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다시 찾아 간 그 곳, 문산

등록 2008.09.17 10:58수정 2008.09.18 14:12
0
원고료로 응원

a 꽃님이 기차 서울 - 임진강 행 열차

꽃님이 기차 서울 - 임진강 행 열차 ⓒ 이희동

▲ 꽃님이 기차 서울 - 임진강 행 열차 ⓒ 이희동

 

8월의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다. 매번 구박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정처 없는 발걸음. 목적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산행 꽃님이 열차를 떠올렸다. 기차는 타고 싶은데,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친구의 희망사항에 문산이 딱 들어맞다 싶었던 까닭이었다.

 

몇 번째 가는 문산이던가. 제대 이후 다시는 그 쪽 방향으로 오줌도 싸지 않겠다고 번번이 다짐했던 문산이거늘, 언제부터인가 문산은 나의 청춘이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런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로 변해 있었다. 비록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몸서리칠 정도로 싫지만, 절대 잊지 못할 그때 그 시절. 그때가 아름다운 것은 단지 나의 20대 초반에 대한 그리움일까?

 

친구와 신촌역에서 만났다. 비록 서울 한복판이지만 시골 간이역 비슷한, 고즈넉한 풍경의 신촌 역사는 철거되고 없었고 천박한 화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고유의 기능은 잃어버린 채, 전시의 욕망만을 가지고 서 있는 초라한 역사.

 

그 뒤로 세워진 으리으리한 신 역사의 설계자는 무엇 때문에 옛 역사의 흔적을 이렇게라도 남기고자 했을까? 그곳에 묻힌 추억들에 대한 알량한 동정심? 어쨌든 그것은 흉물스러웠다. 사람이 들지 않으면 무너져버리는 폐가처럼, 그 기능을 잃어버린 역사는 더 이상 추억을 보존하지 못한다. 그것은 성장을 위해서라면 옛 것을 모두 부수려는 이 시대의 못난 자화상일 뿐이었다.

 

역사로 들어가 표를 사고자 종착지를 물으니 임진강이라고 했다. 임진각이 아니라 임진강이라. 아마도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라도 역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a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뻗어있는 기찻길 언제쯤 활발한 운행이 시작될까?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뻗어있는 기찻길 언제쯤 활발한 운행이 시작될까? ⓒ 이희동

▲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뻗어있는 기찻길 언제쯤 활발한 운행이 시작될까? ⓒ 이희동

 

플랫폼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금촌, 임진강, 도라산의 목적지가 적혀져 있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그곳에 평양은 아니더라도 개성이라고 찍힐 날은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예상했었건만 이리도 요원한 이야기가 될 줄이야.

 

곧이어 꽃님이 열차가 들어왔고 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완행 같기도, 전철 같기도 한 꽃님이 열차. 10년 전 저 열차를 타고 싶어, 혹은 타기 싫어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백일 휴가 때 처음으로 부대서 나와 창밖으로 마주친 모교가 얼마나 반가웠었는지, 그리고 복귀 때 열차 안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차기만 했던지, 그 모든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대상으로 친구에게 이것저것 설명한다. 이곳에서는 내가 대항군으로 뛰어다녔고, 저기에서는 짱 박혀 전투식량을 먹었고, 또 여기에서는 물 속으로 몰래 침투해보기도 했고 등등. 나에게는 신이 나는 군대 이야기였지만 친구에게는 더없이 지루한 이야기일 터, 그녀가 한 마디로 정리한다.

 

"이번 여행은 이희동씨의 추억여행이구먼."

 

또 다시 분단의 최전선이 되어버린 임진각

 

문산 역을 지나 도착한 임진강 역. 꽃님이 열차의 종착역이었다. 내친 김에 다시 수속을 거쳐 도라산 역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친구는 요지부동이었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왕에 추억 여행하기로 한 거 도라산 전망대에서 뻔질나게 수색하며 돌아다녔던 그곳 DMZ를 보고 싶었지만 애써 참을 수밖에. 친구가 군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난 고마워해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라고 하잖나. 

