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어머니들은 몰라도 나는 절대 아냐!"

<유경의 녹색 노년>

등록 2008.09.06 15:11수정 2008.09.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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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친친 쌍쌍 파티> 포스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쓰는 인생 노트' 안내 포스터
<제2회 친친 쌍쌍 파티> 포스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쓰는 인생 노트' 안내 포스터수원시건강가정지원센터
명절이 코 앞이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겠지. 이번 추석에도 내가 미리 준비해서 시부모님댁으로 들고가야 하는 것은 '꽂이'다. 햄과 맛살, 버섯, 파를 가지런히 이쑤시개에 꽂아 가면 된다.


세 며느리가 늘 나눠서 하는 대로 큰동서는 장보기와 갈비찜 양념을 해올 것이고, 작은동서는 식혜와 돈저냐(동그랑땡) 재료 반죽한 것을 가지고 올 것이다. 온갖 종류의 부침개가 태어날 것이고, 그렇게 명절 시작을 알리게 될 것이다.

명절에 특별히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생각도 느낌도 없는 아이들은 평소 엄마 셋 모두 반찬으로 잘 해주지 않는 햄과 맛살에 눈이 끌려 열심히 '꽂이'를 집어 먹겠지. 그럼 또 시어머니는 말씀하시겠지.

"거봐라, 아이들 잘 먹는 거 하니 얼마나 좋으니?"  

지난 9월 4일(목) 수원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시어머니 교실>이 열렸다. 다음 날 있을 <며느리 교실>에 앞서 시어머니들이 먼저 모이셨는데, 진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쌍이 되어 참석하기는 어려운 까닭에 '며느리가 있는 여자 어르신들'과 '시어머니가 계신 젊은 여성들'로 참여자의 폭을 넓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교실> 강의는 어르신들을 늘 만나는 내가 맡았고, <며느리 교실>은  방송인으로도 유명한 여성학 강사 오숙희씨가 맡았다.


어르신 약 40여 분과 함께 재미있는 노래도 부르고 서로의 마음을 열기 위한 눈맞춤, 입맞춤, 손맞춤, 마음맞춤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녀들, 가족들, 친구들과 사이좋게 사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한 포털 사이트에서 '시어머니, 이럴 때 서운하다!'라는 제목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드리며, 고부간의 구체적인 갈등 내용과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할 때였다.


시어머니가 서운할 때 1위는 '친정 가려는데 시누이 기다렸다가 보고 가라고 할 때'라고 하니 뒤쪽에 계신 분이 벌컥 소리를 지르신다.

"아니, 그럼 손님 오는데 친정에 가버리면 일은 누가 해? 말도 안 되지!"

어르신의 얼굴색이 붉으락 푸르락 화가 나셨다. '어르신 말씀에 대해 다른 분 혹시 하실 말씀 없으세요?' 하니 저쪽에서 손을 드신다.

"내 딸 오면 남의 집 딸도 보내줘야지요. 저는 뒤에 오는 손님들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냥 가라고 해요."

어르신들이 각자의 경험을 나누시도록 잠깐 시간을 드렸다. 그러면서 솔직히 머리가 아팠다. 이런 이야기를 과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막막함도 일었다.

<즐거운 추석, 우리부터 실천해요!> 책자 표지  부부가 함께하는, 가족이 함께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을...
<즐거운 추석, 우리부터 실천해요!> 책자 표지 부부가 함께하는, 가족이 함께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을...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가 함께 만든 '즐거운 추석, 우리부터 실천해요!' 책자를 보니 남편, 아내, 부모님, 아이들이 각자 실천해야 할 전략을 아주 상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아래 '덧붙이는 글' 참조)

어려운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뭐가 문제여서 명절을 보내면서 혹은 명절을 보내고 나서 가족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들 피곤하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걸까?

명절 지나고 나면 만나는 어르신들께 꼭 여쭤본다. 명절 잘 지내셨느냐고. 많은 분들이 '며느리 눈치보느라, 명절 지나고 집에 가서 혹시라도 아들네가 부부싸움할까봐' 마음이 불편했다고 하신다.

