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아카이브 전시회에서 네팔 전통악기 등을 연주하고 있다.
이주빈
지난 2일 인천공항을 통해 네팔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나는 배웅하지 못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벗들이지만 나는 오랜 친구를 손수 배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이 미안했다. 다만 미안한 마음은 '좋은 인연으로 만나 좋은 일을 함께 하고 있으니 조만간 다시 만나리'라는 소박한 바람으로 달랬다.
몇몇 기사를 통해 나는 친구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대학에서 회화 등 예술을 주로 전공한 친구들은 ‘행복한 진동’이라는 자원활동가 그룹을 꾸려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이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한국과 달리 네팔의 자원활동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올해 5월에야 약 200년을 이어온 왕정을 공식 폐지할 만큼 네팔은 정치적 의제와 활동이 청년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문화를 매개로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학교살리기·마을살리기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다. 마치 70년대와 80년대 한국에서 강력한 반정부 투쟁노선대신 환경운동과 시민운동 노선을 채택하겠다고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언젠가는 이런 일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언젠가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지금 우리가 해보겠다고 나섰다. 네팔 엔지오 품(Nepal NGO PUM, 대표 심한기)이 이 친구들의 활동터전이다.
네팔 엔지오 품은 3년째 모노허라 지역에서 학교살리기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공동체운동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5월에 네팔에서 열린 '한국-네팔 청년문화 실천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내게 '한국에서나 잘하지 뭣하러 네팔까지 가서 원조식 운동을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얘길 들어보니 네팔도 외국의 퍼주기식 원조에 익숙해져서 티도 안난다더라'며 염려를 하곤 했다.
언젠가 이런 의문과 염려에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팔의 젊은 벗들을 배웅하지 못한 미안함이, 또 한국의 지체장애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 네팔의 어린이들과 함께 '행복한 학교'를 지금 진행하고 있을 심한기 대표에 대한 미안함이 오늘 작정하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우선 네팔 엔지오 품이나 자원활동가 그룹 '행복한 진동'은 여느 한국의 단체들이 하는 것처럼 학교 건물 지어주고, 책 기증하고 마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 요즘 국제정세를 설명하면서 즐겨 쓰는 용어처럼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학교의 건물이 낙후돼서 보수를 하든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한다. 가능하면 필요한 돈을 만들 때부터 '우리가 얼마 낼테니 마을에서도 얼마 내시오'한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주민들이 돈을 내고 만드는 일이니 함께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일은 학교를 매개로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아이들, 교사, 마을 청년, 주민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퍼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공동체의 변화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의 참여를 통한 변화가 핵심이다. 즉 사람이 바뀌어야 마을이 바뀌는 것이다.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3년째 모노허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학교 건물 뚝딱 지어주고, 한국에서 안 읽는 책 몽땅 갖다 주면 금방 티는 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사람으로부터 오고,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는 매우 길고 긴 관계의 시간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함께 할 수 없게 되고, 함께 할 수 없으면 오래하지 못한다. 오래하지 못하면 일회성이 되기 십상이고, 일회성 사업은 퍼주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3년 동안 공을 들이고도 네팔 엔지오 품과 '행복한 진동' 친구들이 지난 5월에 가서 한 일이라곤 고작(!) 마을지도 함께 만들고 부서진 학교 2층 수리하기로 한 것밖에 없다. 단지 그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