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심부름 부탁하는 여중생들, 어떻게 할까?

"저기 죄송한데 담배 좀 사다 주실 수 있나요"

등록 2008.09.18 15:16수정 2008.09.18 17:3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아파트 후미진 곳 지하 계단에서 종종 흡연하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다.

아파트 후미진 곳 지하 계단에서 종종 흡연하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다. ⓒ 윤태

아파트 후미진 곳 지하 계단에서 종종 흡연하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다. ⓒ 윤태

얼마 전 회사 남자 동료에게 어떤 여고생들이 담배를 사다 달라고 해서 사다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 했다.

 

"아이구, 참으로 착하고 순진하십니다. 사달란다고 여고생 담배 심부름을 해줘요? 따끔하게 한마디 혼내주지는 못하고… 녀석들 나한테 걸렸으면… ."

 

하기야,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 따끔하게 혼낸다고 담배를 끊을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런데 녀석들이 나한테 딱 걸렸다.

 

지난 17일 늦은 오후 분당 수내동 모 은행에서 일 보고 나와 편의점 모퉁이를 막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주오던 중학생 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두 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

"아, 예,"

 

처음에는 건물 위치를 물어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 예"하고 대답한 것인데 난데없이 3 천원을 내밀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담배 좀 사다 주실 수 있나요? 엣세 라이트로요."

 

순간 내 머릿속 회로는 복잡해졌다. 각본대로라면 녀석들을 호되게 꾸짖어야 하는데 막상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고 나니 선뜻 그럴 수가 없었다. 담배 피우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몇 번 타이른 적은 있지만(물론 싫은 소리를 주로 들었다) 담배 심부름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버젓이 학생인줄 알면서도 담배를 사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왜 흡연하게 됐는지 그 이유 묻다

 

나는 약 5초 동안 두 여학생을 빤히 쳐다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머릿속에서 정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왜 흡연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선 3천 원을 받아들었다.

 

"친구들, 내가 담배를 사다 줄 거라고 생각하니?"

 

그러자 한 친구가 눈을 크게 한번 뜨더니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사다줄 테면 얼른 사다주고 아니면 거절하고 가면 그만일 텐데 난데없이 이상한(?) 질문이 들어오니 녀석들도 당황 혹은 황당한 모양이다. 대답도 못하고 실실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너희들 중학생 맞지? 몇 학년이야?"

"2학년인데요, 왜요? 아저씨 담배 사다주기 싫으세요?"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그래서 우선 담배를 사왔다. 처음부터 담배를 건네줄 생각은 아니었다. 흡연하는 여중생들이 어떤 계기로 담배를 피우는지 알고 싶었던 거다. 담배를 건네주려는 시늉을 하다가 도로 손에 움켜쥐고 물었다.

 

"아참, 너희들 담배 피우는 거 부모님은 아시니?"

"집에서는 안 피워요. 담배 주세요."

 

꼬치꼬치 캐물어봐야 성심껏, 솔직하게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정곡을 찔러보았다.

 

"너희들 이가 누런 거 보니 담배 피운 지 오래 됐구나?"(사실 누렇지 않았지만)

"2주 밖에 밖에 안 됐거든요. 누구를 골초로 아세요? 빨리 주세요."

"그래? 그럼 웬만하면 중독되기 전에 끊어라,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후미진 곳에서 담배 피우지 말고, 응?"

"우린 나쁜 친구들이랑 안 어울리니까 걱정 마세요. 제발 그거 좀 주세요."(이번엔 애원하는 말투였다)

"그래? 내가 보기엔 너희들이 나쁜 친구 같은데?"

"담배 피운다고 다 나쁜 사람인가요?"(내가 한방 먹은 느낌이었다)

 

평범한 여중생들인데...

 

이렇게 1분 동안의 짧은 대화는 끝났다. 나는 3천원을 돌려주고 어지간하면 끊으라고 얘기해줬다. 여중생들은 이런 아저씨 처음 본다며 어이없어 하는 웃음을 짓고 나더니 장소를 옮겨 담배 심부름해 줄 다른 어른을 물색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이 아이들이 '막 가는 아이들'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보통 저런 상황이라면 쌍욕을 하거나 격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졸라 재수 없다, 아저씨가 뭔 상관이야" 등 험악한 말을 뱉고는 돌아서 버리는 게 일쑤인데 말이다.

 

또한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담배 피우고 비행을 일삼는 무리의 학생들이라기보다는 호기심에서 담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이 같은 짐작은 그 여중생들의 수수한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 그리고 대화에서 추론할 수 있었다.

 

그냥 평범한 여중생들인데 호기심에서 담배를 막 배우고 있는 상황인 듯했다. 대화 몇 마디 나눠보면 깊은 속까지는 몰라도 말투에서 기본 됨됨이는 보이지 않는가.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성장이 한참 진행 중인 10대 청소년들의 흡연은 성인보다 더 큰 문제가 된다. 조직이나 세포, 장기가 성장하는 상태에서 흡연을 하게 되면 담배의 독성 물질이 더 깊이 박혀 향후 몇 십년 후에 건강상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 꿈나무가 이렇게 병들어가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중고생 자녀들이 집에 오면 교복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아이와 대화를 통해 흡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각 가정에서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한다. 맞벌이 생활로 부모의 관심이 소홀해지면서 청소년들은 흡연의 중독에 더 빠져들 수 있다.

 

내 아이와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건강을 지키는 방법, 작은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티스토리 블로그에 동시 송고합니다.
#담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