며느리들은 어떨까. '지나치게 많은 음식 장만에, 집에서는 잘 도와주던 남편도 돌변해버리고 마는 상황'이 화가 난다고 아우성이다. 남편들은 '장거리 운전의 고단함은 둘째치고라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어서 눈치보느라 피곤하다'고 또 투덜거린다.

"살 날 얼마 안 남은 우리들한테 맞춰 주면 안돼? 자기 하나만 참으면 집안이 조용할 텐데, 뭐가 그리 잘 났다고 힘드니 마니, 친정 보내달라 마라 말이 많아. 우리들은 다 참고 살았는데."

"손님이 많아서 친정에 보내주지 못하는 것만 빼면 나같은 시어머니 없다고 나는 자부해! 며느리하고 딸 차별? 다른 시어머니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절대 아냐. 절대!"

우리를 있게 해주신 조상을 기억하고 서로가 행복하자고 모이는 명절, 모두가 행복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저 구석에 앉아 아파하고 마음 상해 한다면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 '나는 절대 아냐!'라는 시어머니의 며느리도 '우리 시어머니는 절대 안 그러시다!'고 같은 대답을 할까.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느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더러 바꾸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바꾸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까닭이다. 세상에 남을 바꾸는 일이 가장 어렵다. 반대로 나를 바꾸는 일이 가장 쉽다. 내 마음 바꿔먹는데 따라 천국과 지옥이 왔다갔다 한다.

시어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하는 며느리 처지에 시어머니들께 강의를 하려니 편치만은 않았다. 만약 시어머니께서 내 강의를 들으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아이고, 다른 시어머니들한테 설교할 생각 말고 너나 잘해라. 시집 와서 17년 동안 집안을 위해 니가 한 게 뭐 있니? 응?"

아니면 이러실까.

"너도 꼭 너 같은 며느리 얻어봐야 되는데. 그래야 내 마음 알 텐데!"

그런데 나는 딸 둘을 두어서 시어머니 될 일이 없을 예정이다. 그러니 어르신들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서로가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일에 힘을 보탤 수밖에.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이던가. 그 누구라도 하루 아침에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다만 <시어머니 교실>에서 만난 시어머니들 가운데 단 한 분이라도 '아, 며느리들은 저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인정하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해 보신다면 내 수업이 그래도 평균점수 이상은 되는 거라고 홀로 위로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 보내기' - 가족구성원들의 실천 전략!>(출처 : 여성부 홈페이지)

◇ 아빠 : 함께 장 보기, 설거지, 청소 등 분담하기, TV시청·술자리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찾기, 처가 방문하기 등

◇ 엄마 : 운전하느라 지친 남편 어깨 주물러주기, 동서지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 아이에게 숙제·공부 타령하지 않기 등

◇ 할아버지·할머니 : 간소한 상차림 먼저 권하기, 아들과 사위 역할 분담해주기, 기쁘게 며느리 친정에 보내주기 등

◇ 나 : 잔심부름하기, 이불 개기, 내가 먹은 것 직접 치우기, 동생들과 놀아주기, 할아버지·할머니와 대화하기


덧붙이는 글 <'함께하는 즐거운 추석 보내기' - 가족구성원들의 실천 전략!>(출처 : 여성부 홈페이지)

◇ 아빠 : 함께 장 보기, 설거지, 청소 등 분담하기, TV시청·술자리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찾기, 처가 방문하기 등

◇ 엄마 : 운전하느라 지친 남편 어깨 주물러주기, 동서지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 아이에게 숙제·공부 타령하지 않기 등

◇ 할아버지·할머니 : 간소한 상차림 먼저 권하기, 아들과 사위 역할 분담해주기, 기쁘게 며느리 친정에 보내주기 등

◇ 나 : 잔심부름하기, 이불 개기, 내가 먹은 것 직접 치우기, 동생들과 놀아주기, 할아버지·할머니와 대화하기
#시어머니와 며느리 #고부 갈등 #명절 #평등 명절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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