서 이 노래의 방송을 위해 심의를 신청한 사례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이어졌다. '악법도 법'은 과연 원칙일까? '악법도 법'이라는 그의 옛 항변에서는, "법과 원칙"을 유난히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오늘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가속화될 'KBS 낙하산 사장'의 안착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윤성근 부장판사)는 정연주 전 사장이 KBS를 상대로 낸 신임 사장 공모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22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사회 개최 장소가 갑작스럽게 바뀌었지만 결의에 반대한 이사 4명의 참석이 가능했던 만큼 이사들의 심의, 의결권이 침해당하지 않았다"는 결정문 내용과 "2000년 통합방송법이 제정되면서 KBS 사장에 대해 대통령이 '임면한다'에서 '임명한다'로 변경됐으나 그것이 대통령의 면직권 또는 해임권을 배제한 취지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결정문을 통해 "현행법상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권이 인정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KBS 이사회는 정권의 핵심 실세들과 '식사'를 가져가면서 유력한 후보들과 만나 '모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다양한 전략 논의 속에서 새로운 사장을 밀어붙일 근거도 마련된 것이다. KBS의 낙하산 사장이, 신속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KBS 사장실에 앉을 채비가 더욱 가속화된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모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8.23 17:5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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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낙하산' 대신 만만한 인사로? KBS 사장 유력후보들의 부적절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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