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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이면 으레 직장 동료(대부분 여선생님)들은 저녁 찬거리 걱정을 앞세운다. 오늘 저녁에는 무얼 해 먹을까. 어떤 국을 끓이지. 반찬은? 뾰족이 별난 음식을 차려먹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되풀이되는 이 일은 결코 행복한 고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장을 휘~ 돌아 봐도 별반 살 게 없다. 식구들 구미에 당기는 것은 많은데, 저걸 사서 언제 장만하느냐 하는 생각에 미치면 발길을 돌리고 만다. 몇 번을 미적거리다가 겨우 몇 가지 찬거리를 사들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봉지를 풀어놓고 다듬고, 삶고, 데치고, 볶고, 지지고 나면 저녁시간이 빠듯하단다.
식탁에 오른 맛깔스런 반찬들에 식구들이 젓가락을 가져다 대면 마음이 흐뭇해지지만, 이것도 저것도 깨작깨작 거릴 때면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나도 그렇다. 애써 장만한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으면 힘이 쭉 빠진다. 그런 경우 음식을 장만하는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음식은 정성과 사랑을 양념삼아 깔끔한 손맛을 곁들여야한다. 보잘 것 없는 잎채소 하나도 정성이 담기고 사랑이 배어있으면, 진수성찬이나 다름 없다. 사랑이 담뿍 담긴 음식은 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즐겁게 한다. 그러니 똑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매만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실시간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먹을거리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곳에 머물고 있으면 눈요기만으로도 먹을거리에 대한 과부족을 못 느낀다. 그러나 진열대에 턱하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 중엔 가족의 건강을 저해하는 것들이 많다.
아토피나 알레르기 등 지독한 피부병은 먹을거리에 가해지는 농약이 근본원인이다. 오죽했으면 깻잎도 약을 치지 않으면 검게 말라버리고, 고추도 꼭지부터 허물어져 내린다고 할까. 상추나 쑥갓, 배추, 과일도 마찬가지다. 완전 무공해 식품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만큼 농작물도 내성이 강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뿌린 대로 거둔다'는 정설은 계절을 거스르며 재배되는 채소나 과일일수록 그대로 들어맞는다.
한때 웰빙(well-being)식품이 모든 건강을 담보하는 것처럼 회자된 적이 있다. 그래서 주식·부식 모두를 산지와 직거래 하곤 했다. 그런 까닭에 자연농법으로 재배된 식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잔뜩 공해가 찌든 도시공간에 숨쉬고 살면서도 입맛 돋운다는 얄팍한 욕심은 마침내 자연생태를 파괴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은 예전보다 각종 피부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전량 무공해식품을 먹었는데도 건강은 오히려 잰걸음이거나 뒷걸음이다.
지난 30년 동안 도시에 살다가 농촌에 붙박이하며 산 지 7년째다. 살만하다. 우선 각박하게 부대끼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바삐 서둘러야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발품을 팔면 다 닿는 데 있는 생활여건이어서 그렇겠지만, 그보다도 사람 사는 향기가 순간순간으로 와 닿는다. 하나 불만(?)스러운 게 있다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탓에 '익명성'을 담보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차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훤히 다 공유하고 산다. 그러니 비밀스럽게 감춰둘 일이 없다.
그런데 시골이라고 해서 대형마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에 비해, 상주인구에 비하여 지나치리만큼 많은 슈퍼마켓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농촌의 논밭에 가득 자라고 있는 푸성귀들과 똑같은 먹을거리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5일장에 있다. 닷새마다 장터를 트는 그곳에 가면 농부들이 손수 키운 야채과일들이 싱싱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로 반찬을 만들어 보면 안다. 그 맛이 얼마나 달착지근한지를. 설령 도시 사람들은 사가더라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 정녕 신토불이라는 것은 생산지 그 땅에서 먹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시골살이가 행복한 것이다.
더욱이 행복한 것은, 병환중임에도 노모가 당신의 생명처럼 가꾸는 '노모의 텃밭'이 있다는 거다. 텃밭이래야 집 뒤란에 서너 평 남짓한 땅이다. 하지만 손바닥만은 그곳에는 이파리 싱싱한 속음배추, 우엉, 겉절이 상추, 들깻잎과 고추, 쪽파, 대파, 가지가 당차게 서 있으며, 호박넝쿨이 담을 타고 넘나들고 있다.
노모는 이런 푸성귀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주기는 물론, 겨우내 삭힌 음식물거름을 넘치지 않을 만큼 나눠주신다. 좀 덜 자라도, 이파리에 벌레 먹어 구멍이 송송 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바로 입에 들어가야 하니까 농약비료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다. 먼지가 조금 내려앉은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식품이다.
그렇다고 노모에게 드러내놓을 만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푸성귀를 애지중지 돌보는 사랑이과 정성이 있을 뿐이다. 텃밭의 푸성귀들은 한결같은 노무의 돌봄으로 제각각 맛좋게 자라는 것이다. 이는 애써 돈 들여가며 값비싼 재료들을 사 놓고도 그 맛을 못 느끼는 도시 사람들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오늘 저녁엔 노모가 그동안 손수 가꾸었던 푸성귀로 성찬을 마련하셨다. 이름 하여 '팔첩반상'이었다. 그 맛 함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다만 사진으로나마 눈요기하시라. 더 이상 무얼 먹을까 고민하지 마시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9.03 09:3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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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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