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53) 글쓰기

[우리 말에 마음쓰기 417] '작문'과 '글짓기'와 '글쓰기' 사이에서

등록 2008.09.08 20:26수정 2008.09.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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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경에 들어간 뒤에도 사람들과 더불어 필담을 해 보면 모두 능란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또 그들이 지었다는 모든 문편들을 보면 필담보다 손색이 있었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글 짓는 사람이 중국과 다른 것을 알았으니, 중국은 바로 문자로써 말을 삼고 있으므로 경사자집이 모두 입에서 흘러나오는 성어였다 .. <홍대용과 그의 시대>(김태준, 일지사, 1982) 88쪽

 

몇 해 앞서까지 ‘글짓기’라는 말만 두루 쓰였지만, 이제는 ‘글짓기’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글쓰기’라는 말만 널리 쓰입니다. ‘글쓰기’라는 낱말을 처음 지어낸 분은 당신이 펼친 ‘글쓰기 교육’이 이처럼 두루두루 퍼진 모습까지는 못 보셨으니 안타깝다고 할 만한데, 요사이 ‘글쓰기 교육’은 ‘글쓰기’라는 낱말을 처음 지어내며 쓰던 분 넋이나 얼을 거의 안 따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날 모습을 못 보신 일이 낫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 글짓기 : 글을 짓는 일

 └ 작문(作文) : 글을 지음. 또는 지은 글

 

“글을 짓는 일”이니 ‘글짓기’입니다. “글을 짓는 일”이란, ‘우리가 품은 생각이나 보고 겪은 이야기를 속으로 생각해서 줄거리를 잡은 뒤 글로 옮겨 적는 일’입니다. 낱말을 지은 틀거리를 헤아릴 때, 글을 짓는 일을 가리키는 ‘글짓기’가 잘못이라고 할 대목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글은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써야’지, 억지스레 ‘만들’거나 ‘쥐어짜’듯이 ‘짓기’만 한다면 말썽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지난날 이오덕 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글짓기’가 아닌 ‘글쓰기’로 이름을 아예 바꾸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배워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 글쓰기 : 글을 쓰는 일

 ├ 그림그리기 : 그림을 그리는 일

 └ 사진찍기 : 사진을 찍는 일

 

이런 틀거리를 가만히 살피면서 이웃한 문화와 예술을 돌아봅니다. 학교에서 ‘미술(美術)’이라는 이름으로만 가르치는 과목이나 공부나 학문은, ‘그림’이나 ‘그림그리기’로 이름을 고쳐서 배우거나 가르치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우리 마음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또다른 길은 사진을 놓고도 ‘사진찍기’라는 이름으로 수수하게 가르치거나 배우면 어떠할까 싶어요.

 

집안에서 하는 일은 ‘집살림’이나 ‘집안살림’입니다. 굳이 ‘가정(家政)’이나 ‘가사(家事)’라는 이름으로 가리키지 않아도 됩니다. ‘도덕(道德)’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으나, ‘바른길’이나 ‘착한삶’이나 ‘아름다운삶’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배워도 괜찮습니다.

 

 ┌ 글쓰기 / 글쓰다

 ├ 글짓기 / 글짓다

 │

 ├ 그림그리기 / 그림그리다

 └ 사진찍기 / 사진찍다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세상일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학문도 늘고 책도 늘고 사람도 늘고 문화도 늡니다. 예술 갈래가 늘어나고 과학 갈래도 늘어납니다. 이리하여 이런 여러 가지 늘어나는 사회 얼거리에 따라서 우리 말과 글도 늘어나야 합니다. 새롭게 나타나는 모습을 가리키는 새로운 우리 말이 있어야 하며, 새로워지는 우리 삶을 담아낼 우리 글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굳이 ‘글짓기’나 ‘글쓰기’가 없이 ‘作文’ 하나면 넉넉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작문’이라고 한글로 적는 낱말조차 없어도 되는 한편, ‘글쓰기’ 하나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글쓰기’ 하나 새로 쓰면서, 글을 쓰는 일을 일컬어 ‘글쓰다’라 할 수 있고, 글을 쓰는 사람을 두고 ‘글쓴이-글쓰는이-글씀이-글꾼’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쓰일 일이 없었을 테지만, 오늘날에는 ‘말멋-말느낌-말씀씀이-말결’이나 ‘글멋-글느낌-글씀씀이-글결’ 같은 낱말을 새로 빚어내어 써 볼 수 있습니다. 입말과 글말을 이야기하듯 ‘책말’과 ‘인터넷말’과 ‘방송말’을 이야기하는 세상이고, ‘말버릇’과 함께 ‘글버릇’도 쓰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우리들이 쓸 국어사전에는 새로운 삶과 생각과 넋을 고이 풀어놓을 수 있도록 새로운 낱말을 소담스레 담아야 할 줄 압니다. 그래야 국어사전입니다. 이런 일을 하라고, 이런 몫을 맡으라고 국어사전이 있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08 20:2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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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쓰기 #우리말 #우리 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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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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