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상대를 탐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임재만
그들이 탐색하는 시간이 길어져 지루할 때면 아나운서의 익살스러운 멘트가 장내에 울려퍼지고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때 싸움소들은 온 힘을 모아 싸움을 시작한다. 서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그들의 육중한 다리 근육에서 느껴진다. 밀고 당기고 부딪치기를 몇 차례 반복하며 모래판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힘을 쓰며 싸우다가 힘이 부친 소가 고개를 홱 돌려 달아나고 만다. 나살려라 도망가는 거 같기도 하고 "행님 졌소"하며 어리광을 부리며 달아나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러면 싸움에서 승리한 소는 달아나는 소를 쫒아가지 않고 점잖게 그 자리에서 서서 관중들의 함성과 축하의 박수를 받는다. 이 소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덩치에 맞지 않게 너무 신사적이란 생각이 든다.
덩치 큰 그들의 싸움은 무시무시 할 것 같았고, 끝까지 따라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지 너무 싱거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탐색만 보자면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이곳 경기장에서 처음 본 그들이 싸우기 전에 탐색을 하고, 온 힘을 모아 힘껏 싸우다가 힘에 부치다고 생각되면 깨끗하게 승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프로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분명 프로였다.
가끔 싸움에서 패한 소들 중에는 모래사장을 거칠게 뛰어다나며 분을 삭히는 친구도 있었다. 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한 번 더 붙어 보자며 달려들어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깨끗하게 인정하고 조용히 경기장을 떠난다. 싸움에서 이긴 소는 한 번 더 달려가 승부를 끝장낼 법도 한데 고개를 돌려 달아나는 소를 쫒아 가는 일이 없다. 참으로 승자다운 멋진 모습이다. 여유와 배려가 그들에게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