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립운동가의 금의환향

유정 조동호 선생 54주기 추모제전

등록 2008.09.13 20:04수정 2008.09.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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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가장 염려되는 것이 고향의 사람들이 얼마나 추모의 마음을 가지고 제전에 참석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의 추모제전, 그것도 고향에서 처음 열리는 것이니만큼 뜻있는 분들이 많이 참석할 것이라는 생각은 주최측의 바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닐까로 생각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하지만 막상 그 날 추모제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군 단위의 지방에서 열린 추모식으론 내용과 규모가 아주 흡족한 행사였다. 충북보훈지청 카페에 유정 선생의 54주기 추모제전 행사에 대한 기사가 올려져 있었는데, 3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하니 '성황'이란 표현 외에 달리 나타낼 말이 없을 듯하다.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들도 내용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지역 기관장들뿐만 아니라 청산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지역 주민들이 골고루 참석해 행사가 풍성함을 누릴 수 있었다. 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군의원들, 충북보훈지청장, 도의회 의원, 군청의 부군수와 실과장들 또 면장들, 문화원장과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등 사회단체 대표들, 유정 선생이 태어나시고 자란 청산면의 주민들이 많이 참석한 것은 추모제전의 폭을 한층 깊고 넓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옥천이 남한의 중간 지점이라고 하지만 서울에서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버스를 대절 내서 내려오신 그곳 손님들에게서 큰 힘을 얻은 것은 행사를 주최한 측만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인 그 분들에게서 도도히 흐르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강직과 의리를 읽을 수 있었다. 후손인 그분들에게서 옳으면 일신을 돌보지 않고 내달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기상을 읽을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해서 걷기가 어려운 분도 힘든 발걸음을 내디디며 행사장에 참석해 좌정하는 모습에서 여느 행사장과는 다른 진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행사에 있어서의 가장 큰 헌신과 기여는 기념사업회에 돌릴 수밖에 없다. 기획에서부터 초청장 발송, 장소 교섭에 행사장 꾸밈 등 모든 것을 책임지고 추진한 분들은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다. 특별히 조윤구 선생 등  유족들의 노고는 선조(先祖)를 기리는 마음 이상이었다. 이번 추모제전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한 유정의 차남 조준구 선생, 고향에서 거행되는 할아버지의 추도식을 준비하느라 직장을 휴가내고 뛴 손자들, 특히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동분서주 추모제전을 진두지휘한 조윤구 선생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54주기 추모제전의 모습이 이처럼 풍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념사업회 이현희 회장님은 이번 추모제전을 학술적으로 뒷바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부 할술포럼의 한 분야 발제까지 맡으면서 유정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가 유정'을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향에서조차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는 유정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게 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아닐 수 없다. 그 분의 이러한 애씀이 유정 54주기 추모제전을 추모제전답게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한 독립운동가의 추모제전을 거행하면서 학술포럼까지 동시에 개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독립운동가 유정 선생이 미진하긴 하지만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회장님의 학적 고증과 조윤구 선생의 열정적 헌신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추모제전을 보는 옥천 군민들의 눈들이 아주 따뜻하고 긍정적이었다. 이번 고향에서의 추모제전을 시작으로 유정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확산시켜 나가데 옥천이 구심력을 발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뜻을 지니고 유정 선생을 추모하는 자리가 옥천에서 계속되어 해를 거듭할 수록 빛을 발하게 되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옥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역사적 인물로 만드는 데에 많은 몫은 옥천 사람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옥천 지역에서부터 옥천 출신 독립운동가 유정을 예를 다해 추모하고 그분의 유지를 이어나갈 뿐 아니라 사업들이 가시화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여년 전에 발간되어 유정을 역사적으로 인정받게 한 <趙東祜 抗日鬪爭史>(이현희 저)가 54주기 추모제전에 맞추어 젊은 세대에 맞게 순 한글판으로 재발행된 것도 유정 선생의 대중화를 염두에 둔 작업일 것이다. 이 책을 정독하면 유정 선생이 일부가 아닌 국민 모두의 존경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중요성은 글로벌화 시대에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역사는 사람이 엮어나가는 실선(實線)이고, 진정한 실선은 사람이 역사적으로 정당하게 평가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옥천에서 열린 유정 조동호 선생의 54주기 추도제전 및 학술포럼은 유정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우리에게 유의미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2008.09.13 20:04 ⓒ 2008 OhmyNews
#유정 조동호 #추모제전 #옥천 #기념사업회 #이현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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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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