 

우리는 역사를 나와 임진각으로 향했다. 도라산 전망대에 제3땅굴 등을 엮은 안보 관광이 대중화 되었음에도 임진각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접근성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징성의 문제인 듯 했다. 여전히 임진각은 철마가 달리고 싶은, 망배단이 서 있어 북쪽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 그 한을 토로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a 헌병들 예사롭지 않은 헌병들

헌병들 예사롭지 않은 헌병들 ⓒ 이희동

▲ 헌병들 예사롭지 않은 헌병들 ⓒ 이희동

 

어쩌면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도라산역의 상징성이 줄어든 만큼 임진각의 상징성이 강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분단의 최전선에 서게 된 임진각.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역사 주변을 걸어 다니는 헌병들의 발걸음부터가 달라보였다. 세포에 새겨져 있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었을까? 2년 동안 길들여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간 임진각.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와 있었는데 과연 그들은 조용한 이곳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가는 것일까? 아님 분단의 아픔을 새기고 가는 것일까? 어렸을 적 나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나는 이곳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를 가장 선명하게 각인시켰었다.

 

a 경기평화센터 김문수 경기지사의 회심작

경기평화센터 김문수 경기지사의 회심작 ⓒ 이희동

▲ 경기평화센터 김문수 경기지사의 회심작 ⓒ 이희동

 

임진각 초입에는 '경기평화센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생긴 건물이 최근에 만들어졌나 했더니 2007년에 기존 북한관을 리모델링 했다고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작품. 어쩐지 냄새가 나더라니. 내부를 구경하다 보니 역시나 김문수 도지사께서 전시관 한 구석을 차지하고 계셨다. 이명박에게 '청계천기념관'이 있다면 김문수에게 '경기평화센터'가 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언뜻 짐작할 수 있었다.

 

경기평화센터는 이름만 거창할 뿐 알맹이는 재탕에 삼탕이었다. 전시의 모토가 평화와 환경이라고는 했지만 이 건물을 지은 주체의 선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터라 아무 감흥이 없었다. 전쟁에, 휴전에, 냉전에, 평화통일 노력으로 이어지는 그 뻔한 스토리들. 혹여 몇 년 뒤 정권이 바뀌고 나면 신냉전이라는 코너가 생길는지도 모를 일이다.

 

a 북한으로 가는 길목 저 너머 있을 북한

북한으로 가는 길목 저 너머 있을 북한 ⓒ 이희동

▲ 북한으로 가는 길목 저 너머 있을 북한 ⓒ 이희동

a 임진각 많은 이들의 한을 담고 있는 그곳

임진각 많은 이들의 한을 담고 있는 그곳 ⓒ 이희동

▲ 임진각 많은 이들의 한을 담고 있는 그곳 ⓒ 이희동

a 임진각의 수많은 상징들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임진각의 수많은 상징들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 이희동

▲ 임진각의 수많은 상징들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 이희동

 

전시관을 나와 자유의 다리, 망배단, 임진각 공원 등을 돌아다녔다. 분단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들. 그 많은 상징적인 조형물들만 없었다면 이곳이 최선전인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그곳들을 돌아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다시금 불안해지는 남북관계가 계속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년을 노력해 온 남북관계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을까? 지금 같아선 모를 일이다.

 

임진각을 나와 문산으로 향했다. 이왕에 추억여행을 오늘의 주제로 잡은 이상 예전 추억을 떠올리려면 문산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나 같은 뚜벅이에게 지난한 일이었다. 임진각을 자가용만을 위해 설계했는지 1시간 차이로 오는 기차와 문산 행 버스가 같은 시각에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별 수 있는가. 20~30분을 기다려 기차에 올라 문산으로 향했다.

