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건지 사진도 싱건지 맛이 있기는 하지만

[사진말 (17) 사진에 말을 걸다 88∼96] 돈과 사진찍기

등록 2008.09.08 19:08수정 2008.09.0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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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맛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고, 나중에 이 사진을 책 하나로 여미어 보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서 즐겁습니다. 다른 이들도 좋아해 줄는지,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최종규

▲ 사진을 찍는 맛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고, 나중에 이 사진을 책 하나로 여미어 보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서 즐겁습니다. 다른 이들도 좋아해 줄는지,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최종규

[88] 좋은 사진책을 만날 때면 3 : 사진을 찍은 분도 찍을 때 느낌이 참 좋았겠지요. 사진을 보는 제가 느낌이 참 좋거든요.

 

[89] 넓은각 렌즈 : 넓은각 렌즈를 쓰면 좁은 자리에서도 퍽 넓은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렇지만 자질구레하게 이 모습 저 모습 잔뜩 집어넣은 사진이 되어 버리기에도 딱 좋은 넓은각 렌즈입니다. 내가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내가 사진에 담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고 느껴야, 넓은각 렌즈가 없어도 넓은 모습을 사진에 알뜰하게 담아내거나, 넓은각 렌즈를 쓰면서 넓게 보이는 사진맛을 살립니다.

 

[90] 돈과 사진 1 : 돈도 벌고 좋은 사진도 얻으면 참말 좋습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돈하고 가까워지면 좋은 사진하고는 자꾸만 멀어지고, 좋은 사진하고 가까워지면 돈하고 자꾸만 멀어지는걸요.

 

[91] 돈과 사진 2 : 상업주의 사진은 돈하고 가깝습니다. 그러나 상업사진은 돈하고 가깝다 뿐이지, 사진 찍는 솜씨나 ‘찍히는 사람과 사물을 보는’ 눈이나, 사진으로 담아내는 틀거리나, 사진을 보는 이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나타내는 솜씨,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야 상업사진입니다. 다만, 돈하고 가깝기 때문에 사람 삶하고는 동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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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되는 사진 "돈 안 되는 사진 참 부지런히도 찍네" 하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골목길에서 사진 찍는 저를 보던 어느 할아버지는 "그래, 한번 예술품 멋지게 만들어 봐요" 하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골목길 사진을 찍는 저한테 힘을 북돋워 준 첫 목소리를 이태 만에 들었습니다. ⓒ 최종규

▲ 돈 안 되는 사진 "돈 안 되는 사진 참 부지런히도 찍네" 하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골목길에서 사진 찍는 저를 보던 어느 할아버지는 "그래, 한번 예술품 멋지게 만들어 봐요" 하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골목길 사진을 찍는 저한테 힘을 북돋워 준 첫 목소리를 이태 만에 들었습니다. ⓒ 최종규

 

[92] 돈과 사진 3 : 돈하고 거리가 먼 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예술’사진을 찍거나 ‘다큐멘터리’사진을 찍거나 ‘보도’사진을 찍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돈하고는 거리가 먼 사진을 찍는데, 때때로 너무 자기 세계에 깊숙하게 빠져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돈하고 굳이 가까워지지 않겠다뿐이지, 돈을 아예 만지지 않겠다고 한다면, 외려 자기가 사진에 담아내려는 사람이나 사물을 치우치게 바라볼밖에 없게 될 걱정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어야 하고, 사람이 먹는 밥은 ‘다른 목숨’입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다른 목숨을 먹어야 합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고맙게 다른 목숨을 받아먹으’면서 ‘자기가 다른 목숨한테 얻은 고마움을 내버리지 않고 기꺼이 내놓고 펼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자연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찍기 또한 ‘내 둘레 사람이나 자연이나 삶터를 담아내면서 고맙게 사진 한 장 얻는 일’입니다.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도 나한테 고맙게 사진 한 장 얻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진찍기도 돈이 많이 드는 만큼, 사진 몇 장으로 돈을 벌어들여서 여태껏 쓰던 장비보다 좀더 나은 장비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밟아 보지 못한 땅을 찾아가는 나들이삯으로 쓰면서 자기 사진밭을 차츰 넓힐 수 있습니다. 집식구한테 돈푼 한번 마땅히 쥐어 줘 본 적이 없는 이들이 가끔이나마 살림돈을 보태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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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사람 제가 찍는 골목길 사진에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서 재미없다고 이야기를 해 주는 분이 있습니다. 참말 제 사진에는 사람들 얼굴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굳이 사람 얼굴을 안 찍으려고 한 탓이 조금은 있습니다. 골목사람들이 '수많은 사진쟁이들한테 사진찍기에 시달려 오고 있어서' 저만큼은 굳이 이분들한테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까닭은, 구태여 사람 얼굴을 안 담아도 골목길 사람 자취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 골목길과 사람 제가 찍는 골목길 사진에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서 재미없다고 이야기를 해 주는 분이 있습니다. 참말 제 사진에는 사람들 얼굴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굳이 사람 얼굴을 안 찍으려고 한 탓이 조금은 있습니다. 골목사람들이 '수많은 사진쟁이들한테 사진찍기에 시달려 오고 있어서' 저만큼은 굳이 이분들한테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까닭은, 구태여 사람 얼굴을 안 담아도 골목길 사람 자취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93] 돈과 사진 4 : 필름사진을 찍으면서 ‘돈 떨어지는 소리’를 늘 듣습니다. 바라는 만큼 사진이 안 나오면 ‘돈 떨어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그렇지만 뭐, 돈이 많다고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고, 돈이 좀더 많이 떨어진다 해서 사진 찍기를 그만둘 생각이 있지도 않습니다. 돈이야 떨어지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주머니에 한푼이라도 남아서 필름 한 통 더 살 수 있다면, 마지막 한 장을 찍는 그때까지도 그 한 장에 제가 바라는 사진 하나 알뜰히 담으려고 애쓰기만 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마지막 필름마저도 형편없는 사진밖에 못 찍는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지요. 제 깜냥은 그 그릇밖에 안 되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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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 제가 늘 즐겨찾는 헌책방을 살펴보면, 언제나 다 다른 모습 다 다른 삶입니다. 찾아가는 데마다 빛깔과 느낌이 모두 달라서, 날마다 찾아가게 되어도 날마다 다른 사진을 얻고 다른 책을 만나며 다른 생각을 품습니다. (서울 누하동 대오서점) ⓒ 최종규

