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97)

― ‘눈물의 결혼식’, ‘눈물의 아우성’ 다듬기

등록 2008.09.09 10:50수정 2008.09.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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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눈물의 결혼식

 

.. 저희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눈물의 결혼식이었습니다 ..  <안재구,안영민-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2003) 32쪽

 

요즘은 우리 말 '혼례식-혼인식'을 쓰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고 '결혼식(結婚式)'을 말하는 사람만 남습니다. 예식을 치르는 곳을 '혼례마당-혼인식장'이라 하지 않고 '결혼식장'이라고만 하는 가운데 '웨딩홀' 따위 말이 널리 퍼지는 터라, 앞으로는 말이 더욱 병들 테지요. 같은 한자말이라 해도 고유한 우리 삶과 문화를 담은 말이 있고, 일제 강점기 때 억지로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쓰이다가 자리잡고 만 얄궂은 말이 있습니다. '결혼-결혼식'은 바로 뒤엣것, 어쩔 수 없이 쓰이다가 잘못 자리잡은 얄궂은 말입니다.

 

 ┌ 눈물의 결혼식

 │

 │→ 눈물로 얼룩진 혼례잔치

 │→ 눈물로 범벅이 된 혼례잔치

 │→ 눈물이 가득한 혼례마당

 │→ 눈물바다가 된 혼례마당

 │→ 눈물 아니면 말할 수 없는 혼례마당

 └ …

 

혼례를 치르는 자리가 어떠했다는 소리일까요. '눈물이 나는' 혼례잔치였는지, '눈물 없는' 혼례잔치였는지 뚜렷하게 말해야지요. 그냥 "눈물의 결혼식"이라고 뭉뚱그려 버리면 여러모로 멋없는 말, 뜻도 두루뭉술하고 어설픈 말이 됩니다. 눈물이 나는 혼례마당이라면, '슬픈'을 넣어도 좋고, '가슴 아픈'을 써도 어울립니다. '가슴이 찢어지는'이나 '눈물바다가 된'처럼 적어도 되고요.

 

보기글을 다듬으며 생각해 보는데, 우리들은 우리 말을 좀더 잘하려고, 올바르게 쓰거나 알맞게 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다 아는 말이니 더 배울 구석이 없는 우리 말이라고 느끼지는 않는가요. 좋은 책을 새로 알아보고 찾아보면서 마음밭을 다스리듯이, 날마다 몸을 다스리는 좋은 밥 한 그릇 받아안고 고맙게 먹듯이, 날마다 쓰는 말과 글도 알뜰히 추스를 수 있도록 날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여 주면 반갑겠어요.

 

ㄴ. 눈물의 아우성이요

 

.. 진짜는, 터지는 억창으로 토해 내는 한 맺힌 절규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  <김수정-아기공룡 둘리 (7)>(예원,1990) 7쪽

 

 '토(吐)해'는 '뱉어'나 '쏟아'로 다듬습니다. '한(恨)'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응어리'나 '아픔'으로 손보면 한결 낫고, '절규(絶叫)'는 '울부짖음'이나 '부르짖음'으로 손봅니다.

 

 ┌ 눈물의 아우성이요

 │

 │→ 눈물겨운 아우성이요

 │→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눈물지는 아우성이요

 │→ 눈물어린 아우성이요

 └ …

 

슬프거나 가슴 벅찬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눈물을 왈칵 쏟아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들은 "눈물바다를 이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눈물바다'가 아닌 '눈물의 바다'처럼 말하는 분이 드물게 있습니다.

 

사람들 아픔을 먹고 자란다고 하면서 '눈물꽃'이나 '눈물나무'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때에도 '눈물꽃-눈물나무'처럼 알맞게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사이에 토씨 '-의'를 넣어서 '눈물의 꽃-눈물의 나무'처럼 적으려고 하는 분이 꼭 있습니다.

 

 ┌ 눈물바다 / 웃음바다 (o)

 └ 눈물의 바다 / 웃음의 바다 (x)

 

웃음이나 눈물을 학문으로 파고드는 분들은 으레 "눈물의 미학"이나 "웃음의 해학"이니 하고 읊조립니다. "아름다운 눈물"이나 "익살스러운 웃음"처럼 읊조리는 일은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말하는 학문이면서도 '아름다움'이 아닌 '美學'이라 말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만, 우리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거나 드러내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퍽 어렵습니다.

 

학문과 삶은 따로따로인지, 학문은 삶에 터잡지 않아도 되는지, 학문은 삶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삶이 없이 어떤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있을까 싶습니다. 삶에 뿌리내리는 말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 눈물의 외침입니다 (x)

 └ 눈물로 외칩니다 (o)

 

어쩌면, 뿌리 잃고 떠도는 모습이 우리 삶일까요. 뿌리 없이 맴도는 모습이 우리 삶인가요. 뿌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 삶인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09 10:50ⓒ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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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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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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