 

20대의 추억을 간직한 그곳, 문산

 

문산역은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신촌역과 마찬가지로 예전의 그 고즈넉한 맛이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통일을 위해서, 혹은 지역 개발을 위해서 새로 지은 역사겠지만 아무 멋대가리 없이 마냥 큼지막이 서 있는 문산 역사를 보고 있자니 가슴 한 편이 답답해져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산역을 나와 나는 친구에게 또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일 휴가 때 식당에서 냉면을 먹다가 연평해전을 접했음에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집에 갔던 이야기, 99년도 물난리 때 농협 간판까지 임진강이 범람해 고무보트를 타고 구조했던 이야기, 문산을 들르는 군인이면 모두 한 번은 가봤을 패스트푸드 점 이야기 등. 나의 이야기는 구구절절했지만 역시나 친구에게는 재미없는 군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a 문산터미널 추억의 시작

문산터미널 추억의 시작 ⓒ 이희동

▲ 문산터미널 추억의 시작 ⓒ 이희동

 

문산역에서부터 걸어서 도착한 문산 터미널. 많은 군인장병들이 부대 복귀를 기다리는 듯 양손에는 '사제' 물건들을 바리바리 사들고 있었다. 책, 비누, 카세트 테이프 등 그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 듯 했다. 그래도 제대한 지 7년이 되었거늘 이곳은 어찌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까? 다행스러운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왕 내킨 걸음 전진교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선유리를 지나 율곡리를 지나 저 멀리 전진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대가 있던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건너야 했던 바로 그 전진교. 처음 자대를 갈 때에는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사지에 떨어진 줄 알았고, 부대 복귀 시 배웅 나온 부모님을 남겨두고 포차에 올라 이 다리를 건널 때에는 깜깜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았거늘.

 

a 애틋한 연인 이별을 앞두고 가슴 아픈 두 사람

애틋한 연인 이별을 앞두고 가슴 아픈 두 사람 ⓒ 이희동

▲ 애틋한 연인 이별을 앞두고 가슴 아픈 두 사람 ⓒ 이희동

 

a 전진교 저 너머 아득한 그곳

전진교 저 너머 아득한 그곳 ⓒ 이희동

▲ 전진교 저 너머 아득한 그곳 ⓒ 이희동

 

버스에서 내려 면회소가 설치되어 있는 전진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때마침 면회 시간이 끝날 때인지라 한 커플이 이별을 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마 보내지 못하는 사람과 차마 뜨지 못하는 사람 간의 그 애틋한 모습이라니. 군대 시절 같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바로 그 순간 군인인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무력한지.

 

전진교는 그대로였다. 겨우 다리 하나 건너이거만 그 너머 민통선 지역은 역시나 아득해 보였고 그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우울해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이들의 탄식과 한숨이 교차되는 이곳. 요즘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그 탄식과 한숨이 한결 잦아지고 깊어졌으리라. 특히 북한의 김 위원장이 위독한 지금은 아마도 모두들 비상일 텐데 아무런 사건 사고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구태를 벗어 던지지 못한 우리의 군대조직과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을 20대의 만남. 대한민국 사회에서 군대처럼 양극단의 주체가 직접적으로 맞부딪히는 곳이 있을까. 그와 같은 구조적 갈등 하에서 아무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며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데 부대복귀를 하겠다고 포차를 기다리는 장병들이 보였다. 명찰을 보아하니 우리 부대와 같은 건물을 썼던 지원 중대 아저씨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한 뒤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 자리의 연병장과 식당은 잘 있는지, 독수리 상은 잘 있는지. 근 10년이 다 되어 가는 옆 부대 예비군임에도 그들은 친절하게 민통선 안의 풍경을 전달해주었다. 그들을 통해 들은, 아직도 채 많이 바뀌지 않은 나의 추억들.

 

이제 그만 문산 행 버스에 오를 시간. 추억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지나간 20대에 대한 미련만큼이나 질척한 발걸음이었지만 별 수 있는가, 가는 수밖에. 버스에 앉아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한참 동안 전진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긋지긋했던 현실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탈색시키는, 시간이라는 묘약의 위험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웠다.

 

버스를 타고 문산에서 서울 오는 길. 그때는 그리 길게만 느껴졌던 그 길이 왜 그리도 짧은 지, 문산에서 서울은 참으로 금방이었다.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나의 길만이 길었을 뿐. 또 한 번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보낸다. 반가웠어라 나의 빛나는 청춘이여.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9.17 10:5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문산 #임진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4. 4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5. 5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