▲ 헌책방 사진 제가 늘 즐겨찾는 헌책방을 살펴보면, 언제나 다 다른 모습 다 다른 삶입니다. 찾아가는 데마다 빛깔과 느낌이 모두 달라서, 날마다 찾아가게 되어도 날마다 다른 사진을 얻고 다른 책을 만나며 다른 생각을 품습니다. (서울 누하동 대오서점) ⓒ 최종규

 

[94] 돈과 사진 5 : 제가 찍는 사진이 돈도 될 수 있으면 참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찍는 사진이 제 나름대로 바라본 세상을 올바르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게 느끼고 곰삭이면서 ‘이 사진을 보는 이들한테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말입니다. 이럴 때는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찍은 사진이라 해도 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흘린 땀방울에 걸맞은 보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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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은 책방 이제는 문을 닫고 안 하는 헌책방 사진을 필름이나 스캔한 파일로 넘겨볼 때면 코끝이 찡합니다. 그예 이제는 이렇게 사진으로만 남게 되는구나 싶어서. ⓒ 최종규

▲ 문닫은 책방 이제는 문을 닫고 안 하는 헌책방 사진을 필름이나 스캔한 파일로 넘겨볼 때면 코끝이 찡합니다. 그예 이제는 이렇게 사진으로만 남게 되는구나 싶어서. ⓒ 최종규

 

[95] 돈과 사진 6 : 남들은 디지털사진을 쓰면 돈이 안 든다고 저보고도 디지털사진으로 넘어오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저는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할 돈이 없었습니다. 필름값은 그때그때 조금씩 모으면 살 수 있지만, 한꺼번에 큰돈이 들어야 하는 디지털사진기는 엄두를 못 냅니다. 형한테 도움을 얻어서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게 되는 날까지, ‘돈이 없어서’ 필름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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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사진 갓 태어난 아기를 찍는 분이 참 많습니다. 아니,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아기를 사진이며 영상에 담습니다. 그런데 아기 때에는 많이 찍어도 자라는 동안 꾸준히 찍는 사람이 드뭅니다. 왜 그러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하는데, 아무래도 아기일 때와 어린이일 때에는 자주 어울리고 함께 지내지만, 나이가 먹은 아이들(청소년)하고 오랜 시간 함께 어울리는 부모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 최종규

▲ 아기 사진 갓 태어난 아기를 찍는 분이 참 많습니다. 아니,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아기를 사진이며 영상에 담습니다. 그런데 아기 때에는 많이 찍어도 자라는 동안 꾸준히 찍는 사람이 드뭅니다. 왜 그러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하는데, 아무래도 아기일 때와 어린이일 때에는 자주 어울리고 함께 지내지만, 나이가 먹은 아이들(청소년)하고 오랜 시간 함께 어울리는 부모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 최종규

 

[96] 싱건지 사진 : 30∼40년 한 가지 사진을 꼿꼿하게 찍어서 수십만 장을 이루어낸 분 작품 가운데 우리 가슴을 움직이는 사진이 몇 장 안 되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아무 생각 없이 한두 해 몇 십 장 찍은 사진이 한결같이 따스하고 애틋하기도 합니다.

 

뜻과 생각이 있는 사진일 때 비로소 빛이 나지만, 뜻과 생각만 앞서다 보면 틀과 짜임새만 좋을 뿐, 사진맛이 하나도 배어들지 못하는 싱건지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싱건지도 싱건지 맛이 있기는 하지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08 19:0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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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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