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고향 풍경은 다릅니다

등록 2008.09.14 12:59수정 2008.09.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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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차로 30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자주 갑니다. 멀리 고향이 있는 사람처럼 설과 추석때만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가는 고향길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추석 때 가는 고향길은 분명 다른 때와는 다릅니다. 고향길에 떠오르는 아침해가 참 아름답습니다.


a  고향에 가는 길에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고향에 가는 길에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 김동수


집에는 35년된 무화과 나무가 있습니다. 이 무화과는 평생 동안 농약 한 번 맞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느 나무와 열매 보다도 완벽한 친환경 무화과입니다. 아내는 이 무화과를 따 먹겠다고 점찍었지만 그만 동생과 내 입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a  어머님 댁에 열린 잘 익은 무화과입니다. 완벽한 친환경 열매입니다. 그날 아침 동생과 제입에 그만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댁에 열린 잘 익은 무화과입니다. 완벽한 친환경 열매입니다. 그날 아침 동생과 제입에 그만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 김동수


"여보 무화과 누가 먹었어요?"
"응 하경이 아빠하고, 내가."

"내가 점 찍은 것 당신도 알잖아요."
"하경이 아빠가 따와서 먹으라고 하는데 어떻게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그래 빨리 딱 먹지. 이런 것은 점찍은 사람이 임자가 아니고, 먼저 따 먹는 사람이 임자요."

설과 추석 전에는 떡을 하러 어머니와 함께 사천읍내에 갑니다. 떡에는 실수 한 번 하지 않던 어머니께서 떡쌀을 잘 못 담가 떡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한 떡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오니 이미 추석상을 준비하는 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명태와 새우에 밀가루를 입히고, 댤걀을 묻혔습니다. 명태와 새우에 밀가루를 너무 두껍게 묻히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a  제수씨와 함께 명태전을 굽고 있습니다. 맨 오른쪽 막내, 딸, 그리고 조카들이 아빠와 작은 엄마가 명태전을 굽고, 엄마가 사진찍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제수씨와 함께 명태전을 굽고 있습니다. 맨 오른쪽 막내, 딸, 그리고 조카들이 아빠와 작은 엄마가 명태전을 굽고, 엄마가 사진찍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여보 너무 밀가루 두껍게 입히면 안 되니까, 밀가루를 털어 내세요."
"아주버님은 정말 형님을 잘 도와주네요."
"동생도 잘 하지요."
"결혼 하기 전에 자취집에 오면 칼 먼저 잡는다고 그리 하더니만 결혼 하니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 남자들이 하는 거짓말이 '너 손에 물 안 묻히게 한다' '우리 엄마 누나, 여동생 성격 좋다'는 말이 남자들 거짓말이래요."
"동생 만큼 제수씨한테 잘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인데."


우리 집은 설과 추석에 돼지를 직접 잡습니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몇 kg 사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등심으로 돈가스를 만드는데 아이들이 나섰습니다. 자기들도 하겠다고.

a  딸 서헌이가 끝까지 아빠와 함께 집에서 직접 잡은 돼지로 돈가스를 만들겠다고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 옷을 입히고 있습니다.

딸 서헌이가 끝까지 아빠와 함께 집에서 직접 잡은 돼지로 돈가스를 만들겠다고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 옷을 입히고 있습니다. ⓒ 김동수


"아빠 나도 할거예요. 아빠 나도, 아빠 나도."
"밀가루 너무 많이 묻히면 안 돼! 댤걀과 빵가루도 적당하게 묻히고. 막둥이 너 이게 무엇이니? 완전히 주물럭을 만들었구나. 서헌이는 그래도 좀 예쁘게 만들었고. 인헌이 너는 조금 두껍다. 얇게 해라."


어머님은 마냥 좋습니다. 손주들 6명이 뛰어노니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노년에 얻은 손주들이 얼마나 귀엽겠습니까? 자신의 태(胎)아들 둘이 낳은 손주 여섯. 나이 일흔여섯에 가장 큰 손자 나이가 11살 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이 남은 일생 동안 변함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a  손자와 손녀 여섯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주름진 어머니 얼굴에 환한 웃음이 찾아왔습니다.

손자와 손녀 여섯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주름진 어머니 얼굴에 환한 웃음이 찾아왔습니다. ⓒ 김동수


돈가스 다 만들고 집안을 둘러보니 눈에 들어오는 옛날 농기구 두 개가 있었습니다. 풍구와 저울입니다. 요즘은 타작을 콤바인으로 하기 때문에 쭉정이가 다 날아갑니다. 하지만 손으로 나락을 베고, 탈곡기로 타작을 할 때는 쭉정이가 많았습니다. 벼 매상을 내려면 풍구로 쭉정이를 날려야 했습니다. 풍구가 없으면 손으로 해야했는데 풍구도 굉장히 좋은 농기구였습니다. 이제는 세월을 뒤로하고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a  요즘은 벼를 콤바인으로 다 타작하기 때문에 쭉정이가 없었습니다. 손으로 벼를 벨 때는 쭉정이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 때 이 풍구를 통하여 쭉정이를 날렸습니다. 아직도 집에 덩그러니 있습니다.

요즘은 벼를 콤바인으로 다 타작하기 때문에 쭉정이가 없었습니다. 손으로 벼를 벨 때는 쭉정이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 때 이 풍구를 통하여 쭉정이를 날렸습니다. 아직도 집에 덩그러니 있습니다. ⓒ 김동수


저울은 벼 매상을 내기 위하여 사용했던 농기구입니다. 이 저울은 보기에는 투박하게 생겨도 정확도는 매우 높습니다. 거의 속일 수가 없지만 저울 위에 막내가 올라갔습니다.

a  막내가 저울 위에 울러갔습니다. 이 저울은 생긴 모습은 투박해도 굉장히 정확하니다. 어떤 저울 보다도.

막내가 저울 위에 울러갔습니다. 이 저울은 생긴 모습은 투박해도 굉장히 정확하니다. 어떤 저울 보다도. ⓒ 김동수


"막둥이가 이게 무엇인지 알아."
"몰라요?"
"저울."
"저울이 어떻게 이리 생겼어요?"
"벼 농사를 짓고 매상을 낼 때 달았던 저울이다. 재미있게 생겼지. 옛날에는 다 이런 저울로 벼 무게를 달았다."

고향에는 사천만이 있습니다. 걸어서 3분입니다. 바닷가에 나가니 죽방림이 보입니다. 가장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법이지만 아직도 고향에는 이런 죽방림이 몇 군데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기잡이 방법입니다.

a  죽방림입니다. 가장 원시스러운  고기잡이 방법입니다.

죽방림입니다. 가장 원시스러운 고기잡이 방법입니다. ⓒ 김동수


추석 전날 고향집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하루를 뒤로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기쁨과 즐거움이 가슴 깊숙이 배어 있었습니다. 추석은 이렇게 좋습니다.
#추석상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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