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것보다 내 아들이 받은 거라니 더 기쁘다"

등록 2008.09.16 20:58수정 2008.09.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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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홍삼 농축액이 들어 있는 유리병   가지런히 잘 정돈된 포장 속에 들어 있는 홍삼 가루

홍삼 농축액이 들어 있는 유리병 가지런히 잘 정돈된 포장 속에 들어 있는 홍삼 가루 ⓒ 송춘희

▲ 홍삼 농축액이 들어 있는 유리병 가지런히 잘 정돈된 포장 속에 들어 있는 홍삼 가루 ⓒ 송춘희

 

남편은 교수다. 학자로서 학문을 연구하는 일도 기쁘지만 훌륭한 제자를 양성하고 그 제자들이 사회에 적응 잘하고 가끔 자신을 찾아올 때 더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추석에는 몇 년 전 대학원을 졸업한 제자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편을 찾아왔다. 두 명이 함께 선물을 가져오긴 했으나 비싼 홍삼이라 나도 좀 당황했다. 선물을 받는 것보다 보내는 편이 더 많았던 나는 처음에는 백화점에서 홍삼의 가격만 보고 지나쳤던 기억이 나서 “얘네들, 돈 많이 썼네….”하고 농담을 던졌다.

 

저녁에 홍삼박스를 열어 보았다. 다섯 개의 작은 유리병 속에는 '순수 100프로 고농축'이라는 - 물에도 잘 녹고 그냥 섭취도 할 수 있다는 - 홍삼 가루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예쁜 황색구슬들은 처분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쁘게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얼른 한 병을 따서 '뚝딱' 비우고 싶었다.

 

‘요새 어깨도 왠지 찌뿌드드하고 머리도 아픈데 홍삼을 먹으면 좀 좋아지겠지?’ 선물을 받아 온 당사자인 남편은 아무 관심 없이 책을 읽고 있는데 홍삼 가루들은 끝없이 나를 유혹했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문득 부산에 계신 시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번 추석에는 찾아 뵙지도 못할 텐데 변변한 선물 하나 못 드리고 또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용돈을 넉넉히 보내드릴 처지도 못된다. ‘그렇다면?’ 생각은 여기까지 미쳤고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여보 우리 이번 추석엔 부모님 선물 따로 사지 말고 이걸 보내드려요”

 

남편은 씨익 웃으며 동의의 미소를 날렸다.

 

다음날 우체국에서 예쁘게 포장된 홍삼은 추석 연휴를 지난 오늘에야 시댁에 도착했다. 오후에 시어머님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난데...”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니가 보낸 선물 자알 받았다. 웬 거고?”

“네. 그게요, 사실은 애 아빠가 받아 온 건데요. 저희가 먹는 것 보다 어머님 아버님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내 말을 가만히 들으시더니 “그래? 잘했다. 오냐 잘 먹을게. 내가 받은 것보다 내 아들이 이런 거도 다 받고 백배 천배 기쁘다”고 말씀해주셨다. 욕먹을까 마음 졸이던 나는 시어머님의 그 한마디에 그만 마음이 후련해졌다.

 

선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기쁘다고 한다. 내게 선물 드리는 기쁨을, 그 황홀함을 이렇게 느끼게 해주신 어머니가 너무 고마웠다. 다음에는 받은 것이 아니라 새로 좋은 것을 사서 보내드려야겠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 본다.

 

“어머님, 아버님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2008.09.16 20:58ⓒ 2008 OhmyNews
#추석